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룡 方有龍(1900~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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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유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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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유룡 신부.

신부.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및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창설자. 세례명은 레오. 수도명은 안드레아. 호는 무아(無我). 본관은 온양(溫陽). 1900년 3월 6일 서울 정동(貞洞)에서 궁내부 주사(宮內部 主事)이자 영국 공사관 통역관이었던 방경희(方敬熙, 베드로)와 손유희(孫柔嬉, 아녜스)의 3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하다가 15세 때 정동관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여 이듬해 졸업하고, 이어 미동(渼洞)농업학교에 진학하여 2년 동안 수학하였다. 그의 조부 방제원(方濟遠, 프란치스코)은 블랑(Blanc, 白圭三) 주교와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게 한문을 가르쳤을 만큼 실력이 뛰어난 한학자였으며, 부친은 지방 군수 재임 중 향교제사(鄉校祭祀)를 지내야 하는 의무 때문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날 정도로 신앙이 깊었다. 이와 같은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8세 때인 1917년 9월 15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소신학교 6년과 대신학교 6년 과정을 마친 후, 1930년 10월 26일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 해 11월 강원도 춘천(春川)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황해도 지역으로 전임되어 장연(長淵) 본당 보좌(1932~1933. 2), 재령(載寧) 본당 주임(1933. 2~1936. 5), 해주(海州) 본당 주임(1936. 5~1942. 2)을 거쳐 경기도 개성(開城) 본당 주임(1942. 2~1950. 5), 서울 가회동(嘉會洞) 본당 주임(1950. 5~1952), 제기동(祭基洞) 본당 주임(1952~1954. 4), 후암동(厚巖洞) 본당 주임(1954. 4~1955. 10) 등 약 25년 동안 여러 본당에서 사목하였다. 한편 방유룡 신부는 한국인 수도자 양성과 함께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수도회 설립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그 결과 개성 본당 재임 중인 1946년 4월 21일에 윤병현(尹炳賢)과 홍은순(洪恩順)을 첫 입회자로 맞이하여 한국 순교자들을 주보(主保)로 하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를 창설하였다. 1949년 6월 24일 개성 본당에서 개성시 자남동으로 이전한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는, 이듬해 3월 8일 현재의 청파동(青坡洞) 본원으로 이전하였고, 점차 입회자가 증가함에 따라 변모와 발전을 거듭하여 1951년 12월 12일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아 발전의 기틀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그 후 1953년 10월 30일에는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를, 1957년 3월 6일에는 재속 수도회인 '한국 순교 복자회 외부회' 를 설립하였으며, 1962년 10월 1일에는 외부 회원 중 40세 미만의 미망인들로 구성된 '한국 순교 복자 빨마(Palma)원' 을 설립하였다.
1955년 10월 후암동 본당 주임을 끝으로 본당 사목에서 은퇴한 방유룡 신부는, 1957년 5월 6일 한국 순교복자 성직 수도회에서 종신 서원을 한 뒤 수도자가 되었으며, 곧 수도회 총장으로 취임하여 1984년 10월 20일까지 약 27년 동안 수도회 소속 수도자 및 수녀들의 영적 생활 지도 신부를 맡아 많은 활동을 벌였다. 그 후 87세 때인 1986년 1월 24일 서울 성북동의 순교 복자 수도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여 곤지암에 있는 한국 순교복자 성직 수도회 묘지에 묻혔다.
〔영성과 사상〕 방유룡 신부는 수도회 창설 초기부터 자신의 영적 체험을 100여 편이 넘는 시(詩)와 영가(靈歌)로 표현하여 묵상 및 강론 시간에 자주 발표하였으며, 미사 통상문을 비롯한 모든 전례문을 번역하여 직접 작곡한 후 이를 미사 중에 노래함으로써 전례의 토착화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방유룡 신부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동양 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성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을 창조와 인류 타락, 회복으로 보기보다는 '자연 창조와 새 창조' 라는 도식으로 이해하였다. 즉 자연 창조는 하느님 역사의 준비이며 시작일 뿐이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가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인간의 성화 또는 신화(神化)를 본역사(本役事)로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을 닮고, 궁극에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어 신화하도록 초대된 존재라고 하였다. 그는 이 영성 생활의 정점이며 완성을 면형 무아(麵形無我)라 하고, 자신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점성(點性) · 침묵(沈默) · 대월(對越)이라는 수행의 길을 통해 이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면형 무아 : 하느님과의 합일(合一)된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방유룡 신부가 만들어 낸 영성어로서, 그는 성체 성사의 신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영성의 길인 무아에의 길을 발견하였다. 즉 면형 무아란 밀떡의 본체가 없어지고 그 형상만 남아 있으므로 해서 실제로는 무가 된 면형에 그리스도가 오시어 머물러 계심으로써 성체가 된 면형처럼, 자아를 모두 비워 무아가 되면 하느님께서 오시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축성된 성체인 면형은 세상 종말까지만 현존하므로 유한하지만, 면형 무아는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존재하기에 '무한 면형' 이라고도 하였다.
