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성 본당

半月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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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제요리 619 소재. 1958년 7월 8일 감곡(甘谷)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베드로와 바오로. 관할 구역은 이천군 설성면, 율면 전역과 모가면 진가리, 양평리, 서경리, 송곡리, 안성군 일죽면 당촌리, 능국리, 신흥리, 장호원읍 대서리 일대. 〔교 세〕 1972년 2,483명, 1979년 2,316명, 1985년 2,155명, 1990년 2,193명, 1995년 2,630명. 〔역대 신부〕 초대 박성춘(朴性春) 레오(1958. 7~1960. 1), 임시 박지환(朴址煥) 요한(1960. 1~3), 임시 정주성(鄭主成) 요셉(1960. 3~9), 2대 이중현(李重鉉) 요한(1960. 9~1967. 1), 3대 김병열(金炳烈) 보니파시오(1967. 1~10), 4대 심영택(沈榮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67. 10~1970. 7), 5대 최재용(崔在鎔) 바르톨로메오(1970. 7~1975. 3), 6대 이규철(李圭喆) 요셉(1975. 3~1976. 11), 7대 방상복(房相福) 안드레아(1976. 11~1978. 4), 8대 김학렬(金學烈) 요한(1978. 4~1979. 3), 9대 이상영(李相榮) 베드로(1979. 3~1983. 8), 10대 윤종대(尹鍾大) 도미니코(1983. 8~1985. 2), 11대 최성환(崔星煥) 바오로(1985. 2~1987. 2), 12대 이원태(李元泰) 마르티노(1987. 2~1990. 12), 13대 이훈(李薰) 사도 요한(1990. 12~1993. 2), 14대 최중인(崔重仁) 아우구스티노(1993. 2~1994. 2), 15대 최경남(崔景南) 베네딕도(1994. 2~1997. 2), 16대 이강건(李康建) 빈천시오(1997.2~현재).
〔공소 시대〕 1896년경에 설립된 죽산의 감리(현 安城郡 一竹面) 공소가 현 반월성 본당 관할 지역 내에 설립된 최초의 공소였는데, 당시 장호원(현 감곡) 본당의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가 이 공소를 방문하였을 때의 신자수는 13명이었다. 1898년에 25명으로 증가하였으나, 1904년에는 14명으로 줄어들었다가 결국 이듬해에 폐쇄되었다. 또 1917년에는 진천 삼거리에 살던 윤중선 (프란치스코)이 신자들과 함께 밤골(栗面 本竹里, 방골)에 정착하여 옹기점을 경영하면서 방골 공소를 설립하고 전교에 힘써 이듬해에는 신자수가 80명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옹기업의 쇠퇴로 인해 1930년대에는 단 몇세대만이 공소를 지키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36년 설성면 신필리(新筆里)에 세붓[細筆]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 공소는 이후에 설립되는 이 지역 일대 공소들의 모(母) 공소가 되어 1951년 팔계(八界, 설성면 松界里), 1952년 암산리(岩山里), 1953년 능골(長陵里), 그리고 1954년에는 반월성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1949년에는 안성군 일죽면 능국리(菱菊里)에도 공소가 설립되어 설성면 대죽리와 죽산 삼성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큰 공소로 발전하였다. 한편 1953년 휴전이 되면서 각 공소마다 신자수가 급증하게 되자 감곡 본당 7대 주임이던 메리놀 외방전 교회의 레이(J.Ray, 李) 신부는 이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계획하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신자로부터 현 본당 소재 1,830평을 희사받아 1955년에 24칸의 기와집 강당을 건립하였다.
〔본당 승격과 정착〕 1958년 6월 23일 청주 대목구가 설정됨에 따라 감곡 본당이 이에 편입되자, 반월성을 중심으로 한 여러 공소 신자들은 안성 본당이나 이천 본당의 미사에 참례해야 했으므로 신자들의 본당 설립에 대한 염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당시 본당 후보지로 물망에 올랐던 지역은 장호원을 비롯하여 안성군 이죽면의 죽산리와 장릉리였으나, 반월성 지역의 교세 증가 현상이 두드러지자 서울 대목구에서는 같은 해 7월 8일자로 반월성 본당을 설립하고 안성 구포동(九苞洞) 본당의 박성춘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박성춘 신부는 건강상의 이유로 부임 1년여 만에 휴양하게 되었고, 대신 이천 본당의 박지환 신부와 장호원 본당의 정주성 신부가 교대로 본당 사목을 맡았다. 그 후 1960년 9월에 2대 주임으로 임명된 이중현 신부에 의하여 성당 신축 공사가 시작되어 1964년 8월 28일에 완공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농 현상의 심화로 반월성 본당 또한 신자수가 격감하였다. 이에 본당에서는 본당과 공소 신자들 간에 친교를 증진시킬 수 있는 행사를 자주 개최하였으며, 농한기에는 집중적으로 교리 교육을 실시하는 등 선교 활동에도 주력하였다. 1977년 12월 28일에는 사제관과 교육관을 완공하였으며, 5년 후인 1981년 10월 30일에는 수녀원을 건립하였고, 1983년부터는 3년 간에 걸쳐 성당 보수 공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또 1993년 6월에는 노후된 사제관과 교육관을 보수하였고, 11월에는 여주군 가남면에 가남(加南) 본당이 설립됨으로써 관할 구역 가운데 송계리와 암산리 지역이 신설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최근 농촌 사회의 성장에 따라 경제적 자립을 꾀하고 있는 반월성 본당은 설립 50주년이 되는 2008년에 새 성당을 건립한다는 장기적인 계획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 수원교구 ; 감곡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甘谷本堂九十年史》, 천주교 감곡 교회, 1986/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