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동 본당

泛魚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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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수성구 범어1동 782 소재. 1951년 3월 10일 삼덕동(三德洞)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관할 구역은 범어동 전역과 수성동 일부. 〔교세〕 1955년 1,142명, 1965년 1,300명, 1974년 1,950명, 1980년 3,369명, 1986년 3,523명, 1991년 4,451명, 1995년 4,975명. 〔역대 신부〕 초대 권영조(權永兆) 마르코(1951. 3~1959. 7), 2대 노경삼(魯景三) 다니엘(1959. 7~1965), 3대 파브리지(M. Fabrizi, 황만용) 마리오(1965~1968. 3), 4대 허철(許澈) 안드레아(1968. 3~1969. 1), 5대 치폴론(R. Cipollone, 지세암) 로코(1969. 1~1974. 11), 6대 디 프란체스코(A. Di Francesco, 안현철) 안토니오(1974. 11~1982. 1), 7대 팔다니(J.C. Faldani, 장자호) 요한 가롤로(1982. 1~1985. 1), 8대 김옥수(金玉洙) 도미니코(1985. 1~1988. 11), 9대 원유동(元裕東) 바오로(1988. 11~1990. 11), 10대 김임기(金任基) 안토니오(1990. 11~1996. 1), 11대 강택규(姜澤圭) 예로니모(1996. 1~현재).
〔공소 시대〕 황청동(黃靑洞) 최초의 신자 윤홍진(尹洪鎭, 필립보)이 청도(淸道)에서 살다가 1910년 12월경에 범어동 지역으로 이주해 옴에 따라 복음이 전파되었는데, 한의사였던 그는 한약과 침술로 병자들을 돌보면서 전교에 힘쓰다가 1925년 5월 20일에 흠골(현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 집회 장소를 마련하였고, 이것이 계산동 본당 관할 은곡(隱谷) 공소의 시작이 되었다. 1944년경에는 흠골뿐만 아니라 범어동의 신자들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범어동 신자들은 멀리 흠골에까지 가서 공소 첨례에 참여해야 하는 불편이 따르자, 그 해 7월경 수기내(현 황청동 小溪內, 어린이 회관 부근)에 사는 김호범(루도비코)을 중심으로 따로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어 그들은 1945년 11월에 신사(神社)가 위치해 있던 현 부지로 옮겨 첫 모임을 가졌고, 그 결과 삼덕동 본당 관할 범어동 공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곳 신자들은 1947년 6월경에 효성초등학교 강당을 헐어 낸 자재로 공사를 시작하여 1948년 2월에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본당 설립과 변모〕 범어동 공소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10일에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권영조 신부를 맞이하였고, 종전 직후인 1953년 7월에 유치원 건물을 신축하여 이듬해 4월 6일 샛별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1957년 2월에는 레지오 마리애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다.
1959년 7월에는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대구에 진출함에 따라 본당 사목권이 교구에서 수도회로 이관되면서 수도회 소속의 노경삼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12월 7일 무염 시태 성모상을 건립한 노경삼 신부는, 1962년 12월 지산(池山) 공소를 설립하였다. 한편 1964년 9월에는 성당 북쪽에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을 완공함으로써 수도원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1966년 10월에는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년 5개월 만인 1968년 1월 5일에 이를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또 5대 주임 치폴론 신부는 1971년 10월 10일 성당 입구에 성 프란치스코상을 건립하였고, 1973년 10월 24일에는 중고등학생 예비 신자 체육 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같은 달 10월 28일에는 도서실을 마련하여 본당 신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12월에는 66평 규모의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그 후 6대 주임 디 프란체스코 신부 재임 때인 1974년에는 관할 지산 공소의 교세가 크게 증가하자 1975년 2월 20일에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977년 12월 1일에 지산 본당(현 두산동 본당의 전신)을 분리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30여 년 동안 운영해 오던 샛별유치원을 재정난으로 인하여 폐원해야만 하는 가운데에서도 1983년 2월 황금동(黃金洞) 본당이 설립되어 황금동 일대를 신설 본당으로 이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옛 유치원 건물을 개수하여 '마리아 회관'이라 명명하고 교리실 등으로 이용하였으며, 1989년 5월에는 마리아 회관 옆에 '요셉 회관' 을 건립하여 단체 회합실로 이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1988년 3월에는 야학 '화선(和善)학교' 를 열었고, 1991년 3월에는 '화선 노인대학' 을 개강하는 등 관할 구역 내의 빈민들을 위해 사회 복지 사업과 노인 사목, 장학 사업 등을 꾸준히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 1996년 1월에 본당 사목권이 교구로 환원되고 11대 주임으로 강택규 신부가 부임하면서 수도원은 월배(月背) 본당으로 이전하였다. 그 해 6월에는 건립한지 30년 가까이 된 성당이 붕괴될 위험이 있어 성당 천장을 헐고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수하였고, 1997년 2월 17일에는 수도원 건물을 유치원으로 개축하여 1998년에 개원할 예정이다. (→ 대구대교구 ; 삼덕동 본당)
※ 참고문헌  天主教大邱大教區史 編纂委員會 편, 《교구사 연대표》,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4/ ―, 《大邱本堂 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빛》 150호(1995. 10).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