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기본 경전으로 대승 불전(大乘佛典)의 하나. '반야 바라밀다 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의 약칭이다. 불교 성전(聖典) 가운데 가장 짧은 경전으로 경의 제목에 마하(摩訶)를 넣을 경우 전문이 262자이다. 내용이 짧고 압축적이어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대의 불교 문화권에서는 주로 독송용으로 많이 읽힌다.
〔어 의〕 산스크리트어로 《반야심경》의 원제목은 프라즈냐 파라미타아 흐릿다야 수우트라(Prajñāpāramitā hrdaya sūtra)이다. 프라즈냐는 '절대 완전한 지혜' , '사물을 통찰하는 형안(炯眼)' 이라는 의미이고, 파라미타아는 파라(pāra, 언덕)와 미타아(mitā, ~에 도달한다)의 합성어이며, 흐릿다야는 심장, 중심, 기둥의 뜻이고, 수우트라는 '경' (經)이다. 따라서 우리말로는 '절대 완전한 지혜에 의해서 (열반이라는) 피안(彼岸)에 도달한 상태를 가르친 부처의 말씀' 이라는 의미가 된다.
〔내 용〕 《반야심경》은 대승 불교 초기의 흐름을 주도하였던 반야 사상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후 인도의 부파 불교(部派佛敎) 시대에는 형식적인 불교관이 유행하였다. 또 출가 생활만을 예찬하여 불교의 가르침이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된 적도있었다. 이러한 병폐를 바로잡기 위하여 부파 불교 교단을 통렬히 비판한 대승 불교는, 새로운 인격적 모델로서 보살(菩薩)을 등장시켰고, 교리적으로는 부파 불교의 실재적(實在的)인 불타관(佛陀觀)을 비판하는 공(空) 사상을 확립시켰다. 이에 의하면 사물은 인연에 따라 화합됨으로 사물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변할 수 없는 실재는 존재할 수 없고, 실체(實體)가 없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그것이 공(空)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을 허무 적멸(虛無寂滅)로만 이해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다고 가정할 때, 그 꽃의 본성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공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그 꽃의 아름다움은 거짓[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꽃은 아름다움에 집착하지도 않고, 떨어진다는 것을 서러워하지도 않는다. 바로 여기에 진실한 중도(中道)의 세계가 열린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달관의 지혜를 '반야' 라고 불렀다.
《반야심경》의 주인공은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승 불교의 이상적인 인격 가운데 '자비의 화신' 이다.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 주기 위하여 33가지의 몸을 나타내며, 어떠한 곤경에서도 자비를 베푼다는 구원(久遠)의 보살상이다. 이 관세음보살은 오온(五蘊)을 모두공이라고 판단한다. 오온은 인격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로 색(色 ; 물질적 요소), 수(受 ; 느낌의 작용), 상(想 ; 상상력), 행(行 ; 행위, 잠재력), 식(識 ; 마음씨)인데, 이것이 모두 공임을 알 때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반야심경》의 핵심은 색불이공(色不異空), 공즉시색(空卽是色)으로 요약된다. 색은 물질이며, 중생을 상징한다. 반면 공은 사물의 본성이며, 부처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어째서 중생과 부처가 하나인가. 첫째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없기 때문이다. 부처는 중생을 위해서 이 세상에 출현한다. 따라서 부처가 없다면 중생이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중생을 버리고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 그 자체가 부처라는 뜻이다. 흔히 해탈이라고 하면 헛된 색신(色身)을 버리고 부처라는 인격으로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생각을 갖지만, 그것은 오류이다. 헛된 색신이 곧 바로 부처임을 깨달아야 한다. 색신과 법신(法身)이 하나라는 인식이 반야이다. 셋째 중생의 세계 속에서 부처를 구현해야 하고, 부처의 세계 안에서 중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중생으로서 사는 것은 불행한 삶이다. 비록 중생이지만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원(願)을 품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부처라고 해서 혼자만의 안일과 청정 속에 맴돌아서는 안된다. 중생의 아픔을 없애 주고 중생과 더불어 살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이 구절은 반야의 철학성과 실천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명구로 여겨진다.
