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신(神)이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사람, 즉 현자(賢者)나 예언자들에게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어떤 것을 전달해 주거나 친히 드러내 보여 주는 것. 구약성서에서 폭풍과 지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알려 주거나 천사를 시켜 자신의 뜻을 전하는 야훼, 신약성서에서 부활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등은 모두 일종의 발현 현상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이들의 나타남은 자연적인 방식을 넘어서 이루어졌기에 오랫동안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되어 왔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타당하지만, 초자연적이 것이 초자연적인 것으로 알려지는 방식은 자연 안에서이다. 즉 인간의 구체적인 체험 안에서 알려진다. 따라서 발현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인간의 체험인 한, 그것은 그 체험자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현의 초자연성만 강조하기보다는, 발현이 일어난 구체적인 상황, 인간적 조건도 함께 보아야 한다.
I . 종교학적인 측면
〔종교사적 의의〕 종교사적으로 초월적인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발현 현상은 특정 종교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신약성서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발현하여 예수의 잉태를 알려 주지만, 《코란》(Koran)에서는 무함마드에게 발현하여 신(알라)의 계시를 전해 준다. 인도에서는 시바(Siva)나 비슈누(Vishnu)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어려운 상황에 빠진 인간을 구원해준다는 이야기가 많다. 조로아스터교는 물론 그리스 · 로마 신화에서도 신이 자신을 드러내고 무엇인가를 인간에게 명령한다는 이야기는 무척 많다. 이들은 모두 인간 세계 밖에 있던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고자 인간 세계 안에서 알려지는 것을 나타내 주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발현 사례들을 종교학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발현은 그 종교 내에서만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초월적 존재를 체험하며, 그 체험은 다양한 표현으로 다른 이들에게 알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은 특정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조건들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어떤 체험이 신적 발현의 체험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표현들이 통용되는 특정 사회와 전통 안에서이다. 아무리 초월적 존재가 자신을 드러낸다고 해도 그것은 구체적 상황과 조건 아래에서이다. 따라서 발현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나 집단이 그 발현을 발현으로 알아들을 때에 비로소 발현이 된다. 즉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그러한 신의 전달을 신의 전달로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석은 고유한 것이어서 토양이 달라지면 다른 해석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발현 체험 역시 어떤 특수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어울려서 발생하기에 모든 발현 현상 하나하나가 다 유일한 것이고 고유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다양한 발현 체험이 주는 보편적인 의미란 있을 수 없다.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자연 안에서 이른바 초자연적인 것을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 뿐이다. 이러한 발현 체험이 그리스도교 안에 있을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구체적인 인간사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의 발현' (그리스도의 발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발현' (그리스도의 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해석적 전통 안에서만 어울리는 것이며, 그리스도교 고유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종교들 안에 있는 발현 현상 역시 그 종교적 맥락에서만 어울리는 고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현은 인간을 종교적 인간으로 규정 짓는 원천적 체험이다 : 다양한 종교적 현상들을 그 자체로 중요시하는 종교학자들은, 인간은 다양하게 신적 발현을 체험한다는 사실을 중시하여 인간을 '종교적 인간' (Homo religiosus) 이라고 규정하였다. 발현 현상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종교적 인간' 으로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초월적 실재와 교감하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성 안에는 원초적으로 종교적 경외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학자 엘리아데(M. Eliade)는 이런 현상을 '성현' (聖顯, hierophany)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성현이란 그리스어 히에로스(ἱερὸς, 거룩함)와 파이노(φαίνω, 보이다, 나타내다)가 합성된 용어로, 성스러운 것이 그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는 사건이나, 성스럽게 드러나게 해주는 사물을 일컫는다. 가령 자연스러운 세상의 한 부분과는 전적으로 다른 수준의 그 무엇, 즉 성스러운 것이 자신을 드러낼 때 사용하는 돌이나 나무가 성현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성스러운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 자체가 곧 성현이다. 물론 성스러움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인간이 그 성스러움을 성스러움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만일 초자연적인 어떤 것의 현현이 거룩하다는 일정한 속성이 부여되지 않은 채 그저 하나의 세력이나 힘으로만 파악될 때 그것을 흔히 역현(力顯, kratophany)이라고 부른다. 성현도 어떤 비일상적인 힘의 체험이라는 점에서는 역현의 하나인 셈이다. 또한 이 힘이 신(divinity)으로 체험될 때 그것을 흔히 신현(神顯, theophany)이라고 부른다. 문화나 풍토에 따라 신현의 형태와 의미는 달라지고, 같은 문화 안에서라도 신들에 따라 역시 형태나 의미가 달라진다. 어떠한 발현이 성현이나 신현으로 체험될 때 이러한 체험은 가장 원초적 경험이면서 현실 안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적인 체험이다. 체험자는 이 경험을 중심 축으로 하여 세계를 재구성한다. 이런 식으로 성현이나 역현, 신현 모두 발현의 구체적 이름들이며, 발현 체험은 인간을 종교적 인간으로 규정 지어 주고, 인간의 실존을 결정짓는 원천적 체험인 것이다.
