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윤리 신학에서의 벌
악행이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권위를 가진 자가 의도적으로 제재를 가하여 징계하고 억누르는 일. 심리학에서는 '행위의 금지, 습관의 파기(破棄) 등을 목적으로 생체(生體)에 부여된 불쾌한 자극' 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벌은 먼저 규칙이나 법을 위반한 자에 대하여 행사되어야 하며, 권위를 가진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고한 사람을 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복수(復讐)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일 뿐 벌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벌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였다고 해서 벌의 개념 속에 있는 규범적 요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윤리 도덕적인 문제가 야기되는데, 인류 역사상 이것만큼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없었다. 벌의 정당화 논리는 대개 '응보설' (應說, retribution), '억제설' (抑制說, prevention), '개전설' (改俊說, reform)의 세 가지 입장으로 대별된다. 이 세 가지 이론은 각각 약간의 논리적 취약성과 사실적인 문제에서 난점(難點)을 가지고는 있지만, 벌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설득력 있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철학적 고찰〕 벌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규칙이나 법과의 필연적인 관계 안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일찍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개념인데, 이 이론은 철학적 숙고(熟考)의 소산이다. 철학에는 벌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억제' 와 '응보' 에 두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억제설 : 벌이 '범죄나 그 밖의 비행을 억제하는 것' 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신명 21, 21). 억제설의 가장 오래된 명제는 플라톤(Platon, 기원전 430~347)의 《법률》(Nomoi)에 잘 나타나 있다. "벌이란 과거에 대한 응보가 아니다. 벌이란 장래를 위하여 부과되는 것이며, 벌을 받는 사람과 벌을 받는 것을 보는 사람 모 두에게 죄를 싫어하게 만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의 과거 범법 행위의 많은 부분을 다시는 행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부과되는 것이다" (xi, 934). 이 이론은 목적론적(teleological)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벌은 그 자체가 선한 것이 아니므로, 그 벌이 가져올 선한 결과(범죄의 감소)를 목적으로 함으로써만 정당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 억제설을 가장 열렬히 지지해 온 사람들은 공리주의자들인데, 벤담(J. Bentham, 1748~1832)은 《도덕과 입법 원리 입문》(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1789)에서 처음으로 공리주의적 처벌 이론을 전개하여, 범법자에 대한 처벌은 언제나 사회의 선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공리주의자들은 행위(혹은 규칙)를 판단할 때 그것이 기대한 만큼의 최대의 공리(功利)를 가져오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르는데, 같은 논지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행위(혹은 처벌을 규정하는 규칙)에도 적용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 대한 처벌이 정당화되려면 기소(起訴)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그를 처벌하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취급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선을 산출하거나 더 많은 피해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중대한 범죄라도 그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처벌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사실적인 문제에 있어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먼저 타인들의 유사한 범행을 억제하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을 처벌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또 중요한 사항이 오로지 처벌의 공리뿐이라면, 처벌되는 자가 반드시 범행자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즉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비밀이 지켜질 경우 그른 일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한 사람까지도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범행을 억제할 수 있다. 끝으로 공리주의적 처벌 이론은 처벌의 정의(正義)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다만 공리성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이다. 그러므로 공리주의적 억제설의 접근 방법은 벌을 윤리 ·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정당화되지 못한다.
