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영 朴垣英(1909~1947)

글자 크기
5
박원영 신부.
1 / 2

박원영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일명 흥원(興元) 1909년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상림리(廣州郡 都尺面 祥林里)에서 박병희(朴炳熙, 요한)의 아들로 태어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수료한 후에 1936년 3월 28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황해도 장연(長淵)본당 보좌로 임명되어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한 박원영 신부는 2년 뒤인 1938년 5월 황해도 신천(信川)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는데, 전임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가 본당 신축 부지(약 5,300평)로 매입해 둔 사직리(社稷里)로 부임 직후 본당을 이전하고, 그곳에 있던 기와집을 임시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옆의 1,200평 대지에는 본당에서 운영하고 있던 미화(薇花)유치원 건물을 신축하였다. 아울러 박원영 신부는 신자들의 신심 함양을 위해 소년회 · 소녀회 · 명도회(明道會) 등의 신심 단체를 조직하였으나, 점차 냉담자가 증가하자 본당 신자들을 주축으로 '자원 희생대' 를 조직하고 기도회 등을 통한 냉담자 회두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 후 1941년 5월 충남 당진(唐津)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약 5년 8개월 동안 그곳에서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1947년 1월 18일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 신천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향잡지》 983호(1947. 2), p. 92/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 출판사, 1984/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