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질서에 근거하여 사회 정의와 공동선을 실현하고자 정당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정당한 절차에 의하여 제정 · 공포 · 확인된 이성적 명령.
I . 정 의
라틴어 '유스' (jus)는 법을 의미하는 용어인데, 객관적 · 구체적으로는 법을 의미하고, 주관적 · 추상적으로는 권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법과 권리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라틴어 '렉스' (lex)는 법률을 의미한다. 영어의 경우 법은 '로' (law)이고, 권리는 '라이트' (nigh)이고, 법률은 '스태튜트' (statute)이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법과 법률은 용어가 다르다. 그러나 한자(漢字)에서의 법(法)은 고자(古字)인 법(灋)의 약자(略字)인데, 이 글자는 고대 중국의 묘족(苗族)이 신의 재판(神意裁判, gottesurteil)에서 해태〔庶〕를 중간에 내세우면 해태가 물과 같이 공평하게 죄지은 자에게로 가서 외뿔로 떠받는다고 하여 '해태' 와 '물' 〔水〕과 '가다' 〔去〕를 합친 것이라 한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해태의 모양을 본떠서 법관(法官)의 관(冠)을 만들었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중국 재판관의 법복에는 해태의 모양이 수놓아져 있다.
동양에서는 서양에서의 법 관념과 엄밀히 일치하는 법관념이 없었고, 예(禮) . 의(義) · 율(律) · 이(理) · 측(則) 등의 용어들이 법적 의미로 표현되었다. 《서경》(書經)에서 법은 '형벌' 을 의미하였고, 《예기》(禮記)에서는 '제도' 나 '상경' (常經)을, 《효경》(孝經)에서는 '예의'(禮儀)를, 《중용》(中庸)에서는 '모범' 또는 '본보기' 를 의미하였다. 또《사기》(史記)에서는 '준칙' 과 '방법' 을, 《한유》(韓愈)는 '도의' (道義)를, 《사기주》(史記註)는 '모형' (模型)을, 《역경》(易經)은 '본받음' 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불법(佛法), 법문(法門)이라고 할 때는 '가르침' 또는 '종교' 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법이라고 할 때는 모든 법적 규범을 망라한 법 일반(law in general)을 지칭한다. '법률' 이 형식적 의미의 법이라면 '법' 은 실질적 의미의 법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회 생활을 규율하는 규범에는 법 이외에도 도덕 · 종교 · 관습 등과 같은 다른 종류의 규범도 있으나, 이러한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법의 개념을 확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법은 그 존재 방식이 일정하지 않아 일의적(一義的)으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법학의 최초의 과제이자 동시에 최후의 과제이기도 하다.
많은 석학(碩學)들이 법을 정의(定義)하였는데, 가톨릭 교회의 윤리 신학에서는 "법은 공동선을 위하여 공동체를 다스리는 사람에 의하여 공포된 이성(理性)의 명령"(《신학 대전》 I-Ⅱ,Q. 90, A, 4)이라고 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개념 정의에 근거해서 법을 설명한다. 이 정의에서 '명령' 은 특정 목적을 위해 의무를 부과하거나 또 이 명령을 받는 주체의 법적인 지위를 변경하는 권위적 명령을 뜻한다. 또 '이성의 명령' 이란 법이 올바른 이성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도덕적이며 의로운 명령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공동선' (共同善)이란 법은 어느 개인의 선(善)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선익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공동체를 다스리는 사람'이란 입법권자, 즉 그 법에 종속되는 사람들과 지역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합법적 장상을 지칭하는데, 공포는 다스리는 자의 권위와 이름으로 관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법을 알림을 뜻한다. 이러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법 개념은 영구법, 자연법, 인정법, 신적 실정법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본성 질서에 근거하여 사회에 정의(正義)와 공동선을 실현하고자 정당한 권한을 갖는 자가 정당한 절차에 의하여 제정 · 공포 · 확인된 이성적 명령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학에서는 이러한 법을 영구법, 자연법, 인정법, 신법으로 분류한다.
II . 영구법
영구법(永久法, lex aeterna)은 모든 피조물의 행위와 운동을 소정의 목적으로 인도하는 신적 지혜(Divina sapien-tia)로서, 창조주인 하느님의 직접적인 계획이며 모든 법중에 으뜸가는 계시된 법(lex revelata)이다. 즉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하느님의 지혜로운 이성(ratio divinae sapientiae)으로서 영원하고도 불변하는 법(lex aeterna et perpetna)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예지에 존재하는 사물 지배의 이념이 법의 본질이 된다. 또 잠언 8장 2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느님의 이성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을 띠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유(類)의 법을 영구법이라고 한다. 영구법은 본래 하느님의 본질에 의하여 미리 알려진다. 이는 하느님의 존재와 함께 그 존재에 수반되는 당위적인 행위의 규범을 완전히 규정하고 질서를 세우려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정에 의해서 현실의 법으로 된다. 이 법의 공포는 하느님 입장에서 본다면 영원한 작용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법은 그것이 영구법을 알려 주는 것이거나 혹은 그것의 허용이나 책무성의 근거를 영구법에서 구할 수 있을 경우에만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게 된다.
