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反 - 主義 〔라〕Antisemitismus 〔영〕Antisemi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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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다고 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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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다고 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종교적 · 경제적 이유에서 유대인을 배척 · 절멸시키려는 태도나 활동 또는 사상. 이 용어는 독일의 인종주의자 마르(W. Marr)에 의해서 1879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 고전적 반유대주의는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에 의해 팔레스티나가 정복된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주변 문화와 동화되기를 거부하자, 유대주의가 종교적 및 국가적 통일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던 일단의 보수 지식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특히 그리스 · 로마의 우상과 황제에 대한 유대인들의 숭배 거부 행위는 반유대주의는 물론 유대인에 대한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더불어 이교적 반유대주의는 쇠퇴하였으나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생겨났다. 즉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고, 사도들과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자들을 억압하였으며 복음 전파를 방해하였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죽인 것에 대한 징벌로서 저주받고 흩어진 민족"이라는 유대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적대적인 태도가 나타났으며, 이러한 견해는 4세기 이후에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됨에 따라 더 심하여졌다.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us, 354~430)도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바오로의 태도(로마 11, 2. 14-15. 28-29)를 고수하고 있으나, 유대인들의 추방을 속죄의 증거로 인식하였다.
중세 : 313년의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부터 중세 말까지 유대인들은 유럽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인들로부터 심한 차별 대우를 받았다. 중세 초에 그들은 세례와 추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으며, 그리스도교 신자 여성과의 결혼 금지, 유대교 회당의 건축과 안식일 예배의 규제, 공적인 직책의 취임 금지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핍박을 받았다. 중세 때 유대인들은 상업과 교회가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하였던 고리 대금업에 종사하였는데, 이것은 중세인들이 유대인들을 진지하지 못한 불신자나 일종의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사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11세기 말부터 거의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역사는 대부분 학살 · 약탈 · 추방 등으로 얼룩져 있다. 많은 교황의 교서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세례의 강요 · 약탈 · 학살 및 다른 불의한 행위들을 비난하였지만, 대중적인 광신 행위들을 진정시키지는 못하였다.
근대 : 근대에 들어서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추방과 방랑의 불안한 생활을 강요당하였으나, 학살은 점차 줄어들었다. 18세기에 유대인들의 사회 · 경제적 지위는 개선되었으나, 대부분의 직업들이 그들에게는 폐쇄된 채로 계속 남아 있었다. 유대인들의 정치적 해방은 신로마 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Joseph Ⅱ , 1765~1790)의 관용 정책과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Louis XVI, 1774~1793)의 해방 정책에 의해서 촉진되었고, 미국의 독립 및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현실화되었으며, 그 이후 급속히 확산되어 1870년경에는 러시아와 루마니아를 제외한 전 유럽에서 최종적으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 이념적 특징을 지닌 엄격한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가 1870년 독일에서 처음 나타난 이후, 유대인들은 열등하고 부패하며 동화될 수 없는 민족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반유대주의적 파장은 확산되었다. 급기야 독일에서는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약 225,000명이 서명한 청원서가 당시 총리였던 비스마르크(O. von Bismarck, 1815~1898)에게 제출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유대인으로 육군 장교인 '드레퓌스(A. Dreyfus, 1859~1935)가 1894년에 반역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12년 뒤 복권된 사건' 과 1905년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 문명의 전복을 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시온의 장로들의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의 출현은 당시 반유대주의적인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18세기 말 이래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서부 지방의 강제 거주 구역에 갇혀 살아야 했으며, 1882년 광범위한 반유대주의 폭동 이후에는 유대인들의 재산이 몰수되고 강제 거주 구역 내의 시 · 읍으로 주거를 제한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1917년의 러시아 혁명에 유대인 지도자들이 다수 참여함으로써 반유대주의에 대한 제도적인 금지를 얻어낼 수 있었으나, 그것은 유대인들을 유대주의로부터 떼어 내기 위함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은 또한 '유대 볼셰비즘' 이라는 명칭으로 드러나 새로운 혐오의 표적이 되었다.
히틀러(A. Hitler, 1889~1945) 집권하의 독일은 반유대주의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1934년 히틀러는 수상으로 선출된 후에 유대인들을 숙청하기 시작하였는데, 1935년에 시민권을 박탈한 데 이어 교직 · 언론 · 노동 기구들로부터 이들을 배제하였고, 독일인들과의 결혼 · 공직 진출 및 투표 금지 조처가 취해졌다. 반유대주의는 독일 정부의 공식 정책이 되어 학교에서는 반유대주의를 가르쳤고, 학술지와 연구 기관을 통해서는 이론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1941년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에 의해 결정된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히틀러의 박해는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였으며, 교회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반유대주의는 서유럽과 미국에서 그 지지 세력을 잃었으나, 소련과 그 위성 국가들에서는 심하게 전개되었다. 스탈린 치하에서 히브리어 출판물들은 억압받았으며, 시온주의(Zionism)는 반역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 작가들은 구소련의 비밀 경찰국장이었던 베리아(L.P. Beria, 1899~1953)에 의해 재판 없이 죽임을 당하였다. 미국에서의 반유대주의는 온건한 형태의 차별은 있었지만 그 세력은 미미했다. 그러나 1962년의 광범위한 조사 결과, 사회적 생활 주거 및 고용에 있어서 유대인들에 대한 엄밀한 차별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교회의 입장 : 과거 그리스도교가 유대인 탄압에 동조하였던 것은 종교적 이유였지만,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류의 일치와 그리스도의 대속이 지닌 보편성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본질적 가르침들은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게 자연적 또는 초자연적 권리를 부정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교회의 참다운 태도는 복음 안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고, 사도 바오로의 유대인들에 대한 태도(로마 11, 2. 14-15. 28-29)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당신 백성을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한다.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인간은 지상의 모든 법적 권한을 넘어서는 존엄성을 가지며,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그 존엄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교의적인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형제들' 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리에 반대되는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racism)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교회의 입장은 교황 레오 13세(1878~1903), , 베네딕도 15세(1914~1922), 비오 11세(1922~1939), 비오 12세(1939~1958), 요한 23세(1958~1963) 등의 교황 문헌을 통해서 잘 표명되었다. 교황의 이러한 가르침은 마리탱(Jacques Maritain, 1882~1973), 주르네(Msgr.Charles Journet) 등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해법을 표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학술지 《프라이부르거 룬트브리프》(Freiburger Rundbrief)와 《카이에 시오니앵》(Cahiers Sioniens) 등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에서 발견된다. "교회는 유대인들과의 공동 유산을 상기하며 정치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종교적이요 복음적인 사랑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온갖 미움과 박해와 데모 같은 것을 언제 누가 감행하였든지 간에 차별 없이 통탄하는 바이다" (4항). (→ 유대인)

※ 참고문헌  J. Parkes, The Conflict of the Church and the Synagogue : A Study in the Origins of Antisemitism, London, 1934 ; Philadelphia, 1961/F. Murawski, Die Juden bei den Kirchenvätern und Scholastikern, Berlin, 1925/ J. Oesterreicher, Racisme, antisémitisme, antichristianisme, docu- ments et critique, New York, 1943/ M. Samuel, The Great Hatred, New York, 1940/ G. Baum, The Jew and the Gospel, Westminster, 1961/ E.H.Flannery, The Anguish of the Jews, New York, 1965/ -,《NCE》 1, pp.633~640. 〔李庭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