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자치 식민지. 미국의 해터러스(Hatteras) 곶에서 동쪽으로 965km 떨어진 북대서양 해협에 위치해 있으며, 버뮤다 섬 등 7개의 큰 섬들을 포함하여 약 36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0개의 섬에만 사람들이 살고 있다. 면적은 53k㎡이며, 인구는 60,000명(193)으로 그 가운데 60%가 흑인과 혼혈인들이다. 수도는 해밀턴(Hamilton)이고, 공용어는 영어이다.
1503~1511년 사이에 스페인의 후안 베르무데스(J. Bermúdez)에 의해 발견되어 1612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60여 명의 영국 정착민들이 식민지화 작업을 위해 이곳에 정착함으로써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616년부터는 이곳에 인도와 아프리카 노예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1684년부터는 영국 왕실과 버지니아사가 공동으로 이곳의 행정을 관할하였다. 버뮤다 제도는 1797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영국의 육군 주둔지와 해군 기지로 이용되었는데, 1957년에 영국 수비대는 철수하였지만 소규모의 해군 시설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1834년 노예 제도가 폐지된 후 20세기 초부터 관광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1941년에는 미국 정부가 향후 99년 간 이곳에서 해군 및 공군 기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최초의 정당인 '진보 노동당' 이 1963년에 결성되어 영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68년 이후 버뮤다 제도는 자치적인 체제를 갖추었지만 정치 불안정 · 암살 · 폭동 등이 계속되었는데, 사실상 이것은 인종 차별 정책 종식을 위한 노력이었다.
1800년까지 버뮤다 제도는 성공회를 제외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선교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런던 식민성에 의해 이러한 제한이 폐지된 후, 1832년에 최초로 가톨릭 사제 1명이 이 제도에서 선교를 하였으며, 19세기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제들에 의해서 극소수의 가톨릭인들에게 사목 활동이 전개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핼리팩스(Halifax)에서 파견된 몇몇 사제들이 이곳에 상주하면서 사목한 결과, 버뮤다 제도는 헬리팩스 대교구의 관할이 되었다. 이 당시 코모(Isaac D. Comeau) 몬시뇰이 성녀 데레사 성당을 건축하였는데, 훗날 이 성당은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1953년 교황청에 의해 버뮤다 제도는 지목구가 되었으며, 1956년에는 대목구로 설정되면서 부활 수도회(Congreation of Resur-rection) 사제들에게 위임되어 같은 해 3월 19일 딜러(Robert S. Dehler)가 최초의 대목구장이 되었다. 1964년에는 7개의 성당이 8명의 부활회 사제들과 포르투갈에서 온 1명의 사제에 의해서 운영되었는데, 특히 포르투갈 사제는 이곳에 사는 포르투갈인들을 돌보았다. 버뮤다 제도에 정식으로 교계 제도가 설립된 것은 1967년이
다.
버뮤다 제도의 가톨릭 학교로는 1890년부터 헬리팩스의 사랑의 자매회(Sisters of Charity)에서 운영하고 있는 성 아녜스 아카데미가 유일한데, 이곳은 1961년부터 흑인 어린이들을 입학시키면서 인종 차별 정책의 종식을 위한 최초의 학교가 되었다. 1995년 현재 인구의 16%인 10,000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교구 1, 본당 6개에, 주교 1, 사제 8(교구 소속 1, 수도회 소속 7), 수녀 5명이 있다.
※ 참고문헌 R.S. Dehler, 《NCE》 2, p. 331/ Petit Robert Dictionn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2, Paris, 1988, p. 214/ 1996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편찬실〕
버뮤다 제도 ― 諸島 〔영〕Bermuda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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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