〔발현과 종교적 의례〕 종교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거룩하고 초월적인 것이 인간의 삶 안에 자신을 드러내고 인간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이 성스러움을 성스러운 것으로 체험함으로써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역사는 초자연적인 것이 자연 안에 나타나고 인간이 그것을 느끼고 해석한 역사인 것이다. 이 성현에는 나무나 돌 같은 것 안에서 성스러움을 보는 초보적인 현현에서부터 죽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을 수 있지만, 이들 안에는 일관성이 있다. 즉 성스러운 실재가 일상적인 영역 안에서 현현한다는 것이다. 초월적인 것이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까닭에 그것은 분명히 일상과는 다른 그 무엇이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적 세계 안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일상의 일부이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것 안에서 드러난다고 하여 그것이 거룩한 것 '자체'는 아니다. 인간은 거룩한 것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겪은 체험을 거룩한 분이 스스로를 드러낸 체험이라고 해석할 뿐이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 안에 나타나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다. 성서에서는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출애 3, 6)고 전한다. 또한 모세는 얼굴을 가린 채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으며, 하느님은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출애 3, 14-15)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모세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어할 때도 하느님은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여 주지 않았다(출애 33, 12-23). 다만, 자신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체험하되, 간접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종교의 역사는 이와 같은 신적 발현과 그 표현의 역사이다. 불상(佛像) 앞에서 큰절을 하고, 십자가 앞에서 머 리를 조아리며, 몰아 상태에서 신 내림의 춤을 추고, 이른바 성지(聖地)를 순례하면서 원천의 사건에 다가가는 것 모두 '신' 이라는 대표적 상징이 열어 주는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다시 말해 근원적인 체험을 재체험하려는 인간의 행동이다. 신의 이름을 부르는 인간의 행위는 종교 의례 안에서 집약된다. 종교 의례는 신적 발현을 현재화하기 위한 가장 집약적인 인간의 행동이다. 종교 의례를 통해 종교인은 원천적인 사건으로 끝없이 돌아간다. 엘리아데가 '원천과 영원으로의 회귀' 에서 종교의 핵심을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야곱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꿈을 꾼 뒤 "여기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구나" (창세 28, 17)라고 말하였을 때 '하늘 문' 이라는 상징이 보여 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장소에서 신의 현현이 일어나는 순간, 그 장소는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이 된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이 계시는 그 공간 안에 참여하며 그 공간은 하나의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 옮겨 가는 역설의 지점이 된다. 이러한 끝없는 존재 양식의 탈바꿈 행사가 바로 '종교적 의례' 이다. 결국, 특별한 경우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발현은 이처럼 하느님이 자신을 전달하는 비일상적인 방식이지만, 직접적인 현현이 아니라 간접적인 현현이며, 그러한 현현을 현현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해석적 체험이다.
