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여 본당

盤如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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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2동 1035-6 소재. 1977년 2월 9일 동래(東萊)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바오로. 관할 구역은 재송동과 반여2 · 3동 전역. 〔교 세〕 1977년 712명, 1983년 1,943명, 1990년 3,640명, 1995년 5,134명. 〔역대 신부〕 초대 오로크(C. O'Rourke, 오) 가롤로(1977. 2~1980. 10), 2대 퀸(J. Quinn, 고) 요한(1980. 10~1984. 5), 3대 슈미트(W. Schmitt) 굴리엘모(1984. 5~11), 4대 오코너(M. O'Connor, 고마운) 마우리시오(1984. 11~1987. 7), 5대 양덕배(楊德培) 요한(1987. 7~1988. 2), 6대 신요안(申堯安) 세례자 요한(1988. 2~1993. 2), 7대 김성한(金晟漢) 안드레아(1993. 2~1996. 2), 8대 양요섭(楊要燮) 요셉(1996.2~현재).
부산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1972년경에 서구 서대신동(西大新洞) 구덕(九德)의 수재민들과 부산 고지대의 철거민들이 이주해 옴으로써 형성되기 시작한 반여동에 이주민들의 계속적인 증가로 교세가 확장되자, 1973년 5월 10일 동래 본당에서는 반여2동에 있는 한독유치원 건물에 반여 공소를 설립하고, 동래 본당과 사상(沙上) 본당 신부들이 번갈아 이곳을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나 본당 설립을 희망한 공소 신자들은 1976년 5월 3일 기성회를 조직하여 본당 승격 운동을 추진하였고, 이에 교구에서도 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동래구(현재는 해운대구) 재송동(栽松洞) 164-69번지의 부지 250평을 매입하였다. 같은 해 9월 10일 성당 공사에 착수하였고, 이듬해 2월 9일에는 신자들이 그토록 염원하였던 본당 승격을 보게 되었으나, 당시는 성당을 완공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본당 공동체는 한동안 공소 강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6월 29일 성당이 완공되면서 입주하였지만 재송동 지역의 구획 정리 사업으로 해마다 장마철이면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성당은 크고 작은 피해를 자주 입었다. 또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성당 이전 문제가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6대 주임 신요안 신부 때인 1989년 5월 1일에는 재송동 1121-2번지에 있는 건설 회사 소유의 토지 600평을 새 성당 부지로 매입하였으나, 인근에 있는 사찰 옥천사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성당 이전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던 중 관할 관공서 등 행정 기관의 도움으로 현 성당부지 597평을 상호 매매 형식으로 교환함으로써, 1990년 10월 15일에 현 성당 부지에 대한 사용 허가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992년 6월 28일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건평 882평)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7대 주임 김성한 신부 때인 1993년 4월 30일에는 바뇌의 성모상을 건립하였고, 1995년 12월 2일에는 '각 구역 · 반 대항 성가 경연 대회' 를 개최하여 반원들 간의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였으며, 8대 양요섭 신부 때인 1996년 4월 20일에는 '장애인 초청 잔치 한마당' 을 개최하여 150명의 시각 · 청각 장애인들과 지체 부자유자들이 본당의 봉사자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를 계기로 구역 내 장애인들의 실태를 파악한 반여 본당은 지속적으로 이들을 돌보기로 하는 한편, 전 신자들이 봉사 요원이 되어 극빈 가정 · 소년 소녀 가장 · 불우 노인 돕기, 무료 급식소 운영 등 사회 복지 전반에 걸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게 되었다. (→ 부산교구 ; 동래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