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황월 (1872~1966)

朴黃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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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황월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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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황월 수녀.

한국 최초의 수녀. 세례명은 글라라. 수도명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872년 10월 1일 서울 홍제동 (弘濟洞)에서 박순집(朴順集, 베드로)과임 바르바라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일가 친척 가운데 14명의 순교자를 배출할 정도로 오랜 신앙을 간직해 오고 있었는데, 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한 선교사들의 시신을 안장해 주었던 조부 박 바오로는 교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다가 병인박해 때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하였다. 그리고 순교 성직자들의 유해 발굴 및 이장에 참여하여 여러 신자들의 순교 행적을 증언하였던 부친 박순집은 홍제동 공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말년에 제물포(현 답동)로 이주하여 그곳의 전교에 헌신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같이 구교우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된 박황월은, 일찍부터 수도자가 될 결심을 하고 16세 때인 1888년 7월 22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처음 한국에 진출하자 그 해 7월 29일 김해겸 · 김순이 · 김복우지 · 심 바르바라 등 4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입회하였다. 박황월 수녀는 수녀회에서의 고유 임무를 부여받아 활동하는 한편, 틈틈이 프랑스어와 라틴어, 기도문 등을 배웠는데, 특히 프랑스어를 빨리 익혀 동료들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입회 2년 만인 1890년 8월 15일 동료 6명과 함께 청원자가 된 박황월 수녀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라는 수도명을 받은 후 수련원에 배치되어 맡은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수녀 양성 교육을 받았다. 1894년 6월 30일 착복식을 가진 뒤에는 제물포의 수녀원 분원에 파견되어 약 1년 동안 활동하였고, 마침내 1898년 8월 28일에는 첫 서원을 하였다. 이 서원식은 곧 이 땅에서 첫 한국인 수녀를 배출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첫 서원 후에는 다시 제물포 분원에 파견되어 약 3년 동안 지원자들을 위한 교육 및 강론, 통역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이후에는 주로 명동 본원에 머무르면서 수녀원 내의 서양 주방에서 일하고 틈틈이 통역 일도 담당하다가 45세 때인 1916년 8월 24일 종신 서원을 하였다. 1958년 7월 29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 진출 70주년 기념식과, 아울러 박황월 수녀와 김 생폴 수녀의 입회 70주년을 맞이하는 축하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87세였다. 이처럼 한국 최초의 수녀로서 78년이라는 기간을 수녀원에서 보낸 박황월 수녀는, 95세 때인 1966년 3월 18일 노환으로 사망하여 용산 샬트르 수녀원 묘지에 묻혔으며, 그 후 용인 수녀원 묘지로 이장되었다. (→ 박순집 ;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 참고문헌  <가톨릭 신문> 512호(1966. 3. 27), 3면/ 韓龍煥 · 徐相堯 편저, 《福音의 證人》,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pp. 163~169/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편, 《한국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991/ 《교회와 역사》 250호(1996. 3), 한국교회사연구소, pp. 10~13.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