응보설 : 이 이론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 여기서 벌의 목적은 균형적 정의(均衡的正義)를 실현하는 것이다. 바빌로니아와 히브리 법전으로 올라가는 역사적 설명에 따르면, 정의는 형평을 유지해야 하는 저울과도 같다. 모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할 때 사회의 '도덕적 형평' 이 생기고, 그러한 형평은 이러한 권리를 누군가 침해할 때 기울어진다. 그렇게 되면 도덕적 불균형이 야기되고 정의의 형평이 기울어져서 문제의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으로써 그 균형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고전적 응보설의 전형인 칸트(I. Kant, 1724~1804)는 《법의 철학》(The Philosophy of Law)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사회 정의가 그 원리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처벌의 기준과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균형의 원칙인데, 그것에 의해 정의라는 저울의 눈금이 다른 한편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것이 '보복의 정의' (lex talionis)이다." 그는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는 입장과 '처벌의 정도와 종류는 행해진 범죄에 의해 결정된다' 는 두 가지 입장을 취하였다. 여기서 정의란 악행이 반드시 처벌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미래의 악을 억제하는 것이 벌의 부가적인 이점이긴 하지만 그것이 처벌의 일차적인 목적은 아니며, 처벌은 일차적으로 죄의 대가로서의 응보를 위한 조치이다. 벌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보편성(普遍性), 일관성(一貫性), , 불편 부당성(不偏不當性)이라는 준거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즉 언제든 누구를 막론하고 동일한 죄를 지은 사람은 동일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관점의 핵심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일상적이며 무비판적인 도덕 의식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여기에도 약점은 있다. 먼저 응보라는 말 자체가 벌받는 사람들을 전혀 개선시킬 수 없는 보복(報復)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그 대상 행동에 대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벌을 정당화하기에는 취약한 논리이다. 사실 응보설은 범죄자에게 고통이 가해져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정당하다는 도덕적 직관(直觀)에 호소함으로써 벌을 정당화할 논리의 필요성도 전제하지 않는 이론이다. 이러한 난점들을 감안하여 응보주의적 이론과 공리주의적 억제설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역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성서적 고찰〕 성서는 하느님 법을 거스른 죄로 인해 받는 징벌에 대하여 매우 자주 언급한다(창세 3, 16-19 ; 이사 10, 5 이하 ; 로마 5, 12). 성서의 율법 체계는 인간이 하느님의 계시된 뜻을 지킬 의무가 있는데, 그 의무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로서 하느님과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며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라는 데 근거를 둔다. 이 의무는 인간이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어떠한 일반적인 기준으로도 수정 또는 개정될 수 없는 불변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길을 걷고 그분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축복을 받으며(레위 18, 4-5 ; 신명 4, 40 ; 30, 15-20 ; 마태 25, 21. 23 ; 루가 6, 38), 그분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징벌을 받는다(신명 28장 ; 이사 5, 20-25 ; 예레 11, 3-5 : 미가 2, 1-3 ; 마태 25, 30 ; 루가 12, 46). 범죄자에 대해 하느님이 내리는 이러한 벌은 대부분 종말론적인 심판과 연관되어 있으며 응보의 성격을 지닌다(창세 9, 6). 오늘날 '하느님의 징벌이 응보이다' 라는 개념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다소 확산되고는 있지만,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신적인 속성이 징벌에 내포되어 있음을 성서는 분명히 하고 있다.
구약성서 :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벌하는 것은 신의 정의(正義)의 속성이다(1열왕 8, 32). 구약에서 사형에 처할 범죄는 공동체 전체의 오점으로 생각되었기에 법이 중죄인을 죽여야 한다고 판결을 내릴 때, 그것은 그를 처형하는 결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을 이스라엘에서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결정인 것이다(신명 17, 12 ; 19, 11-13). 또 범죄자들의 공개 처형이 갖는 범죄 억제 효과도 인정된다. "그리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이런 나쁜 짓을 하는 자가 너희 가운데서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신명 19, 20).
사형 이외의 형벌은 범법 행위에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물죄(對物罪)에 대한 처벌은 가해자의 재산으로써 하는데, 절도와 사기의 경우는 갑절로 배상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고의적인 가해(加害)는 '동해 보복(同害報復)의 원리' 로 다스려졌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 (출애 21, 24-25). 구약의 형법은 어떠한 대물죄도 사형에 처할 만한 범죄로 간주되지 않은 점과 동태 복수법을 범죄자 본인에 국한시킨 점에서 고대 근동의 다른 법 체계들과 차이가 있다.