II . 성서에서의 발현
〔구약성서〕 어원상의 분류 : 구약성서에서 발현의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는 '마르에' (מַרְאֶה)의 '헤제브' (חֵזֶו) 등이다. 마르에는 '보다' 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인 '라아' (רָאָה)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바라봄 · 시야 · 외모 · 형태' 등을 뜻한다. 주로 에제키엘서와 다니엘서 등에서 초자연적인 환상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에제 1, 5. 26. 27 ; 40, 3 ; 다니 10, 18),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다(창세 46, 2 ; 민수 12, 6 ; 1사무 3, 15). 헤제브는 '(환상을) 보다' 라는 의미의 동사 '하자' (חָזָה)에서 파생된 명사로 '환상, 외모' 등의 뜻이다(다니 7, 19-20). 특별히 하느님이 주로 예언자들에게 주시는, 일상의 방법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환상을 뜻하는 '하존'(חָזוֹן)도 발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구약성서의 표현이다. 이 '하존' 역시 다니엘서에서 약 30회 정도 사용되었는데, 미래에 관한 지식들을 놀라운 방식으로 들추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에제키엘서에도 이 '하존' 이 자주 사용되었는데, 주로 "야훼의 영광스런 모습" (에제 1, 28) 머지않아 종말을 맞이하게 될 이스라엘의 상황(에제 8장), 미래의 이상적인 모습과 체계(에제 40-48장) 등을 보여 줄 때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당면 역사 안에서 곧 일어날 사건의 의미를 예언자에게 전하는 야훼의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하존' 이 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야훼의 말씀'이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즉 야훼가 자신을 드러내고 역사를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며, 궁극적으로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본래의 목적이 이 하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특징 : 구약성서에서 발현의 핵심은 그 메시지에 있다. 여러 발현 보도가 주로 시각적인 묘사로 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발현의 '청각적' 측면이 더 중요하다. 시각적 측면은 주로 하느님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자 할 때 주의를 모으기 위한 것이므로, 신적인 형상보다는 언어적 메시지가 중요하다. 하느님 발현의 '육체적' 측면은 계시를 계시로 알아듣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많은 경우 하느님은 인간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을 먼저 드러내 보이신다. 구약성서의 대표적인 발현 사례들(창세 18, 2 : 민수 12, 5 ; 여호 5, 13 ; 1역대 21, 15-16 ; 즈가 3, 5 ; 다니 15, 5 등)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발현이 하느님의 주도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열망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이 먼저 인간을 찾는다. 이것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에게 발현의 주도권이 있다는 뜻이다.
외형적 구분 : 발현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①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하는 경우 :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기 24장 9-11절이다. 여기서는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70명이 하느님을 본 사건을 전해 준다. 그들은 하느님이 서 계신 곳을 보았다고 한다. 즉 하느님의 발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이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아서 그들은 하느님을 직접 뵙고 먹고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출애 33, 20)고 하는 하느님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지니면서 하느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묘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② 하느님이 자연물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 :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불붙은 떨기의 모습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하느님 현존의 전형적인 표상이다. 하느님이 십계명을 주기 위해 시나이 산에 내려오실 때도 천둥, 번개, 짙은 구름과 함께 불속에서 내려온다(출애 19, 18). 불의 출현은 엘리야 이야기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나고(1열왕 18-19장 ; 2열왕 1장 ; 2, 11), 신약에서도 하느님의 출현을 알리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십계명을 받는 출애굽기의 장면은 구약성서 중에서 최상의 발현을 보여 준다.
