기원전 30년경부터 기원후 10년경까지 유대 최고 의회(Bet Din ha-gadol) 의장(Nasi)이던 율법학자 힐렐(Hille)의 후손들. 가믈리엘 이름을 가진 6명이 대를 이어 425년까지 의장을 지냈다. 이들은 '우리 스승' (Rabban)이란 경칭을 받았는데, 그들 가운데 1세와 2세가 특히 언급될 만 하다.
① 가믈리엘 1세(Rabban Gamliel Ha-zaqen, 1세기 전반에 생존) : 힐렐의 손자. 율법학자. 최고의회 의장. '원로' (Ha-zaqen)는 가믈리엘 2세와 구별코자 라빠들이 덧붙인 별호이다. 그는 부인들을 아끼는 법의 해석을 내리곤 하였다. 예컨대, 남편의 죽음을 증언하는 증인이 한 사람만 있어도 부인이 재혼할 수 있다고 하였다(미쉬나, 여비못 16, 7). 또한, 아내에게 보낸 이혼장이 무효라고 남편이 소송을 제기코자 할 때는 반드시 아내의 고향 법정에 제소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내가 이혼장이 유효하다고 믿고 재혼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미쉬나, 킷틴 4, 2-3). 그가 죽자 그를 존경하던 율법학자가 "랍반 가믈리엘 원로가 돌아가시니 토라의 영광이 그치고 정결과 성덕이 사라졌다"(미쉬나, 소타 9, 15)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신약성서에 그의 이름이 두 번 나타난다(사도 5, 34 ; 22, 3). 최고 의회 위원들이 사도들을 없애 버리려고 하자 가믈리엘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들을 내버려 두시오. 사실 이 의도나 이 일이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여러분이 그들을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은 스스로 하느님의 적대자들이 될 것입니다" (사도 5, 38-39). 사도행전 22장 3절에는 바울로가 성전 뜰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가믈리엘 발치에서 조상들의 율법에 관해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리 한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루가가 바울로를 독실한 유대인으로 묘사하려고 만들어 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풀이도 있다(G. Bomkamm, 허혁 역, 《바울》, 이화여대 출판부, 1978) .
※ 참고문헌 Gamaliel, Rabban, 《EJ》 71 Morton S. Enslin, Paul and Gamaliel, (JR) 7, 1927, pp. 360~375/ S.S. Miller, Gamliel the Elder, 《ER》 5/ Jacob Neusner, The Rabbinic Traclitions about the Pharisees before 70, vol. 3, Leiden : Brill, 1971.
② 가믈리엘 2세(Rabban Gamliel Jabneh, 1세기 후반~2세기 초에 생존) : 가믈리엘 1세의 손자. 율법학자. 최고 의회의장. 그는 로마의 억압과 전쟁으로 혼란해진 시기에 유대인의 종교 의식을 통일시켰다. 기원후 70년 과월절, 로마군 사령관 티투스는 4개 여단(legio) 병력으로 예루살
렘을 포위하고, 마침내 70년 8월 29일 성전 구역까지 점령하여 성전 건물을 불태웠다. 이로써 제1차 독립전쟁(66~70)은 막을 내렸고, 그결과 예수 시대의 이스라엘 사색당파 중 성전 중심의 사 두가이파, 사해 쿰란 수도원 중심의 에쎈파, 독립전쟁을 주도한 열혈당파 모두가 거세되고, 오직 바리사이파만이 비교적 건재했다. 70~80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 1~80년경 생존) 율법학자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을 이끌고 텔아비브에서 남동쪽으로 20여km 떨어진 야브네(Yabneh, 그리스어로는 Jamnia)로 가서 율법 학원(Bet Midrash)을 세우고 유대교를
재건했다. 80년경, 그 후임자가 된 가믈리엘 2세는 최고의회를 재건하고 의장으로 취임하여 명실공히 유대 민족 최고 영도자가 되었다. 그는 민족과 토라의 일치를 도모코자 자신과 최고 의회 결정에 반대하는 율법학자들을 엄하게 다스렸는데, 엘리에제르 벤 히르카누스(Eliezer ben Hyrkanus)를 파문하고(바빌론 탈무드, 바바 메시아 596), 요수아 벤 하난느야(Joshua ben Hananiah)에게는 자신의 월력 계산법을 따르도록 강요했다(바빌론 탈무도, 로슈 히샤나 2 · 8-9). 또 그는 여러 형태로 전해 오던 '18조 기도'(ShemonehEsreh)도 통일하였다고 한다. 이 기도문은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기도문이어서 그저 '기도' (Tefillah)라고도 하고, 서서 바친다고 해서 '섬' (Amidah)이라고도 한다.
※ 참고문헌 정양모 · 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 어제와 오늘》, 생 활성서사, 1989, pp. 99~101/ Gamaliel, Rabban, 《EJ》 71 Shammai Kanter, Rabban Gamaleil Ⅱ, The Legal Traditions, Chica, Calif., 1980/ David Kraemer, Gamle'el ofYavneh, 《ER》5. 〔鄭良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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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믈리엘
〔라〕Gamaliel · 〔영〕Gam(a)l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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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가믈리엘 1세의 입상(立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