구약에서 형벌은 대체로 '사형, '체형'(體型), '벌금형' 세 가지로 분류된다. 율법에 기록된 가장 사형 방법은 돌로 치는 것' 이며, 그때는 공동체 참여하여 성읍 밖에서 이루어졌다(레위 24, 14 ; 신명 24 1열왕 21, 13). 이 벌을 받는 죄로는 '자식을 몰록에게 바치는 행위' (레위 20, 2-5), '강신술(降神術)과 점을 치는 행위' (레위 20, 27), '야훼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레위 25, 15-16), '안식일을 범한 죄' (민수 15, 32-36),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 (신명 17, 2-7),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꾀는 행위' (신명 13, 2-6), '부모에게 불효하는 행위' (신명 21, 18-21) 등이다. '불살라 죽이는 방법' 은 두가지 성범죄에 대해 적용되었고(레위 20장 14절의 '한 남자가 모녀를 데리고 사는 경우' 와 레위 21장 9절의 '사제의 딸이 창녀가 된 경우), 창세기 38장 24절에 의하면 매음(賣淫)에도 화형(火刑)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살인자들에 대한 사형 방법으로는 '칼로 죽이는 것' 이었다(민수 35, 16 이하). 이 방법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숭배한 자들을 처형할 때였는데(출애 32, 27), 다른 신들을 섬기는 성읍의 주민들을 처형할 때 쓰인 방법이기도 하였다(신명 13, 16).
구약의 율법에는 체형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규정된 것이 드문데, 신명기에 단 한 번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는데 한 사람의 아내가 얻어맞는 남편을 도울 셈으로 손을 내밀어 상대편 불알을 잡았을 경우에는 그 여자의 손을 잘라 버려야 한다. 조금도 애처롭게 여기지 말라" (신명 25, 11-12). 또 사전에 계획하여 고의로 입힌 신체상의 상해에 대해서는 동태 복수법의 규정이 적용되었는데(출애 21, 24-25), 이 규정은 가해자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그의 권리를 정확하게 부합되는 처벌로 제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동태 복수법의 규정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법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원리이며, 성서에서는 '대리 처벌' 의 개념이 없다. "자식의 잘못 때문에 아비를 죽일 수 없고, 아비의 잘못 때문에 자식을 죽일 수 없다. 죽을 사람은 죄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 (신명 24, 16).
벌금형은 경범죄에 관해서 빈번히 적용되었다. 이 벌금형은 배상적이고 징계적인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그 피해자에게 직접 지불되었지 법원이나 나라에 바치는 벌금은 알려지지 않는다. "임신한 여인을 밀쳐서 낙태시켰을 경우, 그 여인의 남편이 요구하는 배상액을 재판관의 조정하에 지불해야 한다"(출애 21, 22). 또 절도죄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두 배, 네 배 및 다섯 배로 배상금을 내야 했다(출애 21, 37-22, 4).
신약성서 :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처럼 형벌을 규정하는 법전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예수의 몇 가지 말씀에 율법의 요지들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 말씀들 자체는 법의 형식을 띠는 것이 아니라 권유하는 형식이다(마태 5, 21-42참조).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 안에는 죄에 대한 징벌이 분명히 나타나며, 예수가 경고하는 징벌은 본질적으로 종말론적인 것으로, 그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에서 심판의 결정적 요인은 현세에서의 애덕 행위의 실천 또는 기피이다. 이 징벌에 대한 '응보' (應報)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예수가 인간 노력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보상의 형태와 죄인들이 무서워해야 할 징벌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는 사람들을 인간의 판단 기준과는 전혀 다르게 심판하는 하느님 앞에 서게 한다(마르 9, 43-48 ; 마태 25, 41. 46).