그는 우리가 자기 중심적인 일체의 이기심과 욕심을 끊을 때 무소유 · 무집착의 무아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존재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사랑의 자기 비움이며, 그는 이러한 삶의 모범을 자기의 희생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순교자들에게서 찾았다. 이렇게 볼 때 면형 무아의 영성 안에는 순교의 영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순교의 의미를 재발견한 후 자신이 창설한 수도회의 주보를 한국 순교자들로 정하였다. 그 밖에 그는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제물이 되어 제사를 드렸듯이, 우리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무아가 되어 자신을 하느님께 사랑의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을 '면형 제사' 라고 하였으며, 이때 면형 무아가 된 사람이 바로 제물이자 제관(祭官)이 되므로 '면형 사제' 라고 하였다.
점성 : 방유룡 신부는 무형유(無形有)로서 무와 같으면서도 모든 도형의 기초가 되는 점(點)이 갖고 있는 성격적 특성에 착안하여, 영성 생활의 바탕이 되는 정신의 상징적인 요소를 '점성' 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즉 한 인간이 처한 상황 · 시간 · 장소 · 일 등은 모두 하느님을 만나는 기회이자 그분을 섬기게 되는 기회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향한 수행자(修行者)가 어떤 마음과 정신,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의도로 이 용어를 창안한 것이다. 그는 수도의 장(場)인 일상 생활에서 비록 점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일들과 순간들이라고 해도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하며, 나아가 매사에 정확하고 빈틈없이, 정성을 다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마음과 정신, 태도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 정신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알뜰하게, 빈틈없이, 규모 있게, 정성스럽게' 라는 네 가지 지침을 세운 후, 하느님께 애착된 마음으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라고 하여 영성 생활의 내적 태도가 경(敬)과 성(誠)을 다하는 '경성' 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정신은 신앙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에 필요한 정신이라고 하면서 이를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상호 신뢰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점성 정신' 이고, 둘째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정성으로 자기 본분에서 요구된 범상하고 미소한 일까지도 그 가치를 알아보고 빈틈없이 충실히 행하는 '신덕(信德)으로 본 점성 정신' 이며, 셋째는 미소한 데 충실함을 넘어서서 무에 오시는 하느님의 신비를 알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소모되어 무가 됨을 기뻐하는 겸손의 극치를 살게 하는 '수도 정신으로 본 점성 정신' 이다.