다음으로 《반야심경》에서는 중도(中道)를 말한다. 공의 세계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하였다. 생김이 있으면 없어지게 마련이고, 없어지면 또다시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극한 진여(眞如)의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상대적인 가치관은 초월된다. 따라서 《반야심경》의 논리는 '인연→공(空)→중도' 라는 도식을 보여 준다. 여기까지는 주로 내 스스로의 인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리행(自利行)이라고 말하며, 그 다음부터는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타행(利他行)이라고 한다. 우선 반야를 가진 중생이 얻는 이익은 열반(涅槃)이다. 열반은 실재의 세계라기보다는 어떤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번뇌 망상이 사라진 곳, 그윽한 본래의 마음을 회복한 삶의 형태이다. 이것은 삼독(三毒 ; 貪慾, 瞋喪, 愚癡)이 끊어졌다는 의미에서 공이고, 삼학(三學 ; 戒學, 定學, 慧學)이 가득 차 있다는 뜻에서 불공(不空)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들이 바로 이 열반의 경지를 얻었으며, 우리의 수행 목표 또한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말미에 있는 진언(眞言)은 통상 해석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고대의 인도인들은 신비적인 영감(靈感)을 토로한 주문(呪文)들은 해석과 동시에 그 신비성이 상실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 진언 중 가테(gate)는 '~로 간다' (to go)의 과거 분사형이고, 스바하(Svāha)는 행운을 비는 축원의 뜻을 담고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갔다! 갔네! 저 언덕에 갔네. 우리 모두 함께 저 (열반의) 언덕에 갔네. 오! 깨달음이여. 축복이 있으라' 라는 뜻이다. 통상 세 번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 상례이다.
한편 《반야심경》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특징이 있다. 즉 불교 경전은 경(經, sūtra), 율(律, vinaya), 론(論, śāstra)의 집합이므로 통상 삼장(三藏)이라고 하는데, 이 가운데 경은 언제나 '여시아문'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나이다)이라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반야심경》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주석 및 번역본〕 《반야심경》의 내용은 짧지만, 의미가 심장하기 때문에 대승 불교 문화권에서는 가장 많이 읽혀졌을 뿐만 아니라, 주석서들도 숱하게 남아 있다. 수(隋) · 당(唐) · 송(宋) · 명(明) · 청(淸)나라에 이르기까지 80여 종의 한문 주석서들이 나왔고,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석서를 남겼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 617~686)는 《반야바라밀다심경소》를 저술하였으나 남아 있지 않고, 원측(圓測, 613~696)의 《반야바라밀다심경찬》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이 저술은 특히 유식학(唯識學)의 입장에서 본 반야 사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채로운 글로 꼽힌다.
《반야심경》의 원본인 산스크리트본은 대본(大本)과 소본(小本) 두 종류가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은 소본으로, 일본의 법륭사(法隆寺)에 소장되어 있다. 이것의 유통 경로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으나, 한국에서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번역본으로는 티베트의 번역본이 있고, 한문(漢文) 번역본도 7종류나 되는데,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현장(玄奘)의 번역본이다.
우리말로 출판된 《반야심경》은 10여 종류로 권상로(權相老)의 《반야심경》, 홍정식(洪廷植)의 《반야심경 · 금강경》, 이기영(李箕永)의 《반야심경 · 금강경》, 정병조(鄭柄朝)의 《지혜의 완성》(반야심경) 등이 있다. 대부분은 《반야심경》의 대의를 불교 사상적 입장에서 해설하였고, 또 선종(禪宗)의 입장에서 《반야심경》을 해석하려는 노력들도 있어서 《금강경》과 함께 취급한다. 《반야심경》과 비슷한 성격으로 반야 사상을 담고 있는 경전들로는 《유마경》(維摩經), 《금강경》(金剛經), 《대반야바라밀경》(大般若波羅蜜經),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 《인왕호국반야경》(仁王護國般若經) 등이 있다. (→ 불교)
※ 참고문헌 《般若心經》/ 《維摩經》/ 《金剛經》/ 《大般若波羅蜜經》/ 《小品般若經》/ 《仁王護國般若經》. 〔鄭柄朝〕
《반야심경》 般若心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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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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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산스크리트어 원전(왼쪽)과 《반야 바라밀다 심경》(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