영구법은 공포 방식에 따라서 세 가지로 구별된다. 첫째, '자연 법칙' (물리 · 화학 · 생물에 있어서의 자연 과학적 법칙)은 사물의 존재 사실과 함께 인식이나 자유의 개입 없이 주어진 필연성을 띤 제 법칙들이다. 둘째, '자연 도덕률' 은 인간에게 있어 이성적 본성과 함께 자유의 규범으로 주어진 도덕률로서 이성(理性)의 능력으로, 즉 이성이 인간과 세계의 존재에 관하여 통찰함으로써 인식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동의 규범으로 주어진 도덕률이다. 셋째, '신적 실정법' 은 하느님이 직접 인류에게 계시함으로써 공포된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적 계시법은 원초의 법, 구약의 율법, 신약의 법(그리스도의 법) 등으로 구별된다. 영구법은 신적 의지보다는 신적 이성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며, 신학자들은 영구법을 하느님의 섭리 자체와는 구별하고 있다.
Ⅲ . 자연법
일반적으로 자연(본성) 내지 이성에 근거하여 영구 불변적이며 실정법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법으로 여기나 그 이론은 분분하다. 자연법(自然法, ius naturale)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사상사에 나타난 하나의 순환 소수(循環 小數)와 같다. 오랫동안 은폐된 적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설명되거나 정의되기도 하였으며 비판을 받거나 경멸적인 공박을 당한 때도 있었지만, 자연법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으며, 그것을 대치시킬 만한 다른 어떤 방법도 없었다.
〔역사적 전개〕 자연법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상과 이론을 '자연법 사상' 또는 '자연법론' 이라고 하는데, 전통적 자연법론(傳統的自然法論)과 근세 자연법론(近世自然法論)으로 구별된다. '전통적 자연법론' 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함께 시작되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학파를 거쳐 중세 스콜라 학파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자연법은 이성적인 피조물에게 있어서의 영구법의 분유(分有)"라고 하여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였으며, 인간은 실천 이성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그 질서를 발견한다고 하였다. 이 이론 체계가 완성된 것이 형이상학적 · 존재론적 자연법론이다. 그러나 '근세 자연법론' 은 17세기 이래 그로시우스(H. Grotius), 흡스(T. Hob-bes), 스피노자(B. de Spinoza), 푸펜도르프(S. Pufendorf), 토마지시우스(C. Thomasitius), 라이프니츠(G.W. Leibnitz), 볼프(C. Wolff), 로크(J. Locke), 몽테스키외(Baron de Montesquieu), 루소(J.J. Rousseau) 등이 신(神)과의 관계를 끊고, 사변 이성(思辨理性)만으로 국가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다방면에 걸쳐 도출한 것으로서, 개인주의적 · 합리주의적 자연법론이다.
그러나 국가 이전의 인간의 자연 상태에서의 사회적 본성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자족(自足)하고 자명하고 자율적인 완전한 것이라고 믿었던 인간의 사변 이성의 구체적 판단들이 여러 가지 이고 각자 그 주장을 달리함으로써 자기 모순에 빠지자, 19세기 말부터는 법실증주의와 역사법학파의 논박을 받아 자연히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 후 법실증주의 또는 실증법학은 법을 실정법에 국한하고 형식 논리적으로만 파악하려 한 나머지, 실정법들의 입법 기술과 법해석학의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실정법의 미비에서 오는 보충 규범(형평법, 조리 등)의 문제, 실정법을 초월한 법질서 이념의 등장(신의 성실, 공서 약속, 권리 남용 금지 등), 묵살할 수 없는 법의 실질적인 정당성 내지 타당성의 문제, 독재 정치나 악법에 대한 저항 의식의 문제 등을 해명하지 못해 결국 실정법을 초월한 이념을 희구하게 됨으로써 자기 모순에 빠졌다. 그래서 1910년에 샤르몽(J. Charmont)이 《자연법의 르네상스》(Le renaissance du droit naturel)라는 저서를 펴낸 무렵을 전후하여 전통적 자연법론이 현실과 이상을 조화하는 자연법론으로서 신토마스주의(Ner-Thomism) 또는 신자연법론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가톨릭 교회는 윤리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형이상학적 · 존재론적 자연법론 즉 '전통적 자연법론' 을 구원(久 遠)의 철학으로 고수해 온 반면,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은 종교 개혁 이후 근세 자연법론자들이 자연법을 세속화시 킨 후 19세기에 이르러 그 기초를 허물어 버렸기 때문에, 자연법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태도와 프로테스탄트의 태도는 상반된다. 자연법 이론은 특히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에서 기본적 중요성을 지닌다. 우선, 그것은 보편적 성격을 가진 윤리 질서의 기초가 되며 그리스도인들이 전 인류와 함께 나누는 윤리적 지혜의 원천이 된다. 왜냐하면 자연법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인 인간성과 실존적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데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자연법은 정치와 법률의 독재적 권력 행사에 대항하는 아주 적합한 안전 장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권위에서 나오는 부당하고 편파적인 법률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최후의 법정이기 때문이다.
