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요르단 건너편 모압 평야에 진을 쳤을 때, 그들을 저주하도록 모압왕 발락이 초청한 이방인 점술가.
발람의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흔히 히브리어 '발라'(בָּלַע, 삼키다)를 어원으로 삼아 "민족들을 삼키는, 멸망시키는 자"로 풀이한다(타르굼). 그의 고향은 "큰 강가 아마윗 사람의 땅 브돌"(민수 22, 5)인데 이곳은 유프라테스 강의 상류 지류인 사자르 강가에 있는 피트루(Pitru)이다. 피트루에서 모압까지의 거리는 약 640km로 소요 기간이 20여 일 걸리는데, 그가 나귀를 타고 아르논 강가까지 오기에는(민수 22, 22) 멀기 때문에 암몬 지역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발람은 성서에 50번 언급되는데 전승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띤다.
발람 이야기는 민수기 22-24장에 명료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독립된 이야기로 전해지다가 후에 민수기에 삽입된 부분이다. 발람 전승을 세부적으로 재구성할 때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모호한 점이 드러난다. 하느님은 처음에 발람이 모압을 방문하는 여행을 긍정하나(민수 22, 20) 그 후에 그가 탄 나귀 앞에서 길을 막아 그의 여행을 방해하는(민수 22, 22-35) 불일치가 나타난다. 이러한 불일치는 각각 다른 문서들을 집성하였기 때문이다. 엘로히스트(E) 문헌(민수 22, 3b-7a. 11. 22-34. 37. 39-40a ; 23, 7a. 18a : 24, 1. 2b-3a. 10a. 11b. 15a)에서는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모압 왕의 요청에 발람이 동의하지 않도록 하지만 모압의 귀족들과 함께 모압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야휘스트(J) 문헌(민수 22, 2-3a. 7b-10. 12-21. 35-36. 38. 40b-41 ; 23장 ; 24, 10b-11a. 12a-14a. 25)에서는 발람과 그의 두 종이 여행을 떠난 이후에 야훼가 발람의 여행을 반대하였다고 나온다. 발람이 모압에 도착하였을 때 발람은 모압 왕을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야훼의 간섭으로 축복하게 된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 네 차례에 걸쳐 축복과 예언의 신탁을 내린 다음 고향으로 돌아간다. 발람의 신탁(시)은 처음(민수 22, 7b-10)과 두 번째(민수 23, 18b-24)는 그 의미를 해석하는 이야기(산문)와 연결되어 있으나 세 번째(민수 24, 3b-9)와 네 번째(민수 24, 15b-24)는 이야기와 연관이 없는 초기 왕조 시대의 전승을 담고 있다.
이때 그는 무조건 하느님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며, 하느님의 동의 없이는 움직이지 않고 그분의 영이 넣어 주는 말만을 그대로 전한다. 이런 모습은 하느님이 선택한 예언자에게서 볼 수 있으므로, 발람은 징조(vision)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예언하는 선견자(先見者)로 여겨진다. 발람의 예언과 신탁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려는 하느님의 뜻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이방인 선견자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누구라도 어떤 방법이든지 당신 백성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계획의 완성을 방해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신명 23, 4-5 ; 여호 24, 9-10). 그런데 발람을 선견자로 긍정적으로 묘사한 단락(E 문헌)과는 달리, 발람을 조롱하는 어조를 띤 나귀 이야기 (민수 22, 22-35 : J 문헌)에서는 축복이나 저주의 말로 사람들의 운명이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점술사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유명한 이방인 점술가 발람은 신의 뜻을 알기는커녕 가장 어리석은 동물인 나귀만큼 야훼의 사자(使者)를 보지 못하거나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물로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발람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후대로 가면서 부정적인 평가가 두드러졌다. 발람은 돈 때문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으며(신명 23, 5-6 ; 참조 : 여호 24, 9 ; 미가 6, 5 ; 느헤 13, 2), 미디안과 어울려 이스라엘 백성을 브올에 있는 모압의 바알신을 숭배하도록 한 이방인이었다(민수 31, 8. 16 ; 참조 : 25, 1-3 : P 문헌). 이러한 후기 문헌들은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을 이방인의 우상 숭배로부터 순수하게 지키려는 의도인데, 이는 발람을 이스라엘이 반대하여야 하는 이방인 점술가로 여겼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에 활동한 유대인들도 발람에 대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였다. 저명한 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나 요세푸스 등은 발람을 한낱 점쟁이에 지나지 않는 인물로 낮추었고(1모세, 285~286 ; 《유대 고대사》 4, 119~122), 대부분의 랍비들도 그를 이스라엘에 해로움을 끼치는 이방인 점쟁이나 마술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여겼다. 반면에 하느님의 종으로 묘사하며, 심지어 "모세보다 더 지혜롭다"(세더 엘리야후 라바, 26, 142)고 적은 미드라쉬도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발람을 매우 부정적으로 기술하였는데, 그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에 따른 부당한 보수를 좋아하는 탐욕에 빠진 이의 본보기이며(2베드 2, 15-16 ; 유다 1, 11),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하도록 그릇된 가르침을 펴는 이로 소개된다(묵시 2, 14). 한편 초기의 많은 교부들은 발람의 네 번째 축복의 말에 나오는 "야곱에게서 솟아나는 별"(민수 24, 17)을, 동방의 점성가를 아기 예수에게 이끈 별(마태 2, 1-12), 또는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 것(이사 11, 1)으로 여겨 이 대목을 메시아에 대한 첫 예언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한편 1967년에는 야뽁(Jabbok) 강과 요르단 강이 만나는 '데이르 알라' (Deir 'Allā)에 있는 고대 신전을 발굴하여 기원전 8세기경의 비문이 적힌 회반죽판을 발견하였다. 일부분밖에 발견되지 않아 전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발견된 비문의 내용은 선견자 발람이 땅을 황폐화시키겠다는 신들의 계획을 계시받고 희생 제물을 드렸더니, 신들이 다시 땅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이 비문을 통해 발람은 기원전 8~9세기에 널리 알려진 선견자로 아마도 풍요의 여신(女神) 같은 이방신 숭배와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비문은 성서에 나오는 발람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보여 준다. (→ 민수기)
※ 참고문헌 G.W. Coats, Balaam is Sinner or Saint?, 《BR》 18, 1973, pp. 1~9/ J.A. Hackett, The Balaam Text from Deir Alla, Chico, Calif. : Scholars Press, 1984/ 一, 《ABD》 1, pp. 569~572/ J. Milgrom, Numbers-The JPS Torah Commentary, Philadelphia :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0/ A. Rofe, The Book of Balaam, Jerusalem : Sinai, 1979/ W.F. Albright, 《EJ》4, pp. 120~123. 〔李鎔結〕
발람 〔히〕בִּלעָם 〔그〕Βαλαάμ 〔라 · 영〕Balaam
글자 크기
5권

<발람> (렘브란트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