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경기도 개성시 동본리(東本里) 소재. 1901년 약현 본당(藥峴本堂, 현 중림동 본당) 소속이던 송도(松都) 공소를 중심으로 하여 분리 설립되었으며, 초대 본당 신부로는 그 전해에 입국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루블레(H.P. Rouvelet, 黃惠中) 신부가 임명되 었다. 당시 성당이 자리잡은 곳은 1866년의 병인박해 (丙寅迫害) 때 순교한 교우의 집으로 일명 '은행나무집' 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루블레 신부는 본당에 부임한 뒤 우리말과 풍습을 익히며 전교활동에 노력하다가 1909년 충남 공주 본당(公州本堂)으로 전임되었고, 이어 르 장드르(L.A. Le Gendre, 崔昌根)신부가 제2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이 무렵 본당의 관할 지역은 개성, 장단(長湍), 파주(坡州)와 황해도 배천〔白川〕 등지였으며, 공소는 14개소, 총 신자수는 1,579명, 개성 읍내의 신자수는 188명이었다.
이후 1919년 충남 서산(瑞山) 본당에 있던 안학만(安學滿, 루가) 신부가 제3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약 5년 간 활동하다가 전임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24년 평북 의주(義州) 본당에 있던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가 제4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서 신부는 재임 중 본당에서 설립한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 4명을 초청하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1930년에 철수하였다. 그 다음해 서 신부가 전임된 후 제5대 주임으로 황해도 곡산(谷山) 본당에 있던 박우철 (朴遇哲,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여 2년 간 활동하였고, 1933년에는 황해도 해주(海州) 본당에 있던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가 제6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신 신부는 재임 중인 1936년에 새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 축성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때 개성 읍내의 신자수는 모두 634명을 헤아리고 있었다.
1942년 신 신부의 뒤를 이어 해주 본당으로부터 제7대 본당 신부로 부임한 방유룡(方有龍, 레오) 신부는, 1947년 본당을 터전으로 하여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를창설하였다. 이 수녀회는 이때부터 3년 간 그 기초를 닦다가 1950년 5월 방 신부와 함께 서울 가회동(嘉會洞) 본당으로 이전하였으며, 동시에 옹진(甕津) 본당에 있던 유봉구(柳鳳九,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본당의 제8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개월여 만에 6 · 25 동란이 발발함에 따라 유 신부는 월남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후 본당은 침묵의 본당으로 남게 되었다.
(→ 침묵의 교회) 〔車基眞〕
개성 본당
開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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