〔개 념) 자연법이라는 말은 인간이 하느님의 언어적 계시에서부터 독립하여 이성의 방법으로 무엇을 알 수 있다는 윤리적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자연' 이라는 단어는 초자연적 방법과 관계가 없는 비초자연적이며, 인정법이나 신법과 같이 입법자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닌 비실정적이며, 인간의 본성에 의한 본성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독일의 법학자 볼프(E. Wolf)는 《자연법론의 문제》(Das Problem der Naturrechtslehre)에서 '자연' (Natur)이란 말이 갖는 의미가 12가지이고, '법' (Recht)이란 말이 갖는 의미가 10가지여서, 그 의미들을 맞추면 120가지나 되는 자연법 개념이 성립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교적 도덕학에서 인간의 자연 도덕률(lex naturalis)은 인간의 신에 대한 의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 타인에 대한 의무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이 자연 도덕률은 신과 자기 자신 및 타인과의 관계에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는 것을 제1 원리로 하는 윤리 규범이고, 자연법은 자연 도덕률 중의 사회적 의무, 즉 대타인(對他人)의 의무 영역에서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라. 그리고 누구에게도 부정을 행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근본 규범으로 한다. 이와 같이 권리와 정의로서의 자연법의 정의 규범은 자연 도덕률 내에 포함되고 그 일부가 된다. 다만 차이는 자연 도덕률은 선(善)에 관계되고, 자연법은 권리와 정의에 관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선의 한 부분이며, 자연법은 자연 도덕률의 일부이다. 이 말에는 법과 도덕이 일체를 이룬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법은 단순히 정의에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정의와 관련하여 윤리에도 봉사한다(B.Hanang). 또한 권리에는 의무가 수반되며 의무가 없는 곳에는 권리가 성립될 수 없으며, 의무는 권리보다 범위가 넓다.
전통적 윤리 신학에서 자연 도덕률은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인간 행위의 법칙으로서 인간 존재의 자연적 궁극 목적에로 질서지어져 있으며, 인간은 이성의 자연적 조명에 의하여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 도덕률이 유출되고 인식되는 객관적 바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인간의 자연적(비초자연적) 궁극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은총으로 승화되지 않은 자연적 인간 본성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교 도덕률(그리스도의 법)은 신앙의 도움을 받아 보완된 이성을 그 인식 수단으로 하며, 초자연적 궁극 목적에로 질서지어져 있고 은총으로 승화된 인간 본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전통적 자연법 개념은 다양한 비판과 공격을 받았으며,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도 가톨릭의 자연법에 반대하였다. 그들이 반대하는 근본 이유 중의 하나는 가톨릭 교리에서 본성을 인간의 기본 조건으로 삼고, 다소 우연적으로 은총을 부가시켜 자연 생명에 비하여 보다 높은 가치의 은총 생명을 하급 상태로 격하시키며, 은총 지위를 상실한 타락한 본성도 근본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하는 가톨릭의 가설과 타락한 본성에서 추론되는 법을 아무런 제한도 없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으로 추정하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다(K. Barth, E. Brunner, J. Ellul, H.Thielicke) .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은 그리스도가 아담의 후손들에게 최초의 범죄 때부터 이지러졌던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었다고 설명하며, "이것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은총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고 인간이 불린 궁극적 소명도 사실은 하나뿐이며 신적인 것이므로,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22항, 참조 : 사목 29항 ; 비그리스도교 1항)고 가르친다. 앞서 말한 가톨릭의 자연법 개념에 대한 비판들을 염두에 두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해 발전한 비그리스도인과 그 궁극 목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고려해 볼 때, 자연법의 전통적 정의도 수정될 필요성이 있다.
