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사상

開闢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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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발생한 근대 신흥 종교들에서 현재의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보는 사상. 이 종교들에서는 역사를 둘로 구분하여 지금까지의 시대를 선천 시대(先天時代) 새로 도래할 시대를 후천 시대(後天時代)라 파악하고, 이 중 선천 시대는 모든 것이 드세고 겉으로 드러나는 양(陽)의 시대이며, 후천 시대는 그와 반대되는 음(陰)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선천 시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계급 모순이 존재하는 시대로, 개인· 집단 · 계급 · 민족 · 국가 간에는 대립 · 갈등과 투쟁이 생기고, 그 결과 억눌린 개인 · 집단 · 민족 · 국가의 한이 쌓이는 각종 모순과 부조리가 있는 상태를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이 한(恨)이 세상을 파멸시키는 원(怨)이 될뿐 아니라 자연계의 운행 질서마저 파괴하여 가끔 홍수 · 지진 같은 재해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천 시대가 끝나는 말세의 때가 임박하면, 선천 시대의 특징이었던 모든 모순과 부조리가 한꺼번에 드러나고, 개인 · 집단 · 계층 민족 · 국가 간의 대립과 충돌이 일어나며, 선천 5만 년 동안에 쌓인 모든 원한들이 해원(解寃)하려고 일시에 터져 나와 극심한 혼란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또한 말세에는 자연 재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치료할 수 없는 괴질이 세상을 엄습하게 되며, 따라서 이때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대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말세가 지나 후천 시대가 열리면 모든 원한들이 소멸되고 더 이상의 원한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아울러 후천 시대에는 선천 시대의 억눌린 자들이 대접받게 되고, 참다운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며, 물질적인 풍요가 성취될 것이라고 한다. 이 선천 시대로부터 후천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인 선후천교역기 (先後天交易期)가 바로 말세이며, 이 말세를 기준으로 선천 시대 5만 년이 지나면 후천 시대 5만 년이 열리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들 신흥 종교에서 말하는 개벽 사상은 결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려 온 민중의 한과 원망이 종교적 형태로 승화되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사상 속에는 민중의 한이 서려 있고, 그 한을 풀려는 민중의 소망이 포함되어 있으며, 계급 모순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민중의 해원(解寃)으로서 신바람이 담겨 있다. 따라서 개벽 사상에서 말하는 지상 천국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명칭은 각 종파마다 다르다. 동학(東學), 천국복음전도회(天國福音傳道會)와 동방교(東方敎)에서는 지상 천국(地上天國), 증산교(甑山敎)에서는 후천 선경(後天仙境), 정도교(正道敎)에서는 계룡 낙원(鷄龍樂園) , 미륵불교(彌勒佛敎)에서는 후천 극락 세계(後天極樂世界), 용화교(龍華敎)에서는 용화 선경(龍華仙境), 갱정유도(更廷儒道)에서는 춘일원 선경(春日園仙境)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결국 지상 천국 신앙을 각기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개벽 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두 종교의 개벽 사상만을 다루고자 한다.
〔천도교〕 천도교의 개벽 사상에 대해 가장 체계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이돈화(李敦化)뿐이다.
그는 <인내천(人乃天)의 연구>라는 글에서 천도교 교리를 체계화하려고 하였으며, 그 결과 1930년에 《신인철학》(新人哲學)을 간행하면서 이 책의 제2장에서 <개벽 방식과 3대 개벽>을 다루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천도교 개벽 사상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여기에서 3대 개벽은 정신 개벽,민족 개벽, 사회 개벽으로 현실과 이상을 합한 것을 가리키는데, 그중 정신 개벽은 사상 개조로 이상(理想)에 속하고, 민족 개벽과 사회 개벽은 현실 개조로 현실 문제에 속한다.
정신 개벽 : 이것은 일종의 사상 개조를 의미한다. 즉 "수아영부(受我靈符)하여 제인질병(濟人疾病)하라"(신인철학 148쪽)는 구절을 통해 이 정신 개벽이 철저히 강조되는데, 이돈화는 "나의 이 부적을 받아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하라”(《東經大全》 布德文)는 새 정신이 곧 사람들의 병든 정신을 고치라는 동학의 종교 사상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동학 사상이 이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른 근원적인 교회(敎誨)이기 때문에 '일종의 사상 개조라고 할 수 있다' 고 하였으며, 이를 곧 정신 개벽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사람의 정신이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정신 개벽은 헛수고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이돈화는 "유물론적 이론과 같이 환경이 정신을 낳았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이미 의식이란 것이 생긴 이상 물질 행동과 의식 행동은 어디까지나 병행하게 된다" (신인철학 148쪽)고 하여 유물론적 이론을 의식하면서도 끝내 물질 행동과 의식 행동은 어디까지나 병행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속에는 의식 행동이 앞선다는 신념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맑스의 선언에서 '만국 노동자여! 단결하라!' 고 한 결론은 확실히 의식 행정(行程)을 앞서 본 말이다"(위의 책, 148~149쪽)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유물론적 이론에 반대하는 이돈화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가 말하는 정신 개벽은 온 인류를 위한 어떤 종교적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보수적 태도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반항을 강조함으로써 썩어진 관습에서 살지 말고 새 이상과 새 주의 아래에 새 혼을 가지라고 하였다.
