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가밀로회 창설자. 축일 7월 14일. 이탈리아 나폴리 왕국 아브루초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사망.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부친은 프랑스 및 나폴리 왕국 군대에서 대위로 복무하였기 때문에 아들의 교육에 소홀하였다. 가밀로는 일찍부터 군인이 되어 도박에 빠졌다. 21세 때 다리의 궤양 치료차 로마의 산 지아코모 병원에 입원, 병이 치유되자 그 병원의 하인으로 고용되지만 도박병과
난폭한 성격, 게으름 등으로 해고당했다. 가밀로는 1571년부터 1574년까지 베네치아 왕국 병사로 터키와의 전쟁에 참전하다가 부상으로 제대한 후 실직 중에 다시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였
다. 1575년 우연히 설교를 듣고 심경에 변화가 일어나 안프레도니아의 카푸친 수도회에 근무하면서 참회의 생활을 시작,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다리병의 재발로 다시 산 지아코모 병원에 입원, 치유되어 1579년 다시 카푸친회에 입회했으나, 또 병이 재발되어 퇴회해야만 했다. 이처럼 일생 동안 그를 괴롭힌 다리병 때문에 두 번씩이나 수도 생활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의에 빠진 가밀로는 자신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로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정력을 쏟았으며 로마의 산 지아코모 병원에 자원으로 봉사하다가 곧 그 병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가밀로는 당시 병원의 어려운 사정을 절실히 깨달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환자들의 간호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가밀로는 고해 신부였던 성 필립보 네리의 권고를 받아들여, 로마의 예수회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584년 사제로 서품된 후,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사제와 평수사들로 구성된 가밀로회(The Camillians)를 창설하였다. 1586년에는 교황 식스토 5세에 의해 수도회 회칙이 인가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로마의 주요 병원에서 사목하다가, 1585년에는 자신들의 병원을 세웠으며, 특히 로마 항구의 배들을 통해 전염되는 흑사병 환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치료했다. 환자 식단, 병실의 개량, 전염병 환자의 격리 등 환자의 육체적 필요에 대한 배려와 함께 영적인 요구에도 응할 것을 아울러 고려함으로써 간호 분야에 커다란 개혁을 이룩하였다.
회원들은 항상 숨을 거두는 환자들 곁에 있었으며, 임종자들의 장례 등에도 큰 관심을 보임으로써 '착한 임종 신부' (Agonizantes)로도 불리었다. 그는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환자 곁에 있었다. 성체를 영해 주거나 병자성사를 주며 환자들에게 "부탁 대신에 명령하라"고 하면서 환자들을 섬기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다루기 힘든 환자는 늘 가밀로의 차지였으며 임종자들은 그의 품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의 건강이 점차 악화되어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1607년 21년 간의 장상직을 사임할 당시 300명의 회원과 15개 분원, 8개의 병원이 생길 만큼 발전하였으며 170명의 회원이 환자들을 간호하다가 생명을 잃었다. 퇴임 후에도 개인적으로 늘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죽는날까지 봉사한 가밀로는 '적십자 성인' 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검은 수도복 위에 붉은 십자표를 달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1746년에 교황 베네딕도 14세에 의해 시성, 1886년 레오 13세에 의해 병자 및 병원의 수호 성인, 1930년 비오 11세에 의해 간호사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聖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배문한, 《그리스도의 향기》, 성모출판사, 1993/ John Coulson, The Saints/ Guild Press-New York/ P. Tutwiler, 《NCE》2. 〔裵文漢〕
가밀로, 렐리스의 (1550~1614)
Camillus, de Le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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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렐리스의 가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