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고통을 유발하고 올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정신 작용, 혹은 그로 인하여 생기는 심신의 고통 자체를 통칭하는 불교의 개념. 산스크리트어는 클레샤(klesa)로서 '마음을 더럽히는 것' , '상처를 주는 것' , '괴롭히는 것' 등을 의미한다. 혹(惑) · 수면(睡眠) · 전(纏) · 염(染) · 누(漏) · 결(結) · 박(縛) · 진로(塵勞) 등 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 의〕 불교에서는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이 번뇌에서 나온다고 한다. 사실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고 괴롭히는 것은 번뇌뿐이 아니다. 번뇌(惑)에 바탕을 두고 야기되는 각종 업(業)과 또 그 업으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인 고(苦)가 실제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더럽히고 괴롭히는 것들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인간이 실제 생활에서 겪는 모든 현상적인 고통을 통칭하거나 혹은 가장 근원적인 고통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번뇌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번뇌를 끊고 열반(涅槃)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바로 불교의 목적이다.
불교의 진리관(眞理觀)은 세계의 실상이 오온(五蘊, 色 · 受 · 想 · 行 · 識 : 즉 생멸하고 변화하는 모든 것들을 종류대로 모아서 다섯으로 구별한 것)의 일시적인 결합에 지나지 않은 가상(假相)이라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마치 영구 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집착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문제이며, 그러한 헛된 대상들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과 갈등이 바로 번뇌의 원인 혹은 번뇌 자체이다. 즉 인간은 사물을 소유하려 집착하고, 본능적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을 애태우며, 경쟁하고 싸움하고 심지어 살생까지 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고 생겨나는 정신적인 모순을 번뇌라고 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삶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삶이라고까지 말하며, 이 번뇌가 다할 때 해탈(解脫)이 있다고 한다. 번뇌가 사라질 때 제법(諸法)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분 류〕 번뇌에 대한 교리적 연구는 부파 불교(部派佛敎)와 유식학파(唯識學派)를 거치면서 체계화되었다. 가장 유력한 부파 불교의 하나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번뇌를 수면(睡眠)이라고 한다. 수면은 마음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번뇌이며, 그것이 실제의 심리 작용을 동반해서 표면에 나타나는 경우를 전(纏)이라고 한다. 수면의 종류에는 98가지가 있고, 여기에 10가지의 전(纏)을 합한 것이 이른바 108번뇌이고, 모든 종류의 번뇌를 다 합치면 84,000가지나 된다고 한다.
번뇌의 분류 방법은 시대와 논서(論書)에 따라 다양한데, 대략 다음 세 가지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첫째, 번뇌를 근본 번뇌(根本煩惱)와 수번뇌(隨煩惱)로 나누는 것이다. 근본 번뇌는 말 그대로 근본이 되는 번뇌로서, 탐욕〔貪〕, 노여움〔瞋〕, 어리석음〔癡〕, 태만〔慢〕, 그릇된 인식〔見], 진리에 대한 의구심〔疑〕 등이다. 이 가운데 탐욕 · 노여움 · 어리석음 세 가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번뇌로서 삼독(三毒)이라고 칭한다. 탐욕은 자기가 애착하는 대상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며, 노여움은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와 배척이고, 어리석음은 곧 무명(無明)으로서 아집(我執, 自我에 대한 집착)에 얽매인 것을 말한다. 수번뇌는 근본 번뇌에 수반해서 일어나는 번뇌로서, 질투 · 속임수 · 아첨 · 교만 · 방종 · 인색 · 흥분 등으로, 구사종(俱舍宗)에서는 19가지, 유식종(唯識宗)에서는 20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둘째, 수행 단계의 상이(相異)에 의한 분류로서,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견혹은 인식상의 오류에 의하여 생겨나는 번뇌이다. 이것은 사물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올바른 인식의 성립으로 제거될 수 있다. 수혹은 정서적이며 의지적인 성격이 강한 번뇌이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번뇌로서 무의식의 수준에서 잠재되어 있는 번뇌이다. 따라서 견혹처럼 올바른 인식 작용에 의하여 즉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행을 통하여 제거될 수 있는 번뇌이다. 구사종에서는 견혹이 88가지, 수혹이 98가지라고 하였으며, 유식종에서는 견혹이 112가지, 수혹이 128가지라고 하였다.
셋째,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으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아집에 의해 중생이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번뇌를 번뇌장이라 하고, 법집(法執, 존재 또는 敎法에 대한 집착)에 의해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번뇌를 소지장이라고 한다. (→ 불교)
※ 참고문헌 《俱舍論》/ 凝然, 《八宗綱要》 上 · 下/ 望月, 《佛敎大辭典》, 東京, 1974. 〔吳智燮〕
번뇌 煩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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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