③ 하느님이 인간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 : 이 경우에는 천사의 모습으로 발현한 경우가 가장 많다. 구약성서에 '주님의 천사' 라는 용어가 50회 이상 등장한다. 하느님이 자신의 뜻을 전하고자 할 때 천사를 사자(使者)로 보내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이때 천사의 역할은 주로 하느님의 대행자로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간혹 이 천사가 하느님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천사가 하느님과 동일시되는 경우도 있다. 즉 외형적으로는 천사의 모습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키는 경우들이다(출애 23, 20-23 ; 32, 34 ; 33, 14 이하 ; 이사 63, 9 등). 그러나 이런 경우에 천사를 하느님과 단순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신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피조물과 창조주가 절대적으로 다르다면 창조주는 피조물에게 알려질 수 없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발현을 통해 체험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안에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뜻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자신의 모상에 따라 만들었다고 하는 창세기의 언급은 하느님이 인간에 의해, 인간 안에서 알려질 수 있는 분임을 알려 준다. 또한, 하느님이 자신을 인간 안에서 드러내신다는 성서의 내용들은 이런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내용적 구분 : 구약성서에 드러나는 발현을 내용적으로 구분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개인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하느님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발현이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로 하느님이 모세에게(출애 3장), 사무엘에게(1사무 3, 10. 21), 솔로몬에게(이사 6장) 나타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는 주로 그 개인을 선택해 소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 둘째, 적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하느님이 자연의 힘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발현이다. 이 경우에는 하느님이 일종의 전사(戰士)의 모습으로 내려와 적들에게 공포를 일으킨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런 묘사는 대체로 일정한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즉 첫 부분에서는 야훼의 출현을 언급하고, 둘째 부분에서는 산이 흔들리고 하늘과 땅이 혼란에 빠지는 등 자연의 동요를 언급한다(판관 5, 4-5 ; 신명 33, 2 ; 이사 30, 27-28 ; 예레 25, 30-31 ; 시편 50, 2-3 ; 114, 3-8 ; 욥기 26, 5 등).
이러한 신의 현현 모습은 이스라엘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수메르와 아카드의 영웅 찬송시들이나 히타이트와 우가리트의 신화들에서도 폭풍의 신이 눈부신 광채에 둘러싸여 있는 신의 전사(戰士)로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전사는 폭풍을 타고 구름 마차로 여행하며 번개 화살을 쏜다. 그러면 땅이 진동하고 산들이 흔들리며 바다가 넘실댄다. 이런 묘사들은 양식상 왕정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신의 현현을 묘사한 시에 많이 나타나며, 그 내용은 주로 야훼가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시적이고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발현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신약성서〕 신약과 구약의 차이 : 신약에서도 구약의 발현 모습을 전해 주며(사도 7, 30 ; 히브 12, 18. 19), 불(사도 2, 3 ; 1고린 3, 13 ; 2데살 1, 7)이나 천사들(2데살 1, 7 ; 사도 5, 19 ; 8, 26 ; 10, 3 ; 12, 7 ; 27, 23 ; 마태 4, 11=마르 1, 13 ; 루가 22, 43)의 발현 등도 언급된다. 이것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발현 이야기가 구약성서의 신학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하느님의 계시가 역사 안에서 지속된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하느님 발현은 다르다. 신약성서에서 하느님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전혀 없다. 왜냐하면 신약성서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을 보여 준다는 대전제 위에서 성립되었으며(요한 14, 9), 따라서 구약의 하느님을 그리스도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1, 14 ; 골로 1, 15 ; 히브 1, 1-3). 특히 신약성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이 강림하실 때의 모습을 묘사한 것과 거의 같은 형태이다(마태 16, 27 ; 24, 30 ; 26, 64 ; 마르 8, 38 ; 13, 26 ; 루가 9, 26). 구체적으로 보면, 그리스도는 종말에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면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루가 17, 24)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과 함
께 다시 나타나시는데(디도 2, 13), 그때는 "구원을 위하여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히브 9, 28)도 "그분과 더불어 영광 속에 나타날 것이다" (골로 3, 4). 이러한 표상은 구약성서에서의 야훼의 발현을 연상시킨다. 이런 점에서 신약성서의 발현 이야기가 지닌 구조는 구약성서의 발현 구조와 가깝다. 신약성서적 배경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이 친히 폭풍우와 지진을 동반하는 '초자연적인' 현상 속에서 현현하실 필요가 없다.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들 가운데 거처하시고(요한 1, 1. 14),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 하느님이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으므로"(요한 1, 18), 그리스도를 충실히 믿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발현 :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발현이 하느님의 주도로 나타났던 것처럼,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의 발현 역시 그리스도의 주도로 나타난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발현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루가 24, 33-34) 그리스도는 제자들 곁에 나타났는데, 이것은 발현이라는 현상이 그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현상이나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발현은 시각 · 청각적인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제자들은 자기들 눈앞에 나타난 그분이 자기들과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던 분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난 예수는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준다. 이것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 예수의 살과 피를 경험하던 초기 그리스도교 만찬례를 반영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부활 후의 예수는 살과 피로 이루어진 분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 후 발현한 예수는 제자 토마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직접 확인해 보라고 한다(요한 20, 25. 27). 이것은 제자들이 유령이나 헛것을 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예수는 문이 잠겨 있는데도 홀연히 들어온다(요한 20, 26). 이것은 그리스도가 살과 피를 가졌지만 전권을 쥔 하느님에 의해 다시 일으켜지신 분인 만큼 영적인 분이라는 뜻이다.
