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석 方永錫(1918~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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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석 신부.

방영석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18년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豊水院)에서 방재선(요한)과 양재옥(프란치스카)의 10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병인박해(丙寅迫害)때 증조부모가 경남 창녕(昌寧)에 은신해있다가 순교하자 조부 방순서(바오로)는 어린 나이 때부터 머슴살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장성해서는 풍수원의 교우촌에서 옹기점을 운영하며 교우들을 돕는 한편, 풍수원 본당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 활동에 노력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고 자라게 된 부친 방재선 또한 언제나 가족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었고, 방영석도 집안의 신앙 전통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바르고 단정한 품행으로 교수 신부는 물론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아 예절부장을 맡았으며, 1943년 12월 5일 사제 서품과 동시에 종현(鐘峴, 현 명동) 본당 보좌로 임명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5월 제물포(현 답동) 본당 보좌로 전임되었으나, 그 해 11월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서울의 주교관에서 요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후 건강이 회복되면서 교구 재정 담당 신부로 활동하면서 로마 유학을 준비하였으나, 얼마 안가 병이 재발함으로써 유학을 포기하였다. 8 · 15 광복후 황해도 옹진(甕津)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방영석 신부는,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시 폐결핵이 악화되어 고향에서 요양하다가 1947년 12월 12일, 3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여 풍수원 본당 묘지에 묻혔다. (→ 풍수원 본당 ; 옹진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향잡지》 965호(1943. 12. 15), p. 94 ; 994호(1948. 1), p. 31/ 《교회와 역사》 14호(1976. 11), p. 1/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p. 533.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