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대홍수에서 구하려고 하느님이 노아(Noah)에게 만들도록 지시한 배(창세 6, 14-16). 방주의 원어인 '테바' (תֵּבָה)는 일반적인 배가 아니라 사각형의 바구니 또는 광주리, 상자 등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성서에서 노아의 방주와 아기 모세를 나일 강에 띄울 때 담았던 '파피루스 바구니' 를 가리키는 말(출애 2, 3. 5)로만 아주 드물게 쓰였다.
모양 :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에서 노아가 만든 것이 배가 아니라 뜰 수 있는 커다란 상자였다는 사실은 특별한 뜻이 있다. 즉 상자처럼 생긴 방주에는 배와 달리 돛이나 키와 같은 배를 움직이는 장치가 전혀 없다. 이는 방주의 방향을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 좌우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사실은 흔히 노아의 홍수 설화와 비교되는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에서 키를 갖춘 큰 정규 배가 만들어진 것과 비교해 보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길가메쉬 서사시> 도판, 11, 60-62). 하느님은 방주의 건축 방법과 구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온갖 짐승들이 다 타자 손수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창세 7, 16). 그래서 방주는 "보잘것없는 나무 조각"(지혜 10, 4)이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와 "정의를 나타나게 한 나무" (지혜 14, 7)로 이해되었다.
히브리어 음역에 따르면 고페르(gopher) 나무로 노아의 방주를 만들었다(창세 6, 14)고 하는데, 단단한 침엽수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나무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유대 전승(산헤드린 108a, 타르굼)에서 는 히말라야 삼나무(cedar)라고 하나, 학자들은 고대에 배의 재료로 널리 쓰였던 일반 삼나무(cypress)라고도 하고, 간혹 티크 나무나 전나무(공동 번역 성서)라고 여기는 견해도 있다. 성서에 나오는 방주의 규모는 길이 300암마(אַמָּה), 폭 50암마, 높이 30암마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널리 쓰이던 60진법에 따라 표현된 것으로 보이는 방 주의 규모를 현대 단위로 바꿔 보면, 1암마는 46cm 정도이므로 대략 길이 130~150m, 폭 22~23m, 높이 12~14m 가량 되며 배수량은 43,000톤이나 된다. 방주의 규모는 솔로몬 성전에 비해 길이는 6배, 폭은 2배 정도이므로(B. Jacob), 이러한 규모의 방주는 항해용이라기보다는 떠 있기에 알맞는 직사각형 구조물로 여겨진다. 또한, 이러한 방주의 규모는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성전의 건축 방식인 듯하다. 메소포타미아의 성전처럼 방주의 입구가 긴 측면에 배치되어 있는 것도 그에 대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방주의 겉에는 역청을 발라 방수 처리를 하였고, 천장 밑으로 크게 3층으로 나눈 다음 그 안에 많은 방들을 만들어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 8명과 동물들을 홍수로부터 살려냈다. 그에 비해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설화인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의 배는 선상 면적이 1이쿠(약 3,600㎡), 폭과 길이와 높이가 모두 120암마인 정사각형의 배로 노아의 방주보다 약 5배 정도 더 크다. 6층으로 나뉘어진 이 배는 층마다 9개의 방으로 갈라져 있었다.
도착지 : 창세기 8장 4절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는 여러 달 동안 물위에 떠 있다가 마침내 아라랏(Ararat) 산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남아 있다는 주장은 1세기경의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가 《유대 고사기》에서 "아르메니아(Amenia)에 있는 고르예안스(Gordyaeans) 산에 이 배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I , 3, 6).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기원전 3세기의 바빌로니아 사제 베로소스(Berossos)가 수메르의 홍수 설화에 나오는 수메르의 영웅 지우수드라(Ziusudra)의 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요세푸스가 이를 노아의 방주와 동일시한 것일 뿐이다. 이후에도 노아의 방주를 실제로 확인하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본래 방주가 머물렀다는 아라랏(아시리아어로 '우라르투' )은 어느 특정한 산이 아니라 터키 동부와 아르메니아 남서부, 이란 북부에 걸쳐 있는 넓은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기에, 그 지역에 있는 높은 산들은 모두 방주의 도착 지점으로 거론되었다. 아라비아의 자발 주디 (Jabal Judi), 티그리스 강의 발원지인 터키 남동부의 쿠디(Cudi) 산, 코카서스 지역의 바리스(Baris) 산, 터키 북동부의 아그리(Agri) 산, 이란 북부의 데마반드(Demavand)산 등이 후보지였다.
이 중 특히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는 터키 북동부의 아그리 산은 해발 5,165m나 되는 휴화산으로 산의 3분의 1 정도가 만년설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이 일대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은 11~12세기 이래 이곳을 방주가 도착한 지점으로 홍보하였으며, 1300년경에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도 이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언급하였다. 그래서 이 산에 대한 많은 탐험이 이루어지고 증거물로 제시된 것도 있었으나 결정적인 증거물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기서 출토된 목재는 7세기경의 것으로 입증되었다. 고대에 대홍수가 있었음은 여러 지역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홍수의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또한, 노아 시대를 역사상의 어느 특정 시기로 자리매김하기는 더 더욱 어렵다. 따라서 노아의 방주의 잔재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목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리스도교에서 방주는 하느님이 종말의 죽음에서 뭇 생명체를 구원하시고(마태 24, 38 ; 루가 17, 27 : 1글레 9, 4)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곳이요, 인간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요람이자 하느님에 의해 인류가 보존되고 있음을 일깨우는 표징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방주는 세례의 예형(豫型)이자(1베드 3, 20) 믿음과 순종의 표현(히브 11, 7)으로 여겼으며, 특히 성 아우구스티노가 방주를 이 세상을 순례하는 교회의 선구적 범례라고 간주한 이래 교회는 스스로를 '구원의 방주' 로 인식해 왔다. (→ <길가메쉬 서사시> ; 노아 홍수)
※ 참고문헌 L.R. Bailey, Noah and the Ark, 《ABD》 4, p. 1131/ J.W.Montgomery, The Quest for Noah's Ark, Minneapolis, 1972/ N.M. Sarna, Genesis-The JPS Torah Commentary, Philadelphia :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9/ 곤도라도프, 봉희선 역, 《노아의 홍수》, 이성과 현실, 1990. 〔李鎔結〕
방주 方舟 〔히〕תֵּבָה 〔그〕κiβωτός 〔라〕arca 〔영〕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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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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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구스타브 도레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