침묵 : 하느님과의 합일인 면형 무아가 되기 위해 점성 정신으로 살려고 할 때, 물리적 · 정신적 · 영적으로 많은 장애 요소를 만나게 된다. 방유룡 신부는 이런 사욕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묵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침묵이란 하느님 아닌 일체의 것을 끊어버려 무사 무욕이 되는 자기 극복의 침묵이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무화(無化)하는 사랑의 자기 증여(贈與) 역시 이 침묵의 삶에 속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침묵의 절정이라 하여 자신 안에 하느님을 거스르는 부정적 요소를 잠재우고 없애는 것은 물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을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서 자기 모든 존재를 사랑의 희생물이 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침묵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를 다시 육신 내적 침묵(분심 잡념과 사욕의 침묵), 육신외적 침묵(오관과 동작의 침묵), 영혼 침묵(이성과 의지 침묵)으로 구분한 후, 이것을 요약하여 침묵 생활을 위한 완덕 오계(完德五誡)를 제시하였다. 첫째 분심 잡념을 물리치고, 둘째 사욕(邪慾)을 억제하고, 셋째 용모에 명랑과 평화와 미소를 띄우고 언사에 불만과 감정을 발하지 말고 태도에 단정하고 예모답고 자연스럽게 하고, 넷째 양심불을 밝히고, 다섯째 자유를 천주께 바치고 그 성의(聖意)를 따른다. 이렇게 볼 때 그가 말하는 침묵은 어떤 특정한 때나 조건이 아닌 한 인간이 전(全) 존재로 모든 삶을 관통해서 이루어지는 생활로서, 이러한 상태가 절정에 이르면 하느님과 의지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대월 : 대월은 한 영혼이 하느님과 내밀한 친교를 맺는 것이다. 방유룡 신부는 영혼이 어떻게 일상 안에서 하느님과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이 '대월' 의 의미를 직접 하느님을 대면하는 내적 삶을 표현하는 '관상' 의 의미까지 포함시켜 이해하였다. 즉 전인(全人)으로 하느님께 몰입되어 '하느님을 맞대면하고 살면서' (對) 침묵 생활을 통해 영의 어두움을 없애면 그만큼 하느님의 빛이 들어오게 되고, 그 사람은 점차 '모든 것을 뛰어넘어 치열한 사랑으로 하느님께 몰입되어 마침내 신화하게 된다' (越). 그런데 하느님을 마주 대하려면 영(靈)의 눈을 밝혀야 하므로 보다 더 침묵해야하고, 침묵으로 밝아져 대월하면 그만큼 하느님의 빛을 받아 그분을 보다 더 잘 알고 사랑하게 된다. 결국 방유룡 신부의 영성에서 침묵과 대월은 한 인간이 면형 무아가 되어 그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기까지 서로 보완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평 가〕 완덕의 절정이 면형 무아이고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무아에의 길을 점성, 침묵, 대월로 설명하는 방유룡 신부의 영성은 결국 면형 무아의 영성이다. 그는 영적 삶을 표현하는 용어 선택은 물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간의 무명(無明)을 헤치고 직접 실재(實在)에 접해서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을 따라 살고자 노력하는 동양의 도맥(道脈)을 계승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자신이 창설한 수도회에 활동부와 관상부를 설치함으로써 수도회의 구성도 활동과 관상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일상과 유리된 특수한 삶으로 인식되어지는 관상을 대월로 그 폭을 넓혀 일상 생활 안에 보편화함으로써 신앙을 생활화하였다. 결국 그의 가르침의 중심은 어떤 대(對) 사회적 활동보다 존재의 변화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평상심(平常心)이 중요하게되고 관상과 활동, 기도와 삶의 일치가 이루어지며, 일상이 성화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그는 하느님의 빛을 받아 점점 밝아져서 그분의 뜻에 맞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하는 '양심불' , 고통과 어려움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변하는 '십자가의 비결' , '심중 천국' (心中天國), '향주 칠법' (向主七法), '침묵 십계' (沈默十戒) 등 수덕의 길을 설명하는 용어들을 창안하여 영적 가르침을 펼침으로써 동양인의 심성에 이미 주어진 하느님의 모상성을 찾았으며, 그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 영성을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그 문화를 그리스도 안에 한층 더 고양시켰다. 신앙의 토착화는 영성이 토착화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볼 때, 방유룡 신부는 한국의 교회사와 영성사 안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을 토착화하였다는 업적을 남겼다. (→ 한국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 참고문헌  김옥희 편, 《영혼의 빛》, 무아 방유룡 신부 문집,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1980/ 김옥희 외, <방유룡 신부님을 추모하며>, 《순교의 맥》 178호(1986. 봄),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pp. 8~40/ 이숙자, <대월의 집>, 《순교의 맥》 185호(1990. 가을), pp. 2~91 ―, <무아 방유룡 신부님의 영적 가르침>, 《순교의 맥》 185호(1990. 가을), pp.10~18/ ―, <침묵은 면형 무아로 가는 길>, 《순교의 맥》 187호(1991. 가을), pp. 40~62/ ―, <점성 정신>, 《순교의 맥》 188호(1992. 가을), pp. 19~54/ ―, <대월>, 《순교의 맥》 189호(1993. 여름), pp. 30~641 --,〈면형 무아〉, 《순교의 맥》 190호(1994. 가을), pp. 9~44/ ―, <면형무아의 삶 : 한국 순교 복자 수도회 창설자 무아 방유룡 신부의 영성1 ~2>, 《영성 생활》 8~9호(1994. 가을, 1995. 봄), 도서출판 영성 생활. 〔李淑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