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남대문상업학교(南大門商業學校, 현 동성중고등학교) 2대 교장. 초대 성모병원 원장 박병래(朴秉來, 요셉)의 부친. 세례명은 요한. 1884년 충남 논산군 구자곡면(論山郡 九子谷面) 두각리에서 태어나 13세 때 상경한 뒤 토지 조사국(土地調査局)에 다니면서 일본어를 공부한 박준호는, 만학으로 양정학교(養正學校)와 경성전수학교(京城專修學校)를 졸업하였다. 1908년에 전북 고산(高山)의 되재(升峙, 현 고산) 본당에서 운영하는 태극계명학교(太極啓明學校) 교사로 부임하여 교내에 측량 강습소를 설치하는 등 학생들에게 실기(實技) 위주의 기술 교육을 전수하다가 잠시 관직에 몸담았던 그는, 1922년 2월 서울교구에서 남대문상업학교(당시의 명칭은 소의상업학교)를 인수할 때 중개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학교 서기(書記)를 맡아 크렘프(Krempff, 慶元善) 신부와 함께 후원금 모금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23년 말에는 방규환(方奎煥) 초대 교장의 사임으로 임시 교장을 맡았다가 1924년 5월 3일 2대 교장으로 정식 임명되었다. 박준호 교장은 일제 치하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진보적인 교육 이념에 따라 실업 기술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한편, 봉래동(蓬萊洞, 현 만리동)에 위치한 교사(校舍)가 협소하여 어려움이 증대되자 혜화동(惠化洞)으로 신축 이전한 뒤 1929년 9월 13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또 이를 계기로 학교 이름을 '동성' (東星)으로 변경하는 등 학교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으며, 우수한 제자들을 좋은 직장에 취업시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였다. 이미 1924년에는 계성보통학교(啓星普通學校) 교장직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종현(鐘峴, 현 명동) 본당 청년회 회장, 서울교구 청년 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청년들을 위해 강연과 강습회를 자주 개최하는 등 교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27년 7월에는 문화 창달, 종교 도덕 이념의 보급, 생활 개선 등을 목적으로 정지용(鄭芝溶, 프란치스코), 장면(張勉, 요한) 등과 월간지 《별》을 창간하였는데, 이러한 활동과 활발한 청년 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1년에는 프랑스 한림원(翰林院)으로부터 명예 고등 한림 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러던 중 지병인 위궤양이 위암으로 악화되어 투병 생활을 해야 하였지만, 병상에서도 학교 업무를 놓지 않을 정도로 강한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936년 9월 19일 53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명동 본당 묘원에 묻혔다가 1962년에 도봉산으로 이장되었다. 한편 1940년 12월 18일, 동성상업학교에서는 박준호 교장의 재임 중 업적을 기려 140평의 '박준호 교장 기념 강당' 을 건립하고 낙성식 및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 동성중고등학교 ; 박병래)
※ 참고문헌 《경향잡지》 838호(1936. 9), pp. 545~546, 564~566 ; 930호(1941. 1), pp. 17~19/ 東星中 · 高等學校, 《東星八十年史》, 크리스챤출판사, 1987. 〔李裕林〕
박준호 朴準鎬(1884~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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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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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