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의 朴士儀(?~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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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본명은 사심. 사의는 그의 관명(冠名)이다. 정 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박보록(朴甫祿, 바오로) 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아 버지의 영향을 받아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을 뿐만 아 니라, 부모가 병으로 누우면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간호하면서 정성으로 완쾌되기를 기도드릴 정도 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신앙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고향 을 떠나려는 부친의 뜻을 따라 충청도 단양(丹陽)의 가 마기라는 산골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을 돌
보며 전교 및 신앙 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부친과 함께 다시 경상도 문경(聞慶)의 멍애목(현 문경군 동로면 명전 리)이란 산골로 피신하였는데, 그 해 4월 예수 승천 대축 일에 이웃 신자들과 함께 모임을 갖던 중 배교자의 밀고 로 상주(尙州)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감옥 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으나 강한 인내와 용기로 이를 참 아 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보다도 부친이 겪을 고 통 때문에 몹시 괴로워한 나머지 국법에 따라 부자(父 子)를 격리 수용하여 심문하려고 하는 관장에게 같은 장 소에 있게 해줄 것을 애원하였으며, 결국 그의 효성에 감 동한 관장이 이를 허락함에 따라 부친과 함께 대구 감영 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감옥에 갇힌 지 5 개월 만인 1827년 9월 27일에 옥사하였고, 박사의는 동 료들과 함께 10년 이상 옥고를 치르다가 기해박해가 일 어난 뒤인 1839년 5월 26일(음 4월 14일) 순교하였다. (→ 정해박해 ; 박보록)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