발현과 그리스도론 및 교회론 : 성서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발현 이야기는 시간적 배열에 따른 사실적(事實的) 묘사가 아니다. 오히려 전승되어 오던 단편적인 그리스도의 발현 이야기가 점차 형성되어 가던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속에 편입되면서 재구성된 경우가 많다. 한 예로 마태오 복음서는 갈릴래아에서 그리스도가 발현하였다는 기사로 대미를 장식하는데(28, 16-20), 이것은 예수가 부활한 다음 열한 제자에게 나타났다는 발현 전승(1고린 15, 5 ; 요한 21장 참조)을 참작하여 마태오가 재배열한 것이다. 마태오가 전하는 이 발현 사화의 특징은 보도 기사 (28, 16-17)보다 예수의 말씀(28, 18-20)이 더 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한 것을 모두 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시오" 하는 예수의 말씀은 이미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이 형성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사화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난 사화(루가 24, 13-35)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예수가 부활 당일에 나타났다고 적고 있지만(24, 13), 이 사화의 형태를 눈여겨보면, 성령 강림 이후 오랜 뒤에야 가능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만찬례의 모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루가가 본래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 오던 이야기를 채집하고 일부 편집하여 이 자리에 배치한 것으로 여겨진다.
발현 체험과 부활 신앙 : 그리스도의 발현과 부활 신앙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게된 결정적인 계기 중의 하나가 그분의 발현 체험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 발현 체험이야말로 예수 부활 신앙을 싹트게 한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초기 교회의 신조일수록 예수 부활 사실만을 언급하거나(2디모 1, 10), 발현 목격자들의 명단을 제시할 뿐이다(1고린 15, 3-7). 마르코 복음사가가 원래 집필한 16장 8절까지만 해도 예수가 부활한 다음 갈릴래아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사실만 시사할 뿐, 더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14, 28 ; 16, 7).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록이나 마르코 복음서보다 후기 작품인 마태오 · 루가 · 요한 복음서에서는 상세한 발현 사화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요한 20, 14-18 ; 마태 28, 9-10 ; 루가 24, 13-35. 36-49 등). 이 중에서 제자들에게 발현한 이야기에는 자신의 부활을 알려주기만 하는 발현 사화(루가 24, 13-35 ; 요한 20, 24-29)가 있고, 제자들을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며 소명을 주는 발현 사화(루가 24, 36-49 ; 요한 20, 19-23 ; 21, 1-23)가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발현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예수는 부활한 다음 베드로(게파)에게 나타났고(1고린 15, 5a : 호수가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난 요한 복음 21장 1-23절의 이야기는 이를 전제하는 발현 사화이다), 이어 열두제자들에게도 발현하였다(1고린 15, 5b : 갈릴래아에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난 마태 복음 28장 16-20절의 이야기는 이를 전제하는 발현 사화). 이것은 갈릴래아에서 일어난 일이며, 베드로는 예수의 발현을 목격한 뒤,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 된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가 존경을 받고 또 그 대변자 및 지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가 부활한 주님을 맨 처음 보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처럼 갈릴래아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의 발현을 목격하는 동안 예루살렘에서는 부인(들)이 예수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마르 16, 1-8), 또한 예수 발현도 체험하였다(요한 20, 14-18 ; 마태 28, 9-10). 그리고 갈릴래아에 있던 제자들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은 오순절에 극적인 체험을 하였으며, 이어 제자들은 시민들을 상대로 힘차게 예수 부활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식으로 예수의 발현 체험은 예수 부활 신앙을 낳은 근원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발현 사화는 또한 예수 부활 신앙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었다. 초기 교회일수록 예수의 발현 이야기보다는 간단한 부활 보도가 먼저 등장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해 준다. 그렇다면 형성되어 가던 예수 부활 신앙은 전승되어 오던 예수 발현 사화를 재조명하게 해주었고, 예수 발현 사화는 예수 부활 신앙을 확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바오로의 예수 발현 체험 :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났다(사도 9, 3-9). 이 체험은 마치 성령 강림 사건 때 바람소리를 듣고 혀 모양의 불을 보았던 것처럼, 바오로도 다마스커스 근처에서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빛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 자신을 꾸짖는 소리, 자신에게 명령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로 인해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름난 박해자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땅 끝까지 증언하는 선교사로 변신하였다. 