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순 (1871~1909)

姜一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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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

신흥 종교의 하나인 증산교(甑山敎)의 창시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 일반적으로 '증산' 또는 '강증산' 으로 불린다. 흥주(興周)의 아들로 1871년(고종 8) 전라북도 고부(古阜)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뒤 전라북도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願寺)에 들어가 도통을 연구하던 중 깨달음을 얻었다고 공표하고, 1902년(光武 6) 추종자들을 모아 증산교를 창립하였으나 7년 만에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증산교는 여러 교파로 분리되었으며, 그에 대한 사상도 일반적인 신흥 종교와 같이 교주로서의 카리스마적 특성이 특히 미화되고 신성시되었다.
〔생 애〕 증산은 어려서부터 학문적 소질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였으므로 일찍 학업을 포기하고 다른 지방으로 가서 어렵게 생활하던 중, 21세 되던 해 고부인(高夫人)과 결혼하여 잠시 처가에서 훈장 생활을 하였다. 증산교 경전인 《대순전경》(大巡典經)에 따르면 위대한 현인이 태어날 때와 같은 태몽이 있었다고 하나 믿을 것이 못된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이 봉기하자 그는 잠시 이들을 따라다니다가 혁명이 실패할 것을 예견하고, 이때부터 이른바 과거 미래를 알아 새 세상을 여는 데 필요한 도통을 얻는 데 노력하였다. 그가 당시 추구하던 것은 신명(神明)에 의한 도술이었고, 신도적(神道的)인 조화였다. 1897년부터 3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던 그는 도중에 충청도 비인(庇仁) 사람 김경흔(金京訴)으로부터 훗날 증산교의 중요한 주문이 되는 태을주(太乙呪)를 받게 되었으며, 이어 연산(連山)에서 김일부(金一夫)를 만나 《정역》(正易)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이후 증산의 득도와 창립 과정은 여느 경우처럼 신비하게 설명되고 있다. 유랑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그는 1901년 다시 집을 떠나 전라북도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가 극심한 수도 생활을 하던 중, 같은 해 7월 천지 대도(大道)를 깨달음으로써 욕심 · 음란 · 성냄 · 어리석음의 네 가지 인성(人性)을 극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가 도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음해부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는 이들에게 수련 공부, 환약 처방, 안수 치료 등을 가르치면서 이른바 만고에 없다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창립하게 되었다. '증산교'라는 명칭은 그 후 그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해 겨울 증산은 고향에 돌아와 증산교 교리의 핵심이자 종교 의식의 중심인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고, 포정소(布政所) · 복록소(福錄所) · 수명소(壽命所) 등의 조직체를 구성하면서 1909년까지 7년 간 모악산을 중심으로 전라북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포교 활동을 하였다. 이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대부분 농민을 비롯한 하류 계층이었다. 증산은 이들에게 자신이 하늘 · 땅 · 인간의 삼계대권(三界大權)을 가지고 있고, 천지를 개벽하고 선경(仙境)을 열 수 있다고 하였으며, 중생을 건지기 위해 세상에 내려왔다고 설교하였다. 그러던 중 1907년 추종자 20여 명과 함께 의병 모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2년 뒤인 1909년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뒤 3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 상〕 증산 사상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유 · 불 · 선(儒佛仙)과 그리스도교 교리 등 여러 종교 · 사상과 민간 신앙 등이 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 자신이 현대의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나의 종교 이념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표방한 데서 기인한다. 또 다른 하나의 특징은 신인동형(神人同形)의 신관으로, 인간을 존숭하면서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가 같으며 인간이란 신의 성격과 형상을 지녔다는 해석이다. 세 번째는 그의 사상 중에서 가장 기이한 내용인데, 그는 역사를 선천운(先天運)의 시대와 후천운(後天運) 시대로 나누어 그중 후자를 선천의 상극(相剋) 현상이 제거된 낙원의 시대로 파악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원신(怨神)의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어 주어야 한다는 해원사상(解寃思想)을 제시하고, 후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천지공사 즉 '옥황상제(玉皇上帝)나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권능으로 천지의 운도(運道)를 고쳐 후천 세계를 개벽(開闢)하는 일' 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증산은 우리 나라의 현실을 감안하여 반 · 상(班 · 常)의 계층 인식이 철폐되어야 함을 주장하였으며, 자신이 구천상제이고 우리 나라는 이를 받아들인 선택된 나라라는 선민 의식을 강조하면서 더 나아가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세계가 통일될 것이라는 강한 민족 사상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주요 사상을 담은 것이 바로 그의 저서라고 전해지는 《현무경》(玄武經)이다. (→ 증산교)

※ 참고문헌  李祥昊 편, 《大巡典經》, 甑山教本部, 1975/ 李正立, 《甑山敎史》, 甑山教本部, 1975/ 張秉吉, 《甑山宗教思想》,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6/ 홍범초, 《甑山敎槪說》, 창문각, 1982/ 盧吉明, 〈甑山敎 發生背景에 대한 社會學的 研究>, 《甑山思想研究》 2, 1976.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