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919년 12월 8일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오감리(梧甘里, 현 가야리)에서 배필수(스테파노)와 김안나 사이의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나 동성상업학교 을조와
성신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곧바로 프랑스에 유학하여 앙제(Angers) 신학대학에서 2년 동안 수학한 후, 1954년 6월 29일 앙제 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리용(Lyon) 국립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1956년 11월 26일 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는데, 이 기간 동안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The Fraternity of the Little Sister of Jesus) 분원 지도 신부로 활동하였다.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세인트 아그네스(St. Agnes) 성당 보좌(1957. 5~8)를 거쳐 샌폴 미네소타의 릿지빌 성당 보좌(1957. 9~11)로 잠시 사목하였다.
귀국 후에는 광주 까리따스 수녀원 지도 신부(1957. 12~1958. 3), 송정리(松汀里, 현 원동) 본당 보좌(1958. 3~1960. 6), 무안(務安) 본당 주임(1960. 6~1964. 11)을 역임하였는데, 무안 본당 재임시에는 관할 망운(望雲) 공소 부근에 750정보(町步)의 간척지를 개간하기도 하였다. 이어 월산동(月山洞) 본당 주임(1964. 11~1965. 2), 노안(老安) 본당 주임(1965. 8~1966. 11) 등으로 사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계 학교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광주 가톨릭대학 전임 강사(1962. 4~8), 금릉의숙 이사(1962. 11~1970. 11), 대건학당 이사(1964. 10~1968. 10), 신성학원 이사(1965. 4~1970. 3), 성 골롬반 중학교 교장(1965. 8~1966. 11) 등을 겸임하였다.
1966년 12월에 부산교구로 전임되어 청학(靑鶴) 본당 주임(1966. 12~1971. 11), 거제(巨濟) 본당 주임(1971. 11~1972. 12), 송도(松島) 본당 주임(1972. 12~1975. 7) 등을 역임하였고, 동시에 복자(福者)유치원 원장(1970. 9~1974. 9), 부산교구 유지 재단 이사(1973. 7~1974. 9), 부산 교구 사제 평의회 의장(1974. 7~1975. 11) 등을 겸임하였다. 그 후 신선(新仙) 본당 주임으로 전임된 배봉룡 신부는, 사목 도중 건강이 악화되어 1976년 11월 17일자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약 5년 간에 걸친 투병 생활 끝에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1981년 3월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양산(梁山) 본당 묘지에 묻혔다. 현재 수원교구 소속의 배영무(表英武, 라우렌시오), 배영섭(裵英燮, 베드로) 신부는 그의 조카이며, 배경석(裵庚奭, 요셉) 신부는 그의 손자이다. (→ 광주대교구 ; 부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신문> 399호(1963. 11. 17), 3면 ; 1248호(1981. 3. 29), 4면/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부산교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李裕林]
배봉룡 裹鳳龍(1919~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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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배봉룡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