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서초구 반포2동 4-1 소재. 1976년 5월 25일 명수대(明水臺, 현 흑석동) 본당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왕. 관할 구역은 서초구 반포본동 · 2동 전역과 반포4동 일부 지역. 〔교 세〕 1976년 1,165명, 1982년 6,567명, 1987년 8,722명, 1992년 10,632명, 1996년 8,823명. 〔역대 신부〕 초대 박병윤(朴炳閏) 토마스(1976. 5~ 1981.9), 2대 김영일(金永一) 발타살(1981. 9~1986. 8), 3대 나상조(羅相朝) 아우구스티노(1986. 8~1991. 9), 4대 박신언(朴信彥) 라파엘(1991. 9~1993. 11), 5대 안경렬(安慶烈) 토마스 데 아퀴노(1993. 11~현재).
〔공소 시대〕 1970년대 초 강남 지역 개발 추세에 따라 이곳 반포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이 지역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목 거점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73년 5월 22일 명수대 본당의 박병윤 신부가 반포 공소를 설립하였지만, 공소 건물을 마련하지 못해 한동안 신자 가정을 순회하며 미사를 봉헌하였다. 당시 공소 사목은 명수대 본당의 보좌였던 박용일(朴勇一, 타대오) 신부와 후임 최준웅(崔俊雄, 바르나바) 신부가 맡았다. 그러던 중 이듬해 5월 23일 박용일 신부가 양재동(良才洞) 본당 6대 주임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반포 공소의 본당 승격을 위한 준비를 책임지게 되자, 신자들은 박용일 신부의 주도하에 반포 상가 내에 공소 건물을 마련하고, 상지회(上智會)를 비롯한 여러 평신도 단체들을 구성하여 본당 승격을 위한 체제를 하나씩 갖추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1975년 8월 공소 건물을 매각하고 그 동안 마련해 둔 기금으로 현 본당 부지 610평을 매입하는 한편, 성당이 완공될 때까지 신자 소유의 반포유치원(40여 평)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공소 건물로 사용하였다.
〔본당 승격과 정착〕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 반포 공소는 1976년 5월 25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박병윤 신부는 이듬해 3월 성당 건립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고, 1978년 9월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아울러 본당에서는 간접 선교의 일환으로 '신반포유치원' 을 인가받아 1980년 3월에 개원한 데 이어 5월 30일에는 총 620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 성당을 완공하였다. 2대 김영일 신부 때인 1982년 2월 25일에는 방배동(方背洞) 본당을 분리시켜 374세대 1,325명의 교적을 이관하였으며, 1983년에는 사목 구역의 일부를 잠원동(蠶院洞)과 서초동(瑞草洞)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또 나눔의 실천에 앞장서 1986년 5월에는 관할 구역 내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해 경로 잔치를 마련하였고, 같은 해 10월 6일에는 강원도 사북 고한(현 사북) 본당에 도서 1,250권을 기증하였다. 그러던 중 1987년 8월에는 수해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지방 본당을 돕기 위해 정낙교(鄭洛敎, 시몬) 보좌 신부가 청년 신자들을 인솔하여 수류(水流) 본당 관할 지역인 전북 김제군 금산면 화율리에서 수해 복구 활동을 돕다가 사고로 사망하는 불행을 겪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꾸준한 교세 증가 추세를 나타냈으나, 서울 인근에 여러 신도시들이 개발되면서 1995년경부터 신도시로의 전출이 급증하여 새 영세자수가 점차 감소하였고, 1996년 10월에는 관할 구역 조정에 의하여 96세대 319명의 교적을 다시 잠원동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이에 따라 전체 신자수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목에 중점을 둔 반포 본당에서는, 주변 학교(신반포중학교, 반포중학교)에 종교 특활반을 유치하여 주 1회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새로 설치한 시청각실을 활용하여 미디어 교육을 통한 심성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 밖에 1997년 하반기부터는 가톨릭 중앙 의료원(C.M.C.)과 연계하여 가정 방문을 통한 의료 사목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 서울대교구 ; 방배동 본당) 〔편찬실〕
반포 본당
盤浦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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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