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옥 朴瓏玉(1912~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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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옥 신부.

박용옥 신부.

평양교구 신부. 북한 공산 정권의 희생자. 세례명은 디모테오. 1912년 평원군 공덕면 홍운리에서 태어나 1933년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 현 동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봄 평양 지목구장 모리스(J. Morris, 睦怡世) 몬시뇰의 교구 성직자 양성 정책에 따라 한국 교회 최초로 동료 신학생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과 함께 로마 우르바노(Urbanum) 대학에 유학하였다. 1939년 3월 18일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여 신의주(新義州) 본당 보좌(1939. 3~
1941. 1)로 사목 활동을 시작한 박용옥 신부는, 중화(中和) 본당 주임(1942. 6~1943. 6)에 이어 평양교구장인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의 비서 겸 교구 재정 담당 신부로 활동하였다.
1944년 11월 대신리(大新里)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박용옥 신부는, 부임 초기부터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매괴회, 소화 데레사회, 성모회, 미사회, 성가대 등 여러 단체들의 운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목하는 한편, 본당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을 설립하였다. 8 · 15 광복 후에는 공산 정권의 탄압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1949년 5월 14일 홍용호 주교가 납치되자 그를 대신하여 교구장 권한을 대행하다가 그 해 12월 6일 가을 판공 성사를 집행하던 중 강제 연행되었다. 그러나 곧 풀려 나왔다가 이튿날 새벽에 다시 연행된 박용옥 신부는, 얼마 후 공산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 평양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신문> 1122호(1978. 9. 24), 4면/ 平壤教區史編纂委員會 편,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50년사》, 1983.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