신약에서 죄는 하느님과의 배은망덕한 결별, 사랑 실천의 거절, 하느님 공경의 거부 등으로 표현되는데(루가 7, 47 ; 1요한 4, 7-8. 20-21 ; 로마 1, 18-32 ; 참고 : 루가 15장), 이 죄로 인해 하느님의 분노와 징벌의 의노를 일으키게 된다. "여러분은 말씀하시는 분을 거부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들이 지상에서 경고하는 이를 거부하고서 (벌을) 피할 수 없었다면 하물며 하늘에서 경고하시는 분을 우리가 등지고서는 더욱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히브 12, 25). 특히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최후의 심판에 대한 대망(待望) 사상을 담고 있는 신약성서는, 이때에 착하게 산 사람들은 구원을 얻게 되고 회개하기를 거부한 악한 사람들에게는 징벌이 내린다고 강조한다(마태 11, 20-24 ; 12, 41-42 ; 로마 2, 5-11 ; 2데살 1, 5-10 ; 2베드 2, 9). 이 다가올 심판에 대한 교훈은 신약성서에서 아주 심각한 의미를 던져 주며, 그 전반에 걸쳐서 인간에게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올바른 행동, 항상 준비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경건한 생활을 촉구한다(마태 24, 23-25 ; 13장 ; 루가 13, 1-9 ; 필립 1, 9-11 ; 1데살 3, 13 ; 1베드 4, 7-8). 본질적으로 이 응보의 성격은 영신적인 것으로, 신약에서 이에 대한 설명은 모두 비유적으로 표현 되었지만 영원한 생명이 아니면 영원한 죽음이라는 최후의 양자 택일(兩者擇一)을 뜻한다. "그 심판의 결과는 한편으로는 영원한 기쁨, 축복, 영예, 복지(福地), 평화, 행복 그리고 하느님과의 영원한 일치이며, 다른 한편은 어둠, 통곡, 이를 감, 불의 형벌, 공포, 고문과 파멸 그리고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 등으로 묘사되었다" (Wilhelm Pesch, Judgement, 《EBT》, pp. 447~448) . 이 응보는 모든 현세적 차원을 뛰어넘는 것으로, 그 영원성은 무시무종(無時無終)하고 초월적임을 뜻한다.
〔윤리학 및 윤리 신학적 고찰〕 윤리 질서 안에서 윤리법 즉 도덕률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최후 목적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는데, 이 윤리적 법칙은 정언적(定言的) 성격을 지니므로 따르기를 원하거나 원치 않을 수 있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불허한다. 즉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그 복종의 거절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존재의 참된 목적과 창조주 하느님의 참된 목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생과 창조계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하느님 계획의 실현, 하느님 설계의 구축(構築)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이다' 라고 가정할 때, 이 윤리적 요구의 정언적 성격은 논리적인 결론이다. 따라서 이 목적을 존중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인간의 무조건적인 의무이다. 그러나 자율적인 인간에게 규범이나 법은 간혹 짐스럽고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하고 저항하면서 악을 행하기도 한다. 이에 인간들은 윤리적 규범과 제도적 보호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며, 법을 성문화(成文化)하여 인간 생활에 중요한 질서를 세우고 혼란으로부터 그 질서를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이 성문화된 법은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보편적이고 고정된 성격의 명령이며, 그것을 위반하였을 때는 처벌을 받아야 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법의 개념에는 이미 '벌' 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즉 범법 행위로 인해 파괴된 질서의 회복에서 벌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벌은 범법자에게 비록 신체적 혹은 심리적 고통을 줄지라도, 궁극적으로 악행에 대한 보상, 다른 범죄의 예방, 그리고 올바른 윤리적 각성(覺醒)과 개선(改善)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벌의 권한 : 처벌할 수 있는 권한(權限)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에게 있다. 왜냐하면 모든 윤리적 계명들은 하느님의 권위에 기초를 두며, 그 제재(制裁)의 원천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법을 포함한 모든 법은 하느님의 의지에서부터 구속력을 얻는 것이며,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의 권한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공권은 그대의 선익을 위한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따라서 그대가 악을 저지르거든 두려워 하시오. 사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집행하는 것입니다"(로마 13, 4).