새로운 정의에 의하면 "자연법은 인간 행위의 법칙으로서 궁극 목적에 질서지어진 인간 본성의 총체적 실재(實在)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그리스도교의 실증적 계시와는 독립된 이성의 수단에 의하여 인식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인간 본성' 의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보는 것으로, 인간의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모든 특성을 포함한 인간 존재의 총체적 실재를 뜻한다. 그 실재성은 전통적 자연법 이론과 구별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의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이루어진 본성의 변화도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활동하는 은총에 참여하는 것도 포함한다. '궁극 목적' 도 단순히 자연적인 목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구체적이고 최종적인 목적을 말하며 그것은 공의회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뿐이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며 신적인 것이다. 그리고 '인식' 의 주관적 수단은 그리스도교의 실증적 계시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는 순수한 이성이다. 그러나 '이성' 은 은총의 도움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성의 모든 인식 작용은 어디서나 은총과 성령에 의해서 도움을 받고 인도된다. 다만 비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완전히 은폐된 방법으로 그런 도움과 인도를 받게 된다.
〔특 성〕 첫째, '보편성' 을 들 수 있다. 자연 도덕률 내지 자연법은 그 기초가 인간의 참된 본성이므로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을 갖는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최후 목적을 성취하고 동일한 실존적 목적들을 추구하도록 부름받았는데, 그 방법은 각자의 소명에 따라 다양하고 세밀하게 나타날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그리고 자연법의 객관적 실재성은 육체적 또는 생물학적 자연 법칙과 비슷한 보편적인 것으로, 그 법칙들은 인간이 알지 못하더라도 실제로 존재하고 또 작용한다. 그러나 자연법에 대한 구체적 지식은 그처럼 보편적이지 못하며, 인간은 그 지식을 처음부터 충분하게 얻지 못한다. 스콜라 신학은 자연 도덕률 내지 자연법의 1차적 규범과 2차적 규범들을 구분하고, 1차적 규범은 이성을 가진 정상적 사람이라면 인간 본성에 의하여 누구나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2차적인 규범들은 덜 보편적이고, 더 실수하기 쉬운 자연법적 결론들이다. 가장 보편적 원칙이 되는 1차적 규범은 "알려진 선은 행해야 하고 악은 피해야 한다"이며, 가장 보편적 근본 원리가 되는 1차적 규범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라. 누구에게도 부정을 행하지 말라"이다. 자연 도덕률 내지 자연법의 2차적 원칙 내지 규범들은 근결론(近結論)과 원결론(遠結論)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근결론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의 범위가 넓고 쉽게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십계명의 계명들과 하느님의 영예를 위한 규정이라든지, 인권(人權) 중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존엄성의 원칙이나 종교 자유의 권리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원결론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며 그것들을 분별하는 데는 간혹 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어떤 원결론들에 대해서는 극복 불가능한 무지에 머무를 수 있는데, 노예 제도를 인정하거나 여성의 인권을 제한적으로 보는 경우가 단적인 예이다. 또는 실존적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일부다처제와 같이 완전히 악한 것은 아니지만 덜 완전한 행동 규칙을 채택하는 수도 있다. 어떤 원결론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단식 투쟁에 의한 자살의 문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둘째, 자연법은 '불변성' 과 '역동성' (力動性)을 지닌다. 자연 도덕률 또는 자연법에서의 불변성은 인간이 이성을 지니고 있는 한 그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선 · 악에 대한 기본적 규범들이 있고, 인간 본성이 존재하는 한 그 규범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 · 문화적 변천 속에 머물고 있는 인간 본성에는 불변하는 것이 존재한다. 예컨대, 현재는 종교 신앙의 자유, 만민 평등권, 전쟁 포로에 대한 인간적 대우 등을 기본적인 법으로 알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러한 법들을 모르고 있었다. 윤리 의식의 발달은 수많은 실수와 무지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자연법들은 언제나 객관적으로 불변하는 유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연법들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다른 모든 학문에서와 같이 불완전한 지식에서 완전한 지식으로 진보한다. 이러한 진보는 자연법 자체의 변천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의식의 변천을 뜻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 자신과 그 존재의 조건들은 변화한다. 인간과 그 생활 조건들이 변천하면 기본적이고 동일한 원천들도 다르게 적용된다. 