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朴正一(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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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초대 제주교구장. 제6대 전주교구장. 제3대 마산교구장. 세례명은 미카엘. 1926년 12월 18일 평안남도 평원군 동송면 청용리에서 박윤도(스테파노)와 한경옥(안나) 사이의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1944년 12월 평남 승인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2년 반 가량 초등학교 교사(1945. 4~1947. 12)로 재직하였다. 이때 사제가 될것을 결심한 그는 1948년 9월 덕원(德源) 신학교 상급반으로 편입하였다. 그러나 1949년 5월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신학교가 폐교됨에 따라 월남하여 1951년 5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으로 편입하였으며, 1952년 7월 로마에 유학하여 1958년 8월 15일 부제품을 받고 같은 해 11월 23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듬해 6월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철학 및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62년 5월 그레고리오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박정일 신부는, 부산 초량(草梁) 본당 보좌(1962. 9~1964. 1), 진양(晋陽) 문산(文山) 본당 주임(1964. 1~1967. 1), 진주(晋州) 옥봉동(玉峯洞) 본당 주임(1967. 1~1970.8)을 역임한 후 1970년 9월 광주 대건신학대학(현 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윤리 신학 및 사회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교무처장을 역임하였다.
마산(馬山) 중동(中洞) 본당 주임(1975. 2~7)으로 잠시 사목한 시기를 제외하면 계속 대건신학대학 교수 신부로 재임하였던 박정일 신부는, 1977년 3월 21일 제주 지목구(濟州知牧區)가 제주교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4월 15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그 해 5월 31일 제주 중앙 주교좌 본당에서 주교 성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1982년 6월 24일에는 전주교구장으로 전임되어 그 해 8월 10일 해성(海星)중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착좌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후 6년 동안 '사회 속의 교회 구현' 이라는 사목 방침 아래 공동체 활성화 및 복음화 운동 등을 통한 교구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등 전주교구의 발전을 위해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8년 12월 28일에는 다시 마산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전임되어 이듬해 2월 21일 성지(聖旨)여자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착좌식을 가졌다. 그 후 교구 발전을 위해 홍보국 · 성소국 · 사회 복지국을 차례로 신설하였으며, 1991년 10월에는 에콰도르 선교 후원회를 창립한 데 이어 1992년 6월에는 세계 레지오 창설 70주년 및 교구 35주년 기념 복음화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우리 밀 살리기 경남 협의회를 창립하였고, 2000년대 복음화를 위한 교구 발전 기획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박정일 주교는 2000년 기념 회의 담당 주교, 주교회의 상임 위원, 이주 사목 담당 주교, 200주년 사목 회의 위원장,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감사, 노동 청년회 담당 주교, 실업인회 담당 주교, 정의 평화위원회 위원장, 신앙 교리위원회 위원장, 주교 회의 총무, 주교 회의 부의장 등을 겸임하는 등 한국 천주교회의 내적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오고 있다. (→ 마산교구 ; 전주교구 ; 제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신문> 1055호(1977. 5. 1), 1면 ; 1059호(1977. 6. 5), 1면 ; 1312호(1982. 7. 4), 1면 ; 1317호(1982. 8. 15), 1면,5면 ; 1644호(1989. 2. 26), 1면/ 《경향잡지》 1495호(1992. 10), pp. 77~79/ 《천주교 제주교구 100년사 출간을 위한 자료집》 1집, 천주교 제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91/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李裕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