벌의 목적 : 벌은 먼저 범행자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왜냐하면 범죄에 대해 '대가(代價)를 지불하는' 치료적 절차를 통해 범행자는 정화되고 순화되기 때문이다. 또 미래에 유사한 범죄를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데도 그 목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벌의 목적은 공공 질서를 보호하고 사회적 형평을 유지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처벌을 규정하는 규범은 공동선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인간이면 누구나 하느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는 윤리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실정법의 처벌 규정은 공동체의 규칙을 어긴 자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처벌이 부과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합법적인 규칙과 합법적인 절차-일반적으로 실정법에서는 '체포' , '재판' , 그리고 '증거 채택의 규칙' -의 과정을 지켜야 한다.
벌과 책임 :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받을 뿐만 아니라 칭찬과 비난을 받는다. 이것이 정당한 경우,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 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원을 가볍게 산책하기로 결심할 때처럼, 칭찬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제어할 능력을 가질 때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이 책임이 법적 판결이나 윤리 도덕적 비난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범법 행위로 인하여 부여되는 벌에는 이미 책임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 소재(所在)가 무분별하게 감소되고 있을 지라도, 과거의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 안에는 응보의 요소가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하며, 사회 질서의 회복과 범법자의 구제라는 목적이 그 처벌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또 처벌로 인해 미래에 발생할 잠재적 범행자의 억제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본보기' (exemplary)로 지나치게 엄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벌과 보상 : 한 개인이 처벌을 받을 때, 그것은 공동체가 그 범법 행위를 불용(不容)한다는 것과 그 범행자의 개선을 바란다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앞으로 범죄의 억제라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벌은 위법 행위를 보상하는 것이다' 라는 헤겔(G.W.F. Hegel, 1770~1831)의 주장이 왜 불충분한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벌은 보상(com-pensation)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살인으로 인해 파괴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어떠한 보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며, 심지어 살인자에 대한 사형 집행조차도 살인이란 범법 행위의 윤리적 극악성(極惡性)을 적절하게 상쇄(相殺)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처벌은 범법자의 개선과 사회 질서의 회복과 관계가 있는 개념이다. 처벌에 대한 응보주의적 이론(retibutive theory)은 이러한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범법자는 먼저 그의 범법 행위로 인해 피해를 끼친 부분에 대하여 배상을 하여야 하며, 정확하게 그 배상을 할 수 없을 때는 응보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벌의 종류 : 벌의 형태는 전통적으로 범죄의 경중성(輕重性)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것은 보통 범죄나 해악(害惡)의 중요도와 비례하여 동등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현대 형법전들은 일반적으로 범죄의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형벌의 상한선을 정한다. 즉 죄책(罪責)의 등급은 범죄를 정의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그에 따라 형벌의 등급이 결정된다. 그런데 실정법에서 죄와 형벌을 규정할 때에는, 범죄 행위나 해악의 윤리 도덕적인 중요성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또한 모든 종류의 벌은 범행자를 교화(敎化)시킨다는 벌의 목적과도 연관성을 맺어야 한다. 종교에서 죄인의 회개는 신과의 화해의 조건이며, 신에 의해 부여된 징벌을 죄인이 겸허하게 받아들여 회개의 길로 들어선다면 죄의 용서를 받고 신의 자비를 체험하게 된다. "하느님께 매를 맞는 일이야 즐거운 일 아닌가! 그러니 전능하신 분의 교훈을 물리치지 말게. 찌르고 나서 싸매 주시며, 때리고 나서 낫게 해주시는 이, 그가 여섯 가지 곤경에서 자네를 건져 주시리니 일곱가지 일에서도 재난이 자네를 건드리지 못할 것일세"(읍기 5, 17-19).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벌은 그 양(量)과 정도, 수단 방법을 통하여 인간 사회에 필요한 '화해의 정신' 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벌은 그 효과 면에서 복수라는 응보의 성격만을 띤 고통의 부여에 머물고 말 것이다.
