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이 정치 · 사회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교리를 내세워 특권과 부를 누리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 이 용어는 12~13세기 이래 유럽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지만,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 용어 자체로는 성직주의(clericalism)에 반대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지만, 성직주의는 확실한 이론과 추구하는 목적이 있는 주의(ldeology)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반성직주의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가톨릭 교회 내의 반성직주의 : 교회 내에서 발생한 반성직주의는 중세 때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이 가톨릭화된 12세기경부터 교회의 교리 · 문화 · 정책이 사회를 주도하였는데, 이때 성직자들은 성소와 사목에 대한 관심보다는 성직 수행에서 부수적으로 얻는 부와 명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 전체가 가톨릭적인 상황에서 일부 고위 성직자들이 특권과 부를 추구하는 경향은 일반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향의 성직자들도 점차 증가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의 정신대로 살고자하는 사람들이 성직자들의 쇄신과 그들의 삶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게 되었는데, 이를 반성직주의라고 한다.
또 다른 반성직주의는 19세기 들어 국가와 교회 간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생김으로써 발생하였다. 우선, 가톨릭의 영향력이 없고 신자수가 현격히 적은 국가에서 교회가 원했던 것은 가톨릭도 다른 종교들과 같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었다. 반대로 가톨릭 신자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나라에서는 가톨릭에 대한 여러 가지 특권과 가톨릭의 입장이 담긴 정책이 수행되기를 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국가 내에서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교황청과 사제들, 수도자들이 세력을 형성하자 이를 성직주의로 간주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그들은 국가 내에서 교회, 특히 성직자들의 역할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일부 가톨릭 국가에서는 교황청이나 성직자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킨 정교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특히 멕시코에서는 성직자들의 시민권이 박탈되기도 하였다.
가톨릭 교회 밖의 반성직주의 : 일반적으로 반성직주의는 가톨릭 밖의 반성직주의를 의미하는데, 특히 가톨릭을 주요 적대 대상으로 하며 반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가톨릭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에서 관념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지식인들로부터 출발한 이 반성직주의의 경향이 현저하게 드러난 것은 18세기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왕정 체제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이성을 존중한다는 입장으로 출발한 그들은 종교적인 요소들을 풍자 등의 방법으로 조롱하고 비난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백과 전서파' (Encyclopédiste)라고 불리는 학자들은 《백과 전서》 (L'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e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를 편찬하면서, 무신론적이고 반가톨릭적인 입장에서 그 내용을 설명함으로써 반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더욱이 프랑스 왕의 언론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검열, 왕에 대한 가톨릭 성직자들의 영향력에 분개하였던 것이다. 그로인해 프랑스 대혁명 초기에 성직자들이 많이 협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에 협조하지 않은 성직자들을 박해
하였고 교회의 특권을 폐지하고 재산을 몰수하였다. 더불어 반교회적 반성직주의의 경향이 생겨났고, 이는 성 직자들을 경시하는 풍조로 발전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그 성격 자체로 혁신적이지 못하고 보수적인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가를 무시하고 존재할 수도 없는 위치이지만, 19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자나 이탈리아의 민족주의자들은 성직자들을 보수적인, 또는 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여기고 반성직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된 이유 중에는 성직자들이 국가 권력에 맹종한다고 여기고, 성직자들이 과학과 인문주의적인 사고에 무지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유럽 전체만이 아닌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도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격변기를 겪었다. 새로운 신학적 · 철학적 이론들이 생겨났고, 여러 형태의 세속주의와 사회 문제, 근대주의(modernism), 교황령 문제 등으로 인해 교회는 공격을 받았으며, 교회의 모든 정책과 영향력을 감소시키고자 하였다. 그로 인해 수도회는 탄압을 받았는데, 특히 예수회에 대한 탄압이 가장 심하였다. 또 교회의 재산이 몰수당하였고, 세속교육은 장려된 반면 종교 교육은 제재를 받았으며, 세속 결혼과 이혼이 국가법적으로 도입되었다.
이러한 반성직주의적인 경향은 19세기에 나타난 교황 지상주의(ultramontanism)로 인해 다소 감소되기는 하였지만, 그 영향력은 여러 국가에서 계속 이어졌다. 1931년 반성직 법률이 제정된 스페인에서는 사제와 수녀들이 살해당하였으며,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 위성 국가가 된 동부 유럽의 국가에서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 이라는 주장이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고위 성직자들이 투옥되었고, 수많은 주교 · 성직자 · 평신도들이 감옥이나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학살당하였다. 종교 교육과 종교 서적 출판도 금지되었으며, 소수의 수도회만이 남아 곤욕을 치렀다. 현재는 많은 국가에서 반성직주의적인 경향이 사라지거나 감소되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남아 있다. (→ 교황 지상주의 ; 평신도주의)
※ 참고문헌 G. Martina, La chiesa nell' età del liberalismo, Morcellian-Bresia, 1980/ -, La chiesa nell'età del totalitarismo, Morcellian-Bresia, 1980/ H. Jedin ed., Storia della chiesa, V .v-1~2, Jaca book/ Marietti ed., Nuova storia della chiesa, V.i~v., Torino, 1970. 〔具本植〕
반성직주의 反聖職主義 〔라〕anticlericalismus 〔영〕anticleri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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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