이것이 바로 자연법의 역사성과 변천성인데, 변천은 인간 본성 자체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변화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내적 · 지적 · 정신적인 변화로서 어떤 사상과 이상이 새롭게 창조되고 계획되며, 다른 하나는 기술과 기계에 의한 물리적 변화로서 그것에 의하여 인간은 자기의 활동을 새롭게 수행해 간다. 이 두 가지 변화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형태의 변화들은 간혹 자연법의 요구를 새롭게 조정하도록 만든다. 예컨대 특수 교육 수준의 향상으로 인하여 국가의 입법이나 민주적 투표 방법에 대한 시민권이 증진되었고, 마취술과 방부술의 발달로 치료를 위한 수술의 의무가 더 커졌다. 과거의 금기적(禁忌的) 윤리학에서부터 세계 인권 선언이 선포되기까지의 진보는 자연법의 강한 역동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동성은 자연법을 유출시키는 사물의 질서에 불변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셋째, 자연법은 '면제 불가능성' 을 지닌다. 자연 도덕률 내지 자연법을 유출시키는 인간 본성과 궁극 목적은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간 이상의 상급 능력인 하느님에 의해서 마련된 것이므로, 자연법도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하여 존재하며 하느님의 의지와 동일하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러한 높은 위치의 법에 대해서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고유한 본성에 위배되지 않는 한, 하느님 자신은 특수한 경우에 자연법으로부터 면제시켜 줄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는 없다. 기적에 의해서 물리학적 자연 법칙이 정지되는 것처럼, 특별한 신적 개입에 의하여 자연 도덕률 내지 자연법의 정지도 가능한 것이다.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창세 22, 2), 족장들의 다처(多妻)를 벌하지 아니하였고 예언자인 호세아에게 "가서 매춘부를 취하고 그 자녀를 맡으라" 라는 명령(호세 1, 2),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떠나면서 이집트인의 금은기(金銀器)와 다른 물건을 탈취하는 행위를 허락한 일(출애 3, 21-22 ; 11, 2 ; 12, 35-36), 토비아의 물음에 대천사 라파엘이 "나는 당신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여기 일자리를 찾아왔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한 기록(토비 5, 5) 등은 바로 자연 도덕률 내지 자연법의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예외들은 물론 하느님의 분명한 실증적 계시를 필요로 한다.
한편, 자연 도덕률 내지 자연법의 예외는 '형평(衡平, epikeia)의 원리' 로 나타난다. 형평의 원리는 대(大)알베르토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 윤리학에 도입되었다. 그들의 저서에서 형평이란, 인정법(人定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특수한 난제에 처하였을 때 개인적 권위에 의하여 특정적 예외를 판단 내리는 수의 해석(隨意解釋)을 뜻한다. 간혹 인정법의 법률 조항의 불완전성은 입법자가 적절한 용어를 발견하지 못하였거나, 또는 특정 경우에 어떤 법을 적용할 것인지 입법자가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법의 대상자는 그 법에서 제외되며, 법을 무시해도 되는데,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연법의 더 큰 정의의 실천이 우선하는 까닭이다. 자연법에서 형평의 원리를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자연법의 객관적 질서' 와 인간의 언어에 의한 '자연법의 성문화' 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법의 객관적 질서는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사실로, 그것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으로서 면제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법을 성문화할 경우 인정법처럼 인간의 언어와 통찰력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불완전할 수 있다. 이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형평의 원리를 사용할 수도 있으나, 이를 사용하려면 모든 도덕적 당위의 궁극적 원천이신 하느님 앞에 올바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자연법의 기초〕 자연 도덕률 또는 자연법의 존재를 확증하는 궁극적 기초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자연법은 하느님의 영원한 섭리의 반영이다. 하느님은 고유한 행위를 통하여 하느님의 계획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목적과 능력을 지닌 만물을 창조할 것을 섭리로써 결정하셨다. 이렇게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과 섭리는 모든 피조물의 활동과 그 활동의 법칙을 완전히 총괄한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 법칙과 윤리 법칙, 도덕률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과 섭리에 그 기원을 두고 존재한다. 이 계획과 섭리는 하느님의 영광과 보편적 통치 그리고 인류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며, 만물과 특히 인간을 위한 행동과 활동의 법칙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그 법칙을 발견해야 하고 자유롭고 책임 있는 결단으로 그 법칙에 복종해야 한다. 이 법은 초자연적 계시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창조계의 본성 안에 부여된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자연 도덕률 또는 자연법이라 한다.
