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전국에서 체포되는 천주교 신자수가 많아지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사형의 한 방법. 법전에 수록되지 않은 남형(濫刑)이지만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이용되었다.
행형 방법은 우선 죄인의 손을 뒤로 묶고 상투를 풀어 그 끝을 결박된 손에 묶은 뒤에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하였으며, 그 다음에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한지(韓紙)를 붙이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게 하는 것이었다. 정규량(鄭圭良, 레오) 신부의 《정씨가사》(鄭氏家史)에 의하면, 1866년 12월 8일(양 12월 27일)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鄭殷, 바오로)이 이 형벌로 죽임을 당하였으며, 서울의 절두산(切頭山) 순교자들에게도 이 형벌이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구한말의 학자 황현(黃玹)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백지사 형벌을 설명하면서 "호사가들이 아무도 모른다는 뜻의 도모지(都某紙)라는 말을 얼굴에 백지를 도배질하여 죽게 하는 도모지(塗貌紙)에서 유래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 기록하였다. 또 이를 토대로 하여 현대 표기인 '도무지' (아무리 해도)가 '도모지' 에서 유래된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믿기는 어렵다.
〔편찬실〕
백지사 白紙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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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