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한. 1921년 3월 16일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 학의리(鶴儀里)에서 박길선(朴吉善, 요셉)과 이순이(李順伊, 막달레나)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과천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동성 상업 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와 덕원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성신대학(聖神大學)에 편입하였으며, 1947년 10월 28일 졸업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대전 대흥동(大興洞) 본당 보좌, 1948년 9월 서울 도림동(道林洞, 현 영등포동) 본당 보좌를 거쳐 1950년 4월에는 둔전리(屯田里, 현 수진동)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는 등 적극적인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6 · 25 한국 전쟁으로 본당이 일시 폐쇄되자 입대하여 1951년부터 충남 논산(論山)에서 육군 군종 신부로 활약하였다. 얼마 후 군종단 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56년 제대할 때에는 재임 중의 공로를 인정받아 금성 화랑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해 2월 이천(利川) 본당 5대 주임으로 전임된 박지환 신부는 성당 내에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1959년에는 본래의 성당 부지였던 이천읍 중리(中里)에 벽돌식 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1961년 3월에는 장호원(長湖院, 현 감곡)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장호원읍 노탑 3리에 성당 부지 1,764평을 매입했다.
한편 박지환 신부는 1962년 3월 10일 한국 교회에 정식으로 교계 제도가 설정되면서 서울대교구 관리국장으로 임명되었으나 3개월여 만에 사임하였고, 그 해 10월 7일 양지(陽智) 본당 관할 공소였던 용인군 외사면 백암리(白巖里)의 백암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자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직후 그는 성당 신축 등 본당 기틀을 다지기 위해 많은 활동을 벌였으나 1964년 7월에 경안(慶安, 현 광주)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고, 그와 동시에 백암 본당은 폐지되어 다시 양지 본당 관할로 편입되었다. 이어 고등동(高等洞) 본당 주임(1970. 7~1975. 4)을 거쳐 남양(南陽)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1975년 10월에는 사강(沙江) 본당을 분리시켰으며, 성당 신축을 위한 부지 마련에도 노력하여 1980년 8월에는 본당 부지로 1,000여 평을 기증받았고, 1982년 4월에는 마도면(麻道面) 일대의 염전 1,000여 평을 매입하였다. 아울러 1983년 초부터는 남양 순교 성지의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기금 마련은 물론, 신자들과 함께 직접 공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65세 때인 1985년 3월 29일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하여 미리내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남양 본당 ; 남양 성지 ; 수원교구 ; 이천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 신문> 1450호(1985. 4. 7), 7면/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한종오, 《박지환 신부님은 착한 목자셨구나》, 성황석두루가서원, 1988. 〔李裕林〕
박지환 朴址煥(1921~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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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박지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