이때 빛의 출현은 하느님의 현존과 연결되고(칠십인역 시편 4, 6 ; 35, 9 ; 55, 13 ; 77, 14 ; 88, 15 ; 96, 11 ; 103, 2 ; 지혜 7, 26 ; 이사 2, 5 ; 60, 19 ; 1요한 1, 5-7 ; 1베드 2, 9 ; 야고 1, 17), 빛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출현 모습을 연상 시킨다(출애 19, 16 ; 2사무 22, 15 ; 시편 17, 14 ; 76, 18 ; 96, 4 ; 143, 6 ; 에제 1, 4. 7. 13 ; 다니 10, 6 ; 루가 9, 29 ; 10, 18 ; 17, 24 ; 24, 4). 또 빛에서 나오는 소리는 가시 덤불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모세(출애 3, 4),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모세(출애 19, 16-20)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오로는 그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다가 그리스도의 발현 속에서 대화를 통해 비로소 그가 부활한 그리스도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였다는 사실보다는 바오로가 그리스도에게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바오로가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그 힘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소명을 받되 다른 누구의 중재를 거친 것이 아니라 (갈라 16, 9 ; 18, 9 ; 23, 11 ; 27, 23) ,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파견을 받았다(사도 26, 16-18). 그런 식으로 바오로도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른 열두 제자의 경우와는 다르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생활하였고 직접 가르침을 받았지만, 바오로는 생전에 예수를 뵙지 못하였다. 다른 사도들은 부활 이전의 예수와의 연계 속에서 그리스도와 만났지만, 바오로는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와 만난 것이다. 이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으로 세운 교회 안에서 일하시던 그리스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오로의 그리스도론은 역사의 예수를 전혀 모른 채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의 발현 체험도 빛 · 목소리 · 영광 등 묵시 문학체로 기술된 것이다.
발현과 신비주의 : 발현은 결코 인간과 하느님이 신비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발현이 신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개별자와 일자(一者) 혹은 순간과 영원 등의 대립적인 것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을 다루는 신비주의(mysticism)와는 차이가 있다. 성서에서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 인간이 합일(合一)을 이룬다는 사실을보여 주는 곳은 없다. 인간은 먼저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뿐이다. 따라서 발현 체험은 인간의 내적 의식 안에서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다만 주어지는 것이고,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차원에서 해석되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발현의 주도권은 하느님에게 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체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추구 대상이 아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SanJuan de la Chuz, 1542~1591)은 신비적인 현상을 추구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그것에 오도되지도 말라고 경고하였다. 아빌라의 성 데레사(Santa Teresa de Avila, 1515~1582)도 신적 현시를 경험하곤 하였지만, 그중 어떤 것은 오히려 하느님과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악마가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발현은 그것이 아무리 비일상적이고 놀라운 것이라 하더라도 전통적인 신앙의 언어로 충실하게 해석되고 증언됨으로써 다른이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Ⅲ . 그리스도의 발현에 대한 신학적 반성
그리스도의 부활 발현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부활의 종말론적 성격을 존중해야 한다. 예수의 부활은 지상 생명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더 이상 죽음을 모르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로마 6, 9). 라자로의 소생(요한 11, 38-44)과 비교할 때 예수의 부활이 지닌 유일회성은 충분히 드러난다. 예수의 부활은 죽었다 살아난 몸의 개념에 약간의 수정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선취(先取)이다. 그러므로 부활 발현의 체험은 유한한 생명체의 제한된 표현 방식으로는 제대로 형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이것은 역사적인 시간 안에서 일어나고 제자들의 실제적 체험과 관계된 것이다. 부활 발현은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그것이 신화적인 표현이라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부활 발현은 탈신화화(脫神話化)의 대상도 아니다. 