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희 白南熙(1887~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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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희 신부.

백남희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 은 베드로. 1887년 4월 15일 강원도 평강군(平康郡)에서 백 아킬레오와 조 엘리사의 아들로 태어나 1902년 9월 13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대신학생 시절 학업 성적이 뛰어났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일부 프랑스 신부들이 본국으로 동원되자 교수 신부를 대신하여 소신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1917년 9월 22일 사제로 서품된 후 즉시 충남 공주(公州, 현 공주 중동) 본당 보좌로 임명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북간도(北間島) 조양하(朝陽河) 본당의 최문식(崔文植, 베드로) 신부가 마적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1919년 7월 18일에 그곳 임시 주임으로 파견되어 사목하였다.
이어 1920년 6월 황해도 은율(殷栗) 본당 주임으로 전임된 백남희 신부는, 이곳에서 3년 간 활동하면서 교회 내의 인재 양성을 위해 '해우 양성회' (海友養成會)를 조직하는 등 본당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신자들과의 불화로 사목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다. 1923년 7월에는 사리원(沙里院)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25개 안팎의 공소를 관할하는 한편, 1925년에는 '성가(聖家) 미사회' 라는 신심 단체를 조직하였다. 생활난으로 인해 평양, 진남포, 사리원 등지로 이주하는 신자들이 계속 증가함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교구측에서 많은 농토를 매입하여 신자들에게 경작하게 해줄 것을 여러차례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후 경기도 왕림(旺林, 갓등이) 본당 주임(1933. 6~1936. 5)을 거쳐 1936년 5월 10일 강원도 용소막(龍召幕)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사목하던 중, 1940년 4월 23일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용산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은율 본당 ; 사리원 본당)
※ 참고문헌  《경향잡지》 382호(1917. 9) ; 922호(1940. 5)/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출판사, 1984/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편, 《황해도 천주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