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52소재. 1957년 9월 20일 보성(寶城)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마르가리타. 관할 구역은 보성군 벌교읍, 조성면, 승주군 외서면, 낙안면, 송광면,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남양면 일대. 공소는 동강, 금성 2개소. 〔교 세〕 1958년 189명, 1964년 617명, 1972년 718명, 1979년 822명, 1985년 1,154명, 1991년 1,267명, 1995년 1,338명. 〔역대 신부〕 초대 모리시(M. Morrissey, 모) 미카엘(1957.9~1960.4), 2대 마이클스(J. Michaels, 권) 야고보(1960. 4~8), 3대 올리어리(A. O'Leary, 오) 안드레아(1960. 8~1964. 8), 4대 돌란(J. Dolan, 도) 요셉(1964. 8~1966. 9), 5대 아리아가(F. Arriaga, 민) 프란치스코(196. 9~1968. 8), 6대 페나(L. Pena, 배) 루도비코(1968. 8~1971. 9), 7대 에스피노자(J. Espinoza, 노) 요셉(1971. 9~1972. 9), 8대 바쿠다노(T. Baguedano, 박) 테오도로(1972. 9~12) , 9대 알바레즈(P. Alvarez, 안) 바오로(1972. 12~1976.8), 10대 루나(A. Luna, 윤) 아우구스티노(1976. 8~1982. 2), 11대 안호석(安虎錫) 안드레아(1982. 2~1985. 2), 12대 이재휘(李載輝) 시메온(1985. 2~1986. 2), 임시 김재기(金在基) 안드레아(1986. 5~8), 13대 김재기(1986. 8~1989. 2), 14대 김권일(金權一) 프란치스코(1989. 2~1992. 2), 15대 정대영(鄭大榮) 모세(1992. 2~1996. 2), 16대 이재휘(1996. 2~1997. 2), 17대 고을식(高乙植) 토마스(1997.2~현재).
〔공소와 본당의 설립〕 벌교 지역은 1940년 3월경에 만주 연길 지역에서 이사 온 방용원(傍龍源, 타대오)과 양만선(楊萬善, 사비나) 부부에 의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는데, 처음에는 벌교에 공소가 설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순천(順天, 현 楮田洞) 본당 소속의 승주군 낙안(樂安) 공소로 다녀야 하였다. 당시 이 지역에는 방용원의 가족 외에 세 명의 신자가 더 있었다. 그러다가 쿠삭(T. Cusack, 高) 신부가 순천 본당 주임으로 있던 1941년에 벌교 공소가 설립되어 방용원의 집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고, 1954년 12월 7일에 보성(寶城)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벌교 공소는 새 본당에 편입되었다.
보성 본당의 2대 주임 모리시 신부는 관할 지역 가운데 장차 본당을 설립할 후보지로 벌교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던 중 1957년 9월 20일자로 벌교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자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모리시 신부는 1940년부터 야학으로 운영되어 오던 송명(松明)학교(현 사제관)를 인수하여 보수한 뒤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며, 사제관도 건립하였다. 이때까지 본당의 교세는 미미한 편이었으나, 레지오 마리애 '구세주의 모친'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어 전교 활동을 벌임으로써 점차 신자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58년에는 순천 본당 관할의 고흥(高興) 공소를 이관받았으며, 1960년 5월에는 소년 레지오 마리애 '인자하신 정녀'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어 미사 복사 지도, 학생 교리반 인도, 성가 지도와 학생 예비 신자 인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본당의 정착과 변모〕 3대 주임 올리어리 신부 때인 1961년에 소신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미국인 신자의 기부와 교구의 지원으로 102평의 성당을 건립한 후, 4대 주임 돌란 신부 때 교세가 크게 확장되자 고흥군에 동강 공소(東江面 大江里), 승주군에 금성 공소(外西面 錦城里)를 설립하였다. 한편 가톨릭 구제위원회(NC.W.C.C.)로부터 지원을 받아 동강면 대서리(大西里)에서 간척 사업을 벌였으나, 자금난으로 인하여 중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68년 8월에 5대 주임 아리아가 신부를 마지막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철수하고, 과달루페회의 페나 신부가 부임하였다. 1971년 1월 1일에는 고흥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 분리되어 이때 과역 공소가 신설 본당으로 이관되었으며, 1976년 8월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루나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를 재정비하고 사도회와 성모회를 발족시키는 한편, 교육관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1982년 2월 벌교 본당의 관할이 광주대교구에 이관됨에 따라 한국인 안호석 신부가 11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성당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안호석 신부는 성심회, 요셉회, 제대회 등 여러 평신도 단체들을 조직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이고 원활한 사목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13대 주임 김재기 신부는 소성당과 도서관을 건립하고 교리실을 신축하였으며, 학생 성서 모임을 결성하고 학생회지 《풋보리》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대도시로의 이주 인구가 증가하여 교세가 급격히 감소해 가는 실정이어서 본당에서는 1996년 4월에 지역 소공동체를 결성하는 등 교세 확장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보성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편찬실〕
벌교 본당
筏橋本堂
글자 크기
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