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본명은 경화. 관명(冠名)은 도항(道項).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한 박사의(朴士儀, 안드레 아)의 부친. 충남 홍주(洪州)의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 어나 33세 때인 1792년경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세례 받기 전인 1794년에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배교하기로 약속하고 석방되었으나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신앙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맹세 한 그는, 외교인이 많이 사는 고향에서는 사사로운 정에 끌려 참된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 지장이 많을 것을 우려 하여 아들 사의와 함께 충청도 단양(丹陽)의 '가마기' 라 는 산골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덕행을 쌓는 등 철저한 신앙 생활을 하던 박보록은, 1794년 12 월에 밀입국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에게서 세례 를 받은 후 많은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입교시 키는 데 노력하였다. 1827년 전라도 지역에서부터 시작 된 정해박해(丁亥迫害)가 단양 지역까지 미치게 되자, 경상도 문경(聞慶)의 멍애목(현 문경군 동로면 명전리)으로 피신하였으나 그 해 4월 예수 승천 대축일에 이웃 신자 들과 함께 모임을 갖던 중 배교자의 밀고로 상주(尙州) 관아의 포졸들에게 붙잡혀 투옥되었다. 그곳에서 박보록 부자는 매우 심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끝까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배교하지 않도록 주위 사람 들을 권면하였다. 그 후 대구(大邱) 감영으로 이송되어 더욱 심한 악형을 당하였으며, 마침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지만 사형 집행이 곧 이루어지지 않아 또다시 옥중 에서 많은 고생을 겪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받은 심한 고문으로 사경을 헤매게 된 박보록은, 결국 병약해 진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5개월 만인 1827년 9월 27일 (음) 옥사하였다. (→ 정해박해)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달레 교회사》 中. 〔편찬실〕
박보록 朴甫祿(?~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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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