한국의 현행 형법에서는 형벌을 사형, 징역(懲役), 금고(禁固), 자격 상실, 자격 정지, 벌금, 구류, 과료(科料), 몰수 등 아홉 가지로 규정한다(형법 41조). 이 형벌은 내용 면에서 생명형(生命刑 : 사형), 자유형(自由刑 : 징역, 금고, 구류), 재산형(財産刑 : 벌금, 과료, 몰수), 명예형(名譽刑 : 자격 상실, 자격 정지) 등으로 구별된다.
벌과 윤리적 가치 : 어느 실정법 체계(신적 실정법 혹은 인정법)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시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윤리 도덕이나 가치 체계를 반영하여 실천한다. 미국의 대법원장이었던 워렌(Earl Wamen, 1891~1974)의 다음 발언은 법이 얼마나 윤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가를 잘 가르쳐 준다. "문명 사회에서 법은 윤리라는 바다 위에 떠 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이나 문명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다. 법이 없다면 일말의 양심조차 가지지 않는 자가 제 세상을 만난 듯 날뛸 것이며, 윤리가 없다면 법은 존재할 수 없다" (김원수 외 역, 《기업 자유의 윤리적 기초》, 경문사, 1991). 이와 마찬가지로 제도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법 안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형)벌도 윤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교 전통이 있는 사회에서 벌은 법이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윤리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법과 윤리 도덕의 관계에 대한 '회의론' (懷疑論, skepticism)이 등장하면서, 벌은 점점 '법적인 비난(非難)' 이란 의미에서 논의되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제3자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은 행위―이를테면 서로 동의한 성인들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는 동성애(同性愛) 같은 성범죄―가 법에 의하여 처벌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법과 처벌을 윤리 도덕으로부터 분리시키거나 처벌을 윤리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법 그 자체 안에 지속하는 처벌의 의미와 그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법과 도덕의 이질성(異質性)을 강조하는 칸트도 범법 행위는 윤리 도덕적 비난을 받아야 하며, 이것의 법적 효과가 바로 형벌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법으로 처벌하지 않거나 위법이 아니라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윤리 도덕적으로 행해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65년에 서독 형법은 동성 연애를 금지하는 조항을 폐지하였는데, 이것이 윤리적으로 동성 연애가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벌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공동선의 요구들과의 상호 연관성을 긴밀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 참고문헌 A. Bondolfi, Pena e Pena di Morte, Bologna, EDB, 1985/ A. Pugliese, Pena, 《DTM》/ T. Goffi, Ermanno Ancilli ed., 《Dizionario Enciclopedico di Spiritualit》, Edizioni Studium, Roma, 1975, pp. 1424~1427/ I. Evans, 《NCE》 11, pp. 1025~1028/ J. Cottingham, 《EE》/ M. Green- berg, 《IDB》/ J. Hospers, 최용철 역, 《도덕 행위론―현대 윤리학의 문제들》, 지성의 샘, 1994/ 최종고, 《법과 윤리》, 경세원, 1992/ ―, 《법과 종교와 인간》, 삼영사, 3판, 1992/ M.P. Golding, Philosophy of Law, New jersey, Prentice-Hall, 1975(장영민 역, 《법철학》, 제일출판사, 1982). 〔李太成〕
II . 교회법에서의 벌 (⇨ 교회의 제재)
벌 罰 〔라〕poena 〔영〕punishment
I . 윤리 신학에서의 벌 · II . 교회법에서의 벌 (⇨ 교회의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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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규칙이나 법과의 필연적인 관계 안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일찍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개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