민족 개벽 : 이것은 민족의 문화를 향상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혁신이다. 여기에는 민족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이돈화는 천도교라는 종교의 경지에 서 있으므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바라지 않으며, 그러므로 "과거 민족주의는 인류 사이의 차별과 배제를 의미하는 민족주의요, 오늘의 민족주의는 인류의 평화를 요구하는 민족주의이다"(위의 책, 154쪽)라고 하였다.
이러한 민족주의를 전제로 하는 민족의 혁신 운동인 민족 개벽은 모든 이상주의의 과도기에 있어서 최대의 준비적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족 개벽은 민족 단위의 혁신 운동으로 인류의 이상 실현을 위해 과도적이며 준비적 기초가 된다. 원래 그 당시 민족 문제가 일어난 것은 약소 민족, 즉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의 지배를 받는 약소 민족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민족 평등의 요구는 약소 민족 그 자신에게만 행복이 되는 것이 아니요, 세계 평화상에 또한 행복이 되는 것이다"(위와 같음)라고 하여 세계를 향해 우리 민족의 독립을 하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우리 민족 자신의 자각 · 결단 · 노력이 필요할 뿐이며, 우리 민족에게는 역사와 현실을 깊이 깨닫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근본적 혁신이 요구되는데, 이것이 바로 민족 개벽이었다. 이돈화는 이를 또한 동학의 종교사상과 연관시켜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하게 할 계책'을 갈망한 수운(水雲, 崔濟愚)의 종교 사상을 이어 받은 것이 민족 개벽이라고 하였다.
사회 개벽 : 민족 단위의 사회적인 혁신이 민족 개벽이고, 인류 차원의 사회적인 혁신이 사회 개벽이다. 여기서도 이돈화는 유물론적 사회주의의 혁신 방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맑스를 신봉하는 이들의 이론은 경제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면 인생 생활의 최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며, 저들이 바라는 이상세계도 그 하나의 조건으로 여지없이 실현되리라 믿는
다"(위의 책, 159쪽)라고 맑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 개벽' 에서 경제 문제 외에 '인력의 발휘' 라는 유신론적 이상을 중심 문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투쟁 이론에서도 계급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창조를 위한 투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이 사회 개벽도 정치 · 경제적 차원이 아니라 동학의 종교적 경지에서의 혁신 운동이다. 그러나 이돈화는 사회 개벽이 동학(천도교)에서는 마지막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증산교〕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美一淳)은 현재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가 선천(先天)의 천지도수(天地度數)가 잘못 짜여져 상생(相生)이 아닌 상극지리(相剋之里)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하였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 잘못된 개벽을 통해 천지도수를 바로잡는 길밖에 없다고 하였다. 증산(甑山)은 바로 자신이 잘못된 천지도수를 고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그 구체적인 방법이 자신이 수시로 행한 천지공사(天地公事)라고 하였다. 홍범초(洪凡草)는 증산 사상을 설명하면서 "천지공사란 그릇된 상극의 이치의 지배를 받아서 혼란에 빠진 선천의 세계를 뜯어고쳐 후천(後天) 선경(仙境) 세계를 건설하고, 인간과 신명으로 하여금 안락을 누리게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지공사는 주로 증산과 그의 제자들이 행하는 이해하기 힘든 상징적인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행해지는 것은 종이에 글자를 써서 태우는 일인데, 그 예로 명부(冥府)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 명부공사를 행할 때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사른 경우를 들 수 있다. 천지공사의 핵심은 해원(解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무속에서는 예기치 못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원 혹은 한을 품게 되며, 더욱이 일생 동안의 숙원을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더욱 큰 원한을 품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원한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안녕을 해친다고 하는데, 증산에 따르면 이 세계는 원한을 품은 영혼에게서 나오는 살기로 가득 차 있으므로 이 세계를 구하는 길은 원한을 푸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증산은 다음으로 해원시켜야 할 대상을 이 세상을 건지려는 큰 뜻을 품었다가 구족이 멸하는 큰 화를 입고 죽은 만고 역신(萬古逆臣)으로 잡고 있다. 또한 증산은 선천 시대에는 잘못된 음양 관계로 남녀 관계가 잘못되어 특히 여성이 피해를 보았다고 하면서 남녀 평등 사상을 주창하였다. 증산은 개벽을 통해 얻은 후천 세계를 바로 원한이 없는 세상으로 보았다. (→ 천도교 ; 증산교)
※ 참고문헌  李敦化, 《新人哲學》, 천도교중앙총부, 1930/ ⸺, 《창간사》, 《開闢》, 창간호, 1920. 6/ 崔東熙, 《東學의 思想과 運動》, 성 균관대학교 출판부, 1980/ 洪凡草, 《甑山敎概說》, 창문각, 1982/ 盧吉 明, 《韓國의 新興宗敎》, 고려대 민족 문화연구소, 1982/ 한국사상연 구회, 《한국 사상의 주류》, 경인문화사, 1975/ 최준식, <증산의 가르 침에 나타난 혼합주의의 구조>, 《종교 신학 연구》 제2집, 분도출판 사, 1989. 〔崔東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