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 명은 막달레나. 축일은 9월 20일. 1796년 서울의 외교 인 가정에서 태어나 15세에 출가하였다가 두 딸을 낳은
후 과부가 되었으며, 이어 시부모마저 여의자 할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계모 김 세실 리아로부터 많은 가르침과 권면을 받고 1834년경에 입 교하였다. 얼마 후에는 외삼촌 김사문의 집 곁방에 거처 하게 되었는데, 좁은 집에 여러 식구가 모여 사는 궁핍한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계하였다. 또 어렵고 힘든 일은 언제나 자신이 도맡아 하였으며, 왕래하는 교 우들이 많아 집 안이 소란스럽고 번잡했으나 조금도 이 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 해가 일어나자 집안 사람들은 모두 피신하고 그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가 잠시 집에 들른 외삼촌과 함께 체포 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지 만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박봉손은, 도리어 감언이설로 회유하는 형관에게 "주님을 위해 칼날 아래 죽기를 원하니 국법대로 처형시켜 달라" 고 신앙 고백을 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많은 고생을 하다 가 7개월 만인 그 해 9월 26일(음 8월 1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을 받아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 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한국 성인)
※ 참고문헌 《기해일기》/ 《달레 교회사》 中/ 아드리앵 로네, 안응 렬 역, 《한국 七十九위 순교 복자전》, 가톨릭출판사, 1970/ Coreana beatificationis seu declarationis martyrii Ven. sevorum dei Laurentii Imbert episcopi capsensis(79위 시복 조사 증거서), Roma, 1921. 〔편찬실〕
박봉손 朴鳳孫(1796~1839)
글자 크기
5권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가 체포된 박봉손 막달레나(탁희성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