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동구 서호동 47 소재. 1960년 3월 19일 신암동(新岩洞)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관할 구역은 동구 안심1~4동과 경산시 하양읍 청천동 일대. 관할 공소는 청천 1개소. 〔교 세〕 1968년 738명, 1974년 781명, 1979년 1,298명, 1986년 1,507명, 1991년 1,829명, 1995년 2,326명. 〔역대 신부〕 초대 이성만(李性萬) 이냐시오(1960. 3~1970. 11), 2대 최봉도(崔奉道)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70. 11~1975. 10), 3대 이강언(李康彥) 바오로(1975. 10~1978. 9), 4대 정광영(鄭光永) 안토니오(1978. 9~1979. 6) , 5대 정순재(鄭淳在) 베드로(1979. 6~1980. 1) 6대 김용길(金容吉) 바오로(1980. 1~1982. 1) , 7대 이정우(李庭雨) 알베르토(1982. 1~1985. 1), 8대 김종헌(金鍾憲) 발타살(1985. 1~1986. 1), 9대 정기모(鄭奇謨) 요한 보스코(1986. 1~1989.6), 10대 이창수(李昌洙) 야고보(1989. 6~1991. 7), 11대 오철환(吳哲煥) 바오로(1991. 7~1994. 9), 12대 박강수(朴康洙) 로무알도(1994. 9~현재).
〔공소 시대와 본당 설립〕 이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대구 파동(巴洞)에 살던 유 가타리나가 영세한 뒤 1907년경 하양군 북면(현 대구시 동구 동호동)으로 이주해오면서부터였다. 유 가타리나의 전교로 30여 세대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교우촌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힘을 모아 1920년에 부지 77평을 매입하고 3칸의 공소 강당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년 뒤인 1921년에 이 지역을 방문한 대구(현 계산동) 본당의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에 의해 반야월 공소로 설립되었으며, 1931년에 이르러 하양(河陽) 본당 관할이 되었고, 1945년에는 신암동 본당 관할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근 40년 동안 공소 생활을 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기를 꾸준히 희망하였던 이곳 공소 신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신암동 본당 6대 주임 임화길(林和吉, 안드레아) 신부는, 본당 분할 계획을 세우고 현 본당 소재의 부지 72평을 매입한 뒤 1957년 7월 7일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5개월여 만인 12월 30일에 91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어 1959년 6월 5일에는 반야월유치원을 개원하였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같은 해 9월 폐원하였다. 그러나 공소 신자들의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반야월 공소는 이듬해 3월 19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이성만 신부가 부임하였다.
〔정착과 변모〕 이성만 신부는 1962년 6월 10평 규모의 사제관(현 교리 교사실)을 완공한 데 이어 1967년 5월에는 25평 규모의 강당을 마련하는 등 여러 부대 시설을 건립하고 평신도 단체들을 설립하였다. 이렇듯 10여 년 동안 본당의 기틀을 마련한 이성만 신부가 1970년 11월 11일 은퇴하고, 후임으로 부임한 군위(軍威) 본당의 최봉도 신부는 1971년에 본당 주보(週報)를 발행하여 신자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었으며, 이듬해 1월부터는 헌금 배가 운동 및 신자 배가 운동을 전개하여 그 결과를 집계하고 이를 사목 계획 수립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그 해 7월 1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즐거움의 원천' 쁘레시디움을 결성하였고, 1975년 10월 15일에는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한편 신자들은 1975년 7월 15일 문화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만 5년이라는 오랜 공사 기간을 거친 끝에 6대 김용길 신부 때인 1980년 11월 30일에 완공하였다.
1982년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해 본당에서는 고산 열차 사고로 숨진 윤 아가다의 부모가 봉헌한 사망 위로금으로 로사리오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8대 김종헌 신부 때에는 첫 성령 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1985년 10월 6일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미사와 친선 체육 대회를 거행하였다. 또 이 무렵에 와서는 성서 40주간 행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앙을 성숙시켜 나갔으며, 중고등부 학생회 회지 <칡넝쿨>을 창간하였고,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한 인성회도 창립하였다. 9대 주임 정기모 신부가 '행복한 가정, 사랑스런 내 가정' 을 사목 지침으로 하여 가정 성화에 중점을 두고 사목한 데 이어 10대 주임 이창수 신부 때에는 아버지 성서 모임이 결성되었고, 하양 본당 관할이었던 청천 공소가 반야월 본당 소속이 되었다. 1993년에는 '파스카 성서 가족 운동' 을 통하여 성가정의 확산과 올바른 믿음 보급에 주력하였으며, 본당 내 사회 봉사회에서 주관하는 '자원 봉사자 학교 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12대 주임 박강수 신부는 주일학교 학생 등록제를 도입하여 학부모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이미 1986년부터 계획해 왔던 새 성당 건립 계획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동구 서호동 10번지와 8번지 일대에 847평의 부지를 최근 매입하게 되어 1998년부터 신축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 대구대교구 ; 신암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教區總覽》,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0/ 天主教 大邱大教區史 編纂委員會 편, 《大邱本堂 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사 편찬위원회, 《교구사 연대표》,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4. 〔金成喜〕
반야월 본당
半夜月本堂
글자 크기
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