둘째로, 자연법은 존재의 질서에 기초한다. "행동은 존재에 따른다" (agere sequitur esse)는 원리는 궁극적 · 존재론적 원리들 중의 하나이다. 즉 어떤 행동은 그것의 원인이 되는 존재의 성질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으로, 사물
은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사물의 본성은 원인이고, 행동은 결과이다. 충분한 이유가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nihil sine causa sufficiente)라는 충족 이유율(充足理由律)에 의하면, 모든 결과는 그 원인에서 충분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모든 존재들의 행위는 그 존재에 의하여, 즉 사물의 고유한 본성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 와의 관계에 의하여 조건지어지고 결정된다. 행동은 존재에 따른다는 원리에 의하면, 인간의 윤리적 의무 또는 도덕적 당위는 인간 존재의 본성에서 유출되고 측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인간 본성은 자연적 초자연적 요소에 부여된 모든 것을 포함한 좀더 넓은 의미의 인간 본성이다. 결국, 행동의 질서는 존재의 질서에 부합해야 하며 인간 행위의 규범은 인간 자신의 본성과 그의 행위와 관련되는 다른 존재들의 본성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본성만이 독점적 기초가 되는 것은 아니고 존재의 궁극 목적이라는 최종적 기준이 있다.
Ⅳ. 인정법
자연 본성에서 도출되는 자연법은 불분명하고 일반적이며 유동적이고 골격적인 지침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의 구체적인 사회 생활을 안정되고 질서 있게 규율하려면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실정 법규의 제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인정법(人定法, lex humana)은 자연법 규범과 독립되거나 대립되지 않고, 자연법 규범에서 이끌어 내어 그 범위 내에서 인정된다는 점에서 자연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정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제정된다고 하였다. 그 하나는 자연에서 이끌어 낸 행위 규범을 역사적 상황에 적용하는 결론(con-clusio)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나 본성의 목적을 위하여 자연법의 범위 내에서 모호하고 부족한 내용에 필요한 것을 추가하는 결정(determinatio)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정립한 인정법은 이성과 의지의 산물이다. 즉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자연 본성에서 법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이성의 산물이고, 입법 권력이 분명하고 고정된 형태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의지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정법이 반드시 성문법(成文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정법은 불문법의 형태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정법은 입법 주체로 보아 국가법(lex civilis)과 교회법(lex ecclesiastica)으로 나눌 수 있다.
〔개념과 특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전적 정의에 의하면, 법은 공동체의 선(善)에 대한 이성의 통찰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이성의 명령이며, 단순한 권고가 아니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은 공동선만을 위하여 제정될 수 있으며 소수인의 사익(私益)을 위하여 제정될 수 없다. 법의 공포는 수범자(垂範者)들에게 의무를 지우기 위하여 미리 알리는 공식적 발표이다. 법은 합법적 권위를 부여받아 공동체를 돌보아야 할 책임을 진 자에 의해서만 제정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법은 공동선을 위한 의무적이고 보편적이며 고정된 성격을 지닌 이성적 명령으로서, 어떤 주권 사회(또는 완전한 사회)를 책임진 사람에 의하여 제정 공포된 것이다.
인정법의 본질적 특성은 첫째, 강제성을 지닌다. 그 이유는 무법적(無法的) 경향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을 복종 시키기 위하여 강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외적 행위에만 적용된다. 내적 의향은 윤리적 행위의 본질은 되지만 인정법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셋째, 인정법은 특정 집단만을 지배하는 법이며 보편적 자연법과는 구별된다. 넷째, 자연법보다 더욱 역사적으로 조건지어 진다. 사회와 그 문화는 변화되는 것이므로 인정법도 그와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인정법은 추정적 의무(推定的義務)를 부과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한 자연법에서와는 다른 면제(免除)와 관면(寬免)을 허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공동선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의 효용성과 정당성에 의심이 가더라도 그 법에 불복종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법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편으로 추정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 법이 확실히 부당하고 해로운 법으로 인정될 때 그것은 의무를 부과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에 권위는 죄수에 대한 특사(特赦)와 같이 법으로부터의 면제 또는 관면을 허락할수 있다. 자연법의 성문화가 불완전할 경우에 형평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가 있는 것처럼 인정법에 대해서도 그러한 권리가 인정된다.
〔필요성〕 인정법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 자연법이 인간 각자에게 요구하는 특유한 의무들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한 불확실한 점들을 인정법이 밝혀 주는데, 모든 사람에게 자연법의 세밀한 요구와 그 원결론(遠結論)들을 명확하게 알려 줄 수 있다. 둘째, 인정법은 자연 도덕률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실천하게 될 때 구체적인 행동 규범을 정해 주기 위하여 필요하다. 어떤 의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능한 방법들이 있지만 공공 질서를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만을 선택하여 모든 사람에게 부과하여야 한다. 셋째, 인정법은 공익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윤리 질서의 요구에 복종하도록 만드는데 필요하다. 인정법에 동반되는 제재법(制裁法)은 나약한 인간을 교육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며 인간의 범의(犯意)를 예방하는 방패가 된다.
