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적으로 1751 ~ 1772년 프랑스에서 간행된 《백과전서》(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e des science, des arts et des métiers, par une societé de gens de lettres)에 참여한 편집인, 원고 기고자, 협력자, 발행인들을 총칭하는 용어. 이 용어는 《백과 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당시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과학적 · 정치적 · 종교적인 견해를 지지하였던 프랑스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백과 전서》는 디드로(D. Diderot, 1713~1784)와 달랑베르(F. le. R. D'Alembert, 1717~1783)의 지휘 아래 루소(J.J. Rousseau), 볼테르(Voltaire) , 엘베시우스(C.A. Helvétius)등이 함께 발행하였는데, 프랑스 계몽주의의 발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 원〕 《백과 전서》는 영국에서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1728~1729년에 체임버스(Ephraim Chambers)는 영국에서, 고대부터 근대 전반을 총망라하여 과학과 예술에 관한 단어와 그 의미를 설명한 《사이클로피디아 : 예술 과학 대사전》(Cyclopaedia : An Universal Dictionary of Arts and Science)을 두 권으로 출판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밀(John Mills)과 덴마크의 셀리우스(Gottfried Sellius)가 1743~1745년에 파리에 머무르면서 이 사전을 프랑스
어로 번역하여 서점상인 르 브르통(André Le Breton)에게 간행을 요청하였다. 르 브르통은 이 사전의 간행에 필요한 왕의 특전(Priviège Royal)을 얻었지만, 이들의 번역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달랑베르와 구와(Abbé Jean Paul Gua)를 번역자로 선임하였다. 1년 후에 합류한 디드로는 1747년 수학 부분을 제외한 다른 전체 내용의 정식 편집인이 되었는데, 그는 체임버스의 사전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백과 사전을 편집하기로 하고, 르 브르통의 동의를 구하였다. 이로써 《백과 전서》의 규모가 확장되었는데, 1750년의 사전 내용 견본 설명서에서 그는 이러한 사전의 편찬에 대해, 체임버스의 사전과 해리스(J.Harris)의 《전문 사전, 예술과 과학 대사전》(Lexicon technicum, or Universal Dictionary of Arts and Sciences, 1704), 그리고 다이케(T. Dyche)의 《새영어 사전》(A New General English Dictionary, 1740)의 종합 · 간행이라고 묘사하였다.
1751년 《백과 전서》 제1권이 파리에서 발행되었을 때, 그 내용은 전통적인 학문 입장을 고수하던 이들, 특히 예수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회의 《트레브 사전》(Dictionnaire de Trévoux)이 실제적으로 문학적인 입장에서 《백과 전서》의 경쟁서였다면, <트레브 신문>(Journal de Trévoux)은 정규적으로 《백과 전서》를 비난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예수회가 그 사전의 간행을 중지시키려 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얀센주의자들 역시 이 사전의 출판에 반대하였으나, 1752년 제2권이 발행되기까지 《백과 전서》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인 금지 조치는 없었다. 그런데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1710~1774)는 이 두 권의 사전이 왕권을 파괴하려는 경향을 다분히 지녔고, 독립과 혁명 정신을 고취시키려 하며, 오류와 도덕적 타락, 반종교와 반신앙의 기반을 세우려 한다고 판단하고 사전 발행을 억압하는 정책을 단행했다. 하지만 계속적인 사전의 간행 인가는 철회되지 않았기 때문에, 1753년 11월에 제3권이, 1754년 10월에 제4권(Concil~Diz) , 1755년 11월에 제5권(Dj~Esy), 1756년 5월에 제6권(Et~ Fine), 1757년 11월에는 제7권(F의 끝~Gythine)이 간행되었다. 이 시기 동안 예수회의 탐포네(Abbés Tamponnet), 밀레(Millet), 코트렐(Cotterel)이 신학 부문만이 아니라 전 항목에 대한 공식적인 검열관으로 활동했으며, 1752년에는 프랑스 최고 행정 재판소에 의해 《백과 전서》 중 몇 권이 발행 정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전 간행은 계속되어 1757년까지의 구독자는 4천여 명으로 급성장하였다.