제자들의 현실 안에서 발생한 체험이었고, 종교적 전승을 통해서 끝없이 후세에도 공유될 수 있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또 기억 안에만 머물지 않고, 종말 부활 신앙을 매개로 하여 시대에 맞는 언어를 통해서 끝없이 재생되는 살아 있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부활 발현을 둘러싼 해석에는 상반되는 두 입장이 형성되었다. 그 하나는 부활 발현은 단순히 공상에서 생겨난 자연적 현상 내지는 제자들의 잠재 의식의 산물이라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이에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서, 부활 발현은 하느님이 친히 개입한 초자연적이고 초역사적 사건이라는 입장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상보(相補)적인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되,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고서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대화' 하시며 인간과 함께 일하신다. 하느님은 인간과 그 세계의 고유한 구조들과 법칙들을 존중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함께 일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발현은 전적으로 인간의 행위인 동시에 하느님의 행위이다. 발현은 인간의 체험이다. 하느님의 발현이든, 그리스도의 발현이든 발현 체험은 물론 하느님이 먼저 자신을 내어 주시는 계시적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인간의 심리적 구조를 무시하고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행동은 인간의 행동을 묵살하거나 억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신다.
어떠한 체험이든 개인의 종교적 교육, 나이, 심미적 상태에 조건 지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 발현 체험도 예외가 아니다. 비종교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부활 발현이란 일종의 환상이며 제자들은 이 환상에서 자신들의 창작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무의식 중에 부활하신 분의 모습을 구성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느님은 부활 발현을 통해 예수를 당신의 아들로 계시하신 것이다(갈라 1, 15). 만일 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개인의 감성적인 질(emotional quality)의 표현에만 그칠 뿐 그러한 체험으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며, 무익한 것이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신학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그 체험자 자체는 물론 타인을 위한 새로운 변화가 발생한다. 이러한 변화는 오랜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끝없이 새롭게 해준다.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투신이라는 그 자신의 변화로 나타난다. 이것이 발현 체험의 참됨을 판단해 주는 유일한 기준이다. 발현의 참됨은 개인의 실존과 공동체에 얼마만큼의 변화를 일으키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한 변화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자기 전달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느냐에 있다. 다시 말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집단안에 움츠러들지 않고 세상을 향해 열린 자세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게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발현은 그 결과를 보고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이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이웃을 위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그러므로 심리적 환상과 초자연적 계시가 서로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
※ 참고문헌 X. Léon-Dufour, <그리스도의 발현>,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1984, pp. 74~77/ Felicitas D. Goodman, Vision, 《ER》 15, pp. 282~288/ M. Eliade · L.E. Sullivan, Hierophany, 《ER》 6, pp.313~317/ Karl Vladimir Truhlar, Visions, 《SM》 6/ T. Hiebert, Theophany in the OT, 《ABD》 6, pp. 505~511/ J. Jeremias, Theophany in the OT, 《IDB》 supplementary/ J.E. Alsup, Theophany in the NT, 《IDB》 supple-mentary/ G. Lohfink, Der Ablauf der Osterereignisse und die Anfange der Urgemeinde, Theologische Quartalschrift, 1980, Nr. 3/ 박상래, <부활절 사건과 원시 교회의 태동기 ―그 역사적 고찰 1), 《사목》 79호(1982. 1), pp. 50~59/ E. Schillebeeckx, Christ : The Experience Jesus as Lord, New York, The Seabury Press, 1979/ 발터 카스퍼, 박상래 역,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1988/ 멀치아 엘리아데, 이은봉 역, 《종교 형태론》, 형설출판사, 1979/ ―, 이동하 역, 《聖과 俗 : 종교의 본질》, 학민사, 1983. 〔李贊洙〕
발현 發顯 〔라〕apparatio 〔영〕apparition
I . 종교학적인 측면 · II . 성서에서의 발현 · III . 그리스도의 발현에 대한 신학적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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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발현하여 예수의 잉태를 알려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