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후재 (1799~1839)

朴厚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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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은 박후재 요한(탁희성 작).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은 박후재 요한(탁희성 작).

성인.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명관. 축일은 9월 20일. 1799년 경기도 용인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부친 요한이 순교한 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장성해서는 물장사를 하는 노모를 돕는 한편 자신은 짚신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항상 바른 언행과 뛰어난 덕행으로 교우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36세 때에는 교우 박 안나와 결혼하여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미 순교할 원의를 가지고 있던 박후재는 아내와 자식을 피신시키고 집을 지키다가 4월에 체포되었다. 살이 찢겨 나가고 뼈가 드러나는 등 죽을 위험에 처하였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갇힌 교우들을 권면하고 위로하였으며, 다른 죄로 옥에 갇혀 있는 외교인들에게까지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권유하였다. 뿐만 아니라 배교를 강요하는 박해자들을 향해 "하느님은 저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느님은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명하셨습니다" 라고 교리를 설명하면서 죽을 때까지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몹시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같은 해 9월 3일(음 7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4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한국 성인)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기해일기》/ 《승정원 일기》/ 《달레교회사》 上 · 中.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