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장짐리 276 소재. 1957년 6월 14일 왕림(旺林)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관할 구역은 화성군 팔탄면, 양감면 전역과 봉담면 하가등리, 평택군 청북면 율북리 일부 지역. 〔교 세〕 1957년 1,913명, 1968년 3,294명, 1974년 2,809명, 1981년 2,782명, 1987년 2,312명, 1995년 2,803명. 〔역대 신부〕 초대 임응승(林應承) 요한(1957.6~1962. 7) 2대 류봉구(柳鳳九) 아우구스티노(1962. 7~1964. 7), 3대 이계항(李啓恒) 베드로(1964. 7~1968. 10), 4대 정덕진(丁德鎮) 루가(1968. 10~1969. 12), 5대 임충승(林忠承) 시몬(1969. 12~1978. 4), 6대 손태섭(孫泰燮) 마르코(1978. 4~7), 7대 배영섭(裴英燮) 베드로(1978. 7~1979. 1), 8대 정주성(鄭主成) 요셉(1979. 1~1983. 1), 9대 송병수(宋炳秀) 시몬(1983. 1~1984. 9), 10대 길홍균(吉鴻均) 이냐시오(1984. 9~1987. 9), 11대 홍승식(洪勝息) 아우구스티노(1987. 9~1990. 1), 12대 이광희(李光熙) 가브리엘(1990. 1~1993. 2), 13대 한승주(韓昇周) 스테파노(1993.2~현재).
〔전 사〕 이미 박해 시대 때부터 지금의 발안 본당 관할 지역에는 유서 깊은 교우촌들이 있었다. 병인박해(丙寅迫害)로 1866년 3월 30일에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장주기(張周基, 요셉) 성인의 출생지인 양감면 요당리(楊甘面 蓼塘里)에 느지지 공소가 박해 직후 설립되었으며, 용소리(龍沼里)의 양간 공소도 이 무렵에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1888년에 왕림(旺林, 갓등이) 본당이 설립된 후 이 본당 관할로 팔탄면 가재리(八灘面 加才里)에 북시기 공소가, 하저리(下楮里)에 안산동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 공소들을 중심으로 신자들은 꾸준히 신앙 생활을 이어나가 1922년에는 양간 공소의 신자수가 108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발안 지역에 본격적으로 본당 설립이 논의된 것은 1955년 5월 임응승 신부가 왕림 본당의 8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후부터였다. 임응승 신부는 당시 면 소재지이면서 교통의 중심지로서 지역 발전이 예견되는 발안에 본당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임 3개월 만에 본당 설립 기성회를 조직하였으며, 신자가 희사한 현 본당 소재 1,200여 평의 부지에 성당 신축 공사를 착수하여 1956년 12월 3일 이를 완공하고 봉헌식을 가졌다.
〔본당 설립과 성장〕 임응승 신부는 성당을 완공하고 난 후에도 인근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고 주변의 조경 공사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957년 6월 14일자로 발안 본당이 설립되면서 임응승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설립과 동시에 15개의 공소를 관할하였으나, 이후에도 계속해서 공소가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유진순(가밀로)을 전교 회장으로 임명한 임응승 신부는 그에게 예비 신자들의 교리 지도와 본당 사무를 담당하도록 하여 사목의 효율화를 도모하였다. 당시 청 · 장년 남성 신자들의 모임으로 평신도 단체의 구심점이었던 교우회는 농촌 본당의 특성을 살려 성당 부지에 뽕나무 묘목을 재배하고 양잠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잠우회(蠶友會)가 결성되면서 교세가 꾸준히 신장되었으며, 5대 주임 임충승 신부는 본당의 농장 사업을 확대하여 1970년 12월 '요한 비안네 농장' 으로 명명하고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1973년 1월 5일에는 조암(朝岩) 본당이 분할되어 202세대 1,656명의 교적을 이관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농민 교육원을 신축하고 양잠 연수 교육과 영농 기술 교육을 실시하여 1976년 말까지 1,500여 명의 농촌 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하였으나, 교구 방침에 따라 1980년에 폐원하였다. 1979년 3월 15일 새마을유아원을 개원하고 이듬해 8월에는 성모상을 건립하였으며, 1983년에는 사제관을 건립한 데 이어 1985년까지 성당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한편 1984년 9월에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길홍균 신부는 장주기 성인의 출생지인 요당리 느지지 일대의 성역화를 추진하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당 건물의 노후화로 많은 불편이 따르자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하고, 1991년부터 성당 신축 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4년 만인 1995년 11월 6일에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 수원교구 ; 왕림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임응승, 《주님의 뜻대로》, 천주교 노량진 교회 출판위원회, 1983. 〔金成喜〕
발안 본당
發安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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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