〔목적과 조건〕 인정법의 일반적 목적은 공동선이다. 인정법은 우선,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니는 권리와 의무 를 규정하고 인간의 실존적 목적들을 성취해야 할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유를 보장해 주고, 두 번째로 사회의 내부적 평화와 발전과 문화 · 윤리 · 도덕 · 종교적 생활을 위한 최선의 환경 조건을 조성함으로써 공동선을 유지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현세적 목적이 하느님의 영광과 창조 계획을 위한 것이므로 인정법은 그 최후 목적의 성취를 저해해서는 아니되며 오히려 그것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인정법이 구속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법이 지녀야 할 여섯 가지 조건들이 있다. 전통적으로는 네 가지 조건이 있다. 즉 법의 목적은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어야 하고, 정당한 것이라야 하고, 실천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야 하며, 유용한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정법(正法)이 되려면 다음의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법은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것만을 명령할 수 있으며 악한 것은 결코 명령할 수 없다. 따라서 법은 선하거나 적어도 선과 악에 무관한 행위만을 명령할 수 있다. 둘째, 법은 입법자의 관할권의 한계를 지켜야 하고 월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위는 전례법을 규정하거나 주교를 임명할 권한이 없다. 셋째, 법은 배분적 정의의 요구를 존중해야 한다. 법은 주체들의 능력에 따라 부담과 혜택들을 균등하게 배분해야 하고, 비례적 형평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 넷째, 법은 공공 복지에 대한 권리를 실제적 필요성이 없이는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국가는 사유 재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사립 학교의 설립을 금지하거나 활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공동선을 해칠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무관하거나 선한 행위까지도 금지시킬 수 있다. 다섯째, 물리적 · 윤리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이라야 한다. 사람의 능력과 수단을 완전히 초월하는 행동을 명령할 때 그 법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여섯째, 법은 공동선을 위하여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라야 한다. 법은 공동체를 위하여 쓸모 없이 된다거나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이 된다면 그 효력을 상실한다. 이러한 조건을 채우지 못한 법들은 원칙적으로 의무를 지우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 수범자(垂範者)들은 부당한 법이라도 그것이 윤리적으로 악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한,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그 법에 복종할 수 있다. 어떤 때는 그러한 법이 공동선을 위하여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V . 신 법
신적 실정법(神的實定法)이라고도 하는 신법(神法, lex divina Positiva)은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하느님이 사람들을 초자연적 목적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계시로 내린 하느님의 실정법이다. 신법은 사람이 정한 법과는 달리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영원히 효력을 갖기 때문에 영구법의 일종이기도 하다. 신법에는 순수 실정법도 있고 자연법을 해명하는 실정법도 있다. 전자는 선 · 악의 구별이 없는 행위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자연법에 이미 있는 것을 더욱 명백하게 해명하여 금령(禁令)이나 명령을 강화한 것이다. 이 신법은 하느님이 낙원에서 원조(原祖)와 그 자손에게 수여한 원초법(原初法)을 제외하면 구약의 법(lex vetus)과 신약의 법(lex nova)으로 나누어진다.
〔구약의 법〕 이 법은 전례법(ceremonnialia, 祭儀律法),윤리법(moralia, 道德的律法), 판결법(judicialia, 司法的律法)을 포함한다. 이 중에서 예식법과 전례법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폐지되었고(에페 2, 14-15), 윤리법만 남 아 있다. 이 구약의 윤리법은 십계명과 그 밖의 주요 규범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자연 도덕률의 명백한 계시이다. 이것의 효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약에 있어서도 상실되지 않는다. 첫째, 그 규범들이 이성을 통하여 인식될 수 있고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자연 도덕률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약에 있어서도 계시로서의 성격을 상실하지 않는 구약의 계시에서 명백히 지시된 신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 규범들의 구속력(책무)과 해석 및 재가(裁可) 등은 신약에 의거하여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신약의 법〕 이 법은 그리스도의 법(lex Christi)이다. 신약의 법에도 윤리법, 전례법, 판결법이 있다. 윤리법에는 자연법의 의무 외에 그리스도가 더 첨가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계시로 인하여 확실히 믿어야 할 것이 더 많아졌고, 희망과 사랑의 계명도 더 밝혀졌다. 전례법은 미사와 성사(聖事)의 법이며, 판결법은 구체적 세목으로 주지 않고 교회에 전권(全權)을 위임하였다. "교회에 순종하라"는 것이 판결법의 요약이다. 신약의 법은 모든 이를 위하여 공포
되었으므로 모든 이는 천주교회에 입교할 의무가 있고, 입교한 후에는 세례를 전제로 한 고해성사, 영성체 등등의 계명을 지킬 의무도 있다. 신약의 법의 공표를 불가항력적으로 모르는 사람들만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된다.
