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네딕도. 전주교구 초대 몬시놀. 본관 진주(晋州). 1917년 8월 24일 전북 익산 나바위에서 오랫동안 회장직을 맡았던 강한태(美漢泰, 요한)의 장남으로 태어나 1925년 용안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본당 신부 카다스(J. Cadars)의 권고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예과 1년을 마친 후, 1932년 서울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 乙租)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하였다. 같은 해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진학하여 사제 수업을 받고 1944년 6월 3일 서품되었다. 6월 20일 전동 본당(殿洞本堂) 보좌 신부로 임명되어 전동 본당이 주관하는 해성심상(海星尋常)소학교를 담당하여 운영하던 중 1945년 4월 학교 건물이 일제에 의해 저금 관리소로 강제 징발되고 학생들은 공립 학교로 편입되는 시련을 겪었다. 1946년 본당에서 다시 성심여학원을 설립하자 그곳을 담당하였다. 1947년 4월 16일 남원(南原) 본당 주임 신부로 전임되었고, 1950년 5월 16일 김제(金堤)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6 · 25 동란을 겪었다. 1951년 7월 4일에는 부안(扶安)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으나 공비들의 출몰로 사목 활동이 어려웠다. 1952년 5월 군산(현 둔율동)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고아원을 시작하였고, 군산 비행장에 주둔하고 있던 미 공군의 후원을 받아 1953년 10월 18일, 100평 규모의 고아원을 낙성하였다.
1954년 5월 30일 전주 전동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전쟁으로 손상된 성당 복구와 신자들의 침체된 신심을 일으키는 데 힘썼다. 1955년에는 인민군들에 의하여 파괴된 14처 상을 다시 설치하였다. 5월 전주교구에서는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 남성 프레시디움인 '치명자의 모후' 를 창단하고 이어 7월 25일에는 여성 프레시디움인 '파티마의 모후' 를 창단하는 등 레지오 마리애 활동에 힘을 기울여 1957년 7월 17일에는 꾸리아를 창단하게 되었으며 계속 레지오 마리애 조직과 활동에 주력했다. 또한 학생회를 조직하여 청소년 교육에도 힘썼다. 그러던 중 고혈압으로 1961년 9월부터 1년 반 동안 휴양한 후 1962년 3월 29일 여산(礪山) 본당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 6월 5일 삼례(參禮) 본당 주임으로 부임해서는 1966년 5월 3일 레지오 마리애를 조직하고, 1967년 2월 25일에는 성삼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1967년 7월 8일 부주교에 임명되어 겸직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1967년 3월 30일 본당 사목을 사임하고 휴양하던 중 9월 13일 몬시놀로 임명되어, 10월 3일 한공렬 주교의 주례로 착위식을 가졌다. 1970년 9월 2일 지병인 심장병으로 전주 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 김제 본당 ; 부안 본당 ; 전동 본당 전주교구) 〔金眞召〕
강윤식 (1917~1970)
姜允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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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식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