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구 신부. 세례명은 다마소. 1919년 강원도 이천(伊川)에서 태어나 경성 천주공교신학교(京城天主公教神學校) 를 졸업한 후에, 1945년 11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고, 곧바로 혜화동(惠化洞) 본당 보좌로 임명되어 사목하다가 이듬해 7월 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지시에 따라 공산 정권의 지배하에 있던 춘천 서북쪽의 평강(平康)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심한 종교 탄압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던 중 1949년 4월 초에 체포되어 원산(元山)을 거쳐 평양(平壤)으로 압송된 백응만 신부는, 감옥에 감금되었다가 1950년 1월 초 심한 고문과 굶주림으로 인해 옥사,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유엔군 진격 때 발견되어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용산리(龍山里)의 용산 공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 참고문헌 《柏洞半世紀》, 천주교 혜화동 교회, 1977/ 춘천교구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춘천교구 5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1989, p. 27/ 平壤教區史編纂委員會 編, 《天主教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p. 235. 〔편찬실〕
백응만 白應萬(19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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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백응만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