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동 본당

發山洞本堂

글자 크기
5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서구 화곡3동 1009 소재. 1978년 9월 3일 화곡동(禾谷洞, 현 화곡본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천주의 모친. 관할 구역은 화곡3 · 5동 전역과 내발산동, 외발산동, 신월5동 일부 지역. 〔교 세〕 1978년 786명, 1983년 4,598명, 1988년 7,992명, 1992년 8,726명, 1996년 8,225명. 〔역대 신부〕 초대 김정홍(金正弘) 루도비코(1978. 8~1983. 3), 2대 이봉우(李奉雨) 토마스 데 아퀴노(1983. 3~1988. 9), 3대 김운회(金雲會) 루가(1988. 9~1989. 2), 4대 김형식(金亨植) 베드로(1989. 2~1995. 3), 5대 김홍진(金弘鎮) 사도 요한(1995. 3~현재).
서울 외곽에 위치한 발산동은 1970년대 초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조성된 후 아파트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이주 인구가 계속 늘어났다. 그리하여 본당을 분할하기로 계획한 화곡동 본당에서는 2대 주임 김정진(金正鎮, 바오로) 신부 때인 1978년에 교구 보조로 현 성당 부지 399평을 매입하고 그 해 8월 20일 성당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어 9월 3일부로 본당이 신설되자 지하 1층 공사만 마친 상태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이듬해 7월 12일 연건평 257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초대 주임 김정홍 신부는 부임 초기부터 성당 건립에 주력하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가정 형편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해 용성야간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82년 12월에는 수녀원 성체 조배실 · 교리실이 들어설 성당 별관 공사를 끝마쳤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는 성당 바로 옆의 주택을 매입한 후 5월에 이를 보수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본당의 여러 평신도 단체들이 조직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는데, 기존의 사목 협의회와 구역 반 활동 이외에 빈천시오회, 연령회, 성령 기도회 등이 설립된 이후, 1982년에 군종 후원회와 M.E., 1983년에 성모회, 1988년에 성찬 봉사회, 1989년에는 중고등부 성가대, 그리고 1990년 2월에는 미사 때 반주 봉사를 담당하는 미사 반주단을 별도로 조직하였다. 또 같은 해에 주부 교사회를 만들어 학부모가 직접 자녀들의 교리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93년을 교육 피정의 해' 로 정한 4대 주임 김형식 신부는 2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피정을 실시하여 총 4,838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그 해 12월 5일에는 본당으로서는 최초로 88체육관에서 '우리와 함께하소서' 라는 주제로 성체 대회를 성대히 개최하여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성직자 · 수도자 · 신자 등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부로 나뉘어 진행된 이 성체 대회를 통하여 1년 동안 교육 피정으로 다져진 내실화가 본당 발전과 신자들의 영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성체 대회 화보집을 간행한 데 이어 1994년 12월에는 성체 대회 1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1997년 4월 27일 5대 주임 김홍진 신부는, 1866년 충남 갈매못(保寧郡 鰲川面 永保里)에서 순교한 성 오메트르(P. Aumaitre, 吳) 신부의 출신지인 프랑스 앙굴렘(Angoulème) 교구의 뤼펙(Ruffec) 본당 관할 에젝(Aizecq) 공소를 순례단 31명과 함께 방문하여 성인 순교 131주년 기념 미사에 참석한 뒤 자매 결연을 맺었는데, 이것은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으로는 최초로 외국 본당과 맺은 자매 결연이다. 아울러 본당에서는 2000년대를 지향하는 소공동체 운동을 활성화하는데 노력하는 한편, 앞으로 있게 될 본당 분할에 대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화곡본동 본당)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