1759년 파리 국회가 이 사전 발행에 대한 왕의 특전을 철회함으로써 출판 허가가 취소되었지만, 디드로는―달랑베르는 그 전해에 이 간행 사업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사전 간행을 은밀하게 진행시켜 1766년에 뇌샤텔(Neuchâtel)에서 제8권부터 제17권까지 10권을 동시에 발간하였다. 《백과 전서》 발간 당시 르 브르통은 시민권과 교회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한 모든 구절들을 삭제하였기에 디드로와 자주 충돌하였다. 디드로의 딸인 방될(Marie Angélique Vandeul)은 디드로가르 브르통에게 삭제된 구절들을 삽입하여 10권을 재인쇄하도록 요청했다고 하지만, 그러한 인쇄본은 아직껏 발견되지 않고 있다.
〔내용과 기여자들〕 1772년 디드로에 의해 완성된 본문 17권과 도판(圖版) 11권으로 구성된 《백과 전서》는 1776~1777년 파리에서 팡쿡크(C.J. Panckoucke)에 의해 간행된 4권의 보충권과 1권의 도판, 그리고 무샹(Pierre Mouchan)에 의해 준비되어 1780년에 암스테르담에서 간 행된 2권의 색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과 전서》 제1권 서문에서 달랑베르는, 사전 편찬의 착수 목적이 모든 과학과 예술의 본질적인 세부 원칙들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독학하기를 원하는 이들이나 교사들 모두를 위한 예비적 수단을 제공하려는 것이었으며, 번영을 위해 인간 지식을 보관해 두려는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베이컨(Francis Bacon)처럼 달랑베르는 모든 학문들을 각각 역 사 · 예술적 유산과 철학으로 나누어 분류하였다. 제1권 목차에 사전의 전체적인 체계가 잡혀 있는데, 여기에는 18세기 프랑스의 제조업, 무역은 물론 생물학 · 화학· 요리 · 정원 관리 · 문법 · 역사 · 수학 · 의학 · 철학 · 물리학 · 종교 · 연극 · 미술 · 음악 등 여러 분야의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백과 전서》 항목들에는 전반적으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저자들은 간접적이거나 풍자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 철학적 · 신학적인 관점들을 소개하였다. 많은 항목들이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견해를 완전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어떤 항목들은 당시 프랑스의 지식인들 사이에 대중화된 무신론적이거나 이신론(理神論)적인 관념을 반영하기도 하였다. 당시 사회의 보수
세력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그들의 대담한 사상들이란 인쇄의 자유 옹호, 지상에서의 교황 수위권 부인, 노예 제도의 폐지, 성서는 평범한 사람의 언어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 지식 생득설(生得說, innatism)의 거부 등이었다.
대략 60~100여 명의 집필자들이 《백과 전서》에 참여하였는데 그중 가장 훌륭한 집필자로 알려진 이들은, 마지막 10권이 준비 중일 때 유일한 협조자였던 슈발리에(Chevalier de Jaucourt), 자연주의자인 뷔퐁(George Louis Buffon),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자연의 체계》(Système de la Nature)와 반종교적 작품들을 저술한 홀바흐(Baron Paul Holbach), 《법 정신》(Esprit des lois)과 《페르시아의 서간들》(Les Lettres Persanes)로 유명한 몽테스키외(Baron de Montesquieu), 재정가이자 경제학자인 네케르(Jacques Necker), 정치 철학자이자 문필가인 루소,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인 튀르고(Anne Robert Turgot), 철학자이자 문인인 볼테르 등이었다.
〔평 가〕 《백과 전서》가 발행 당시에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과대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백과 전서파의 일반적인 입장은 가톨릭 교회와 절대 왕정에 반대하는 것이었고, 이들은 계몽주의 사상을 비롯한 당시의 진보적인 입장에 대해 매우 관용적인 자유주의 관점에서 다루었고, 과학과 기술을 혁신적인 것으로 다루었으며, 당시의 입법 · 사법 · 종교 기관들의 폐해를 비판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진보적인 사상의 대변자 역할을 하였던 이들의 견해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칙적인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이들이 만든 사전은 현대에도 역사적 문서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예수회 ; 계몽주의 ; 프랑스 혁명)
※ 참고문헌 R.Z. Lauer, 《NCE》 5, pp. 332~333/ 막스 뮐러 · 알로이스 할더, 강성위 역, 《철학 소사전》, 이문출판사, 1988, p. 104/ 《세계철학 대사전》, 교육출판공사, 1987, p. 339/ Y. Belaval, 《EU》 8, pp. 279~284. 〔편찬실〕
백과 전서파 百科全書派 〔프〕Encyclopédistes 〔영〕Encyclopedists
글자 크기
5권

1751년에 발간된 《백과 전서》 초판 속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