구약의 법과의 관계 : 이는 율법에 대한 예수의 태도로 알 수 있다. 첫째, 예수는 전통을 고집하고 핑계삼아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무시하는 율법 학자들의 태도를 단호히 물리치고 위선적인 율법 정신을 공박한다(마르 7, 5-13). 그리고 그 자신이 율법의 유일하고 진정한 해석자라고 하였다. 둘째, 예수는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하였고(마태 5, 17-18), 자연 도덕률이 본래 요구하는 완전성을 회복하도록 가르쳤다(마태 19, 5-8). 셋째, 예수 자신이 유일한 중개자이기 때문에 율법이 야훼와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배척하였다. 넷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조건이기는 하나 율법에 대한 복종은 예수를 본받음으로써, 그리고 율법을 넘어서 은총의 특별한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만 율법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마르 10, 17 이하).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중개적인 관념을 배척한 것은 율법이 명하는 바를 배척한 것이 아니다. 다섯째, 율법을 어긴 자(탕자, 죄 많은 여자, 도적)도 구원받는 것은 율법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은총을 부여함으로써 가능하다. 구세주가 죄를 용서해 주는 권능은 율법이 죄를 규정하는 힘보다 우위이다. 그러나 죄를 용서해 줄 때는 그것에 앞서 율법을 지키라고 명한다(마태 9, 2 : 요한 5, 14 ; 8, 11). 그런데 그리스도가 명하는 율법은 구약의 율법보다 지키는 것이 쉽지 않으며, 그 요구는 보다 고차원이고 더욱 철저하다. 예컨대, "원수를 사랑하여라" , "너희는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명했기 때문이다(마태 5, 43 이하) 여섯째, 그리스도의 법에 대한 위반은 회개하여 다시 은총 지위에 있지 않으면 구원받을 자격은 상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법(無法, anomia)은 죄와 동일시한다(마태 24, 12).
신약의 새로운 법 : 이 법은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그리스도의 법' (갈라 6, 2)은 그리스도가 구세주로서 의 사랑(요한 13, 12 ; 15, 12)과 권위를 가지고 한 말씀으로 공포한 법이다. 즉 그리스도는 십계명을 여전히 타당한 금령으로 확인하고, 산상 설교로 가르치고(마태 5, 1-7, 29), 새 계명을 주고(요한 13, 31-35), 대사제로서 기 도하면서(요한 17, 26) 성령의 법의 내적 강제를 권위 있는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법은 단순히 외부로부터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서 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 사는 사람은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법 안에 산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자기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므로 그리스도가 곧 자기의 법이 된다.
둘째, "생각에 심어지고 마음에 새겨진 율법"(히브 8, 10)은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주입되는 법이다. 구약의 율법은 문자로 쓰여진 계약이지만, 신약은 인간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는 성령의 계약이다. 성령은 많은 계율이나 권고를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 준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 (로마 8, 2)은 생명을 주는 율법, 즉 생명의 율법이다. 이 율법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에서 부과되는 글자로 쓰여진 법이 아니고, 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 두신 생명력 있고 역동성 있는 '능력' 이라는 점이다. 이 새로운 율법은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풀어 놓을 수가 있다. 외부에서 오는 율법은 무엇이 당위인가를 지적해 주는 데 그치는 반면, 성령의 법은 그것을 수행하려는 의지와 수행할 능력까지 더해 준다. 은총과 사랑은 인간이 내면에서부터 죄에 사로잡힌 처지를 극복하고, 인간을 존재의 심부(深部)에서부터 하느님과 결속시킨다. 따라서 이 율법은 의화시키는 능력이다. 넷째,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야고 1, 25 : 2, 12)은 성령의 은혜의 율법이고 하느님의 가장 완전한 계시인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진 법이며, 그 내용을 더 완전한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새로운 율법의 외적인 지시도 구속이 아니고 내적인 자유에 있어서의 방벽이 된다. 인간에게 울타리와 장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으로 이끄는 부름이다. (→ 교회법 ;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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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法
〔라〕jus · 〔경〕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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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구세주가 율법을 어긴 자를 용서해 주는 권능은 율법이 죄를 규정하는 힘보다 우위이다. 그러나 죄를 용서 해 줄 때는 그것에 앞서 율법을 지키라고 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