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긴회

― 會

〔라〕Congregationes Beguinarum, Beguini · 〔영〕Begu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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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긴회 회원들이 공동체 생활을 위해 세운 베기나주.

베긴회 회원들이 공동체 생활을 위해 세운 베기나주.


1170년경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공동 생활을 실천 하였던 과부들과 처녀들의 모임. 여성들의 모임인 '베긴회' 와는 달리 남성들의 모임이었던 '베가르회' (Bégards) 는,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발전을 이루지 못하다가 후에 이단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사라졌다. '베긴' 이라는 말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으나, '기도하다' 라는 의미의 고(古)플랑드르(Flanders)에 '베귄' (beghen)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벨기에 의 리에주(Liège)에 과부와 고아들을 위한 봉쇄 수도회를 설립했던 람베르 르 베그(Lambert le Bègue, +1180?)의 이 름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베긴회 회원들이 입었던 옷 색깔인 갈색을 의미하는 '베제' (bège)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베긴회는 도시화와 중세의 영성적 문제에 대한 평신도 들의 요청과 교회 개혁의 전제로서 '사도적 삶' (vita tolica)을 지향한 수도자적 삶의 번성과 다양화로 인해 일어난 하나의 움직임이었다. 또 십자군 운동의 결과로 남자보다 여자가 수적으로 많아진 상황에서 수도회에 가입할 수 없지만 경건한 삶을 살고자 했던 이들이 많아진 것도 한 원인이다. 이렇듯 자신들의 삶을 기도와 공동 노동 으로 하느님께 바치려고 하였던 여성들이 공동체를 설립 하였는데, 이것이 베긴회의 시작이다. '베긴' 이라는 말 은 당대의 문학 작품 안에서, 어떤 때는 교의적으로 탈선한 이단으로 매도되는 총칭으로, 어떤 때는 막연하게 평신도 운동과 동의어로서 사용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참회적인 모임이나 병원 수도회, '롬바르디의 겸손한 자들' (Humiliati of Lombardy)과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근대적 신심' (devotio moderna)과 시토 회처럼 봉쇄회를 지향한 것으로 여겨진다. 베긴회는 일 반적으로 독일 지방에서 두루 활동하였지만, 번성한 곳 은 베넬룩스에서였다. 〔생 활〕 베긴회는 수도원 제도와 평신도라는 중간적 위치를 채택하였기에 '비정규 단체' 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수도 서원으로 묶여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플랑드르나 브라방, 리에주 교구 등에서 활동하던 정통 베긴회들은 시토회 같은 수도원 제도나 수도 규칙, 수도회 관례 등을 갖추고 있었다. 독일의 경우 베긴회 회원들은 작은 수도원에서 생활하 였는데, 일반적으로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몇 개의 작은 집과 부속 성당으로 이루어진 '베기나주' (Beguinage)라 는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각 공동체는 자급 자족 의 형태를 취하였으며, 자체의 규칙과 규약에 따라 생활하였다. 또한 베긴회의 장상과 교회 권위에 대한 순명 의무를 중요시하였으며, 기도와 성서 공부를 하면서 수공업 · 병자 간호 · 소녀들의 종교 교육에 전념했다. 회원들 은 공동체에 머물고 있는 동안은 정결을 지켜야 하나, 결혼을 하기 위해서 또는 평범한 평신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에는 자유롭게 공동체를 떠날 수 있었다. 신입 회원을 받아들일 때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등에 관한 자격 조건을 명시한 베긴회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조건 없이 모두 받아들였다. 경우에 따라 지방의 귀족들이 베긴회의 생활을 보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독자적으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데 헌신했다. 베긴회 회원들은 청빈 서원을 하지 않았으며, 집과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준수도회적 성격이 강조되면서 '수도자 부인들' (mulieres religiosae), '거룩한 부인들' (mulieres sanctae) , '동정을 지키는 동정녀들' (virgines continentes) , '하느님 사랑을 받는 딸들' (dilectae Deo filiae)이라고 불렸다. 13세기 무렵에는 북유럽과 서유럽 통틀어 독자적인 베긴회만도 수천 개에 달하였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몇몇 도시에서는 교회의 도움을 받아 본당과 유사한 공동체가 만들어졌으며, 그중 몇 개는 대규모화되었다. 예를 들어 1234년에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는 벨기에 겐트(Gent)의 '대 베긴회' (Great Beguinage)는 여 러 담장들과 해자(垓字)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당 2개와 100채 이상의 가옥, 수녀회 18개, 진료소 1개, 공동 묘 지, 그리고 양조장 1개소가 있다. 당시 새로운 수도회의 설립을 억제하고 이미 승인된 회칙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던 제4차 라테란 공의회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1216년에 교황 호노리오 3세(1216~ 1227)로부터 비트리(Vitry)의 자크(Jacques)는 벨기에 · 프 랑스 · 독일 등지의 베긴회 설립에 대한 구두 승인을 얻어냈다. 또 십자군 설교가들은 베긴회를 통하여 알비파 (Albigeneses)의 위협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으며, 1233년 5월 20일 교황 그레고리오 4세(1227~1241)는 칙서 <글로리암 비르지날렘>(Gloiam Virginalem)을 통해 베긴회의 성숙을 촉구하면서 독일의 베긴회를 보호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단적 베긴회〕 13세기 말 많은 베긴회 회원들은 이 단 교리를 퍼뜨려 교회로부터 단죄를 받았는데, 이단적 경향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쾰른(Köln)과 스트라스 브루크(Strasbourg)의 베긴회였다. 비엔느 공의회(1311~ 1312)에서 교황 글레멘스 5세(1305~1314)는 독일의 베가 르회와 베긴회가 범한 위법 사실 8가지를 발표하였다. 인간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완전 무결한 상태에 도달 할 수 있으며, 완전을 방해하는 세례 · 단식 · 기도 · 성체 성사 등은 필요 없다고 그들이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공의회에서는 베긴회에 대한 엄격한 조치가 취 해졌으며, 1311년에 글레멘스 5세 교황은 이단 교리에 빠져 있는 베긴회들만을 단죄하는 칙서 <쿰 데 귀부스담 물리에리부스>(Quum de Quibusdam Mulieribus)를 발표하 였고, 1318년에 교황 요한 22세(1316~134)는 베긴회를 단죄하지만 유럽의 많은 지역에는 올바른 베긴회 회원들이 있다고 언급한 칙서 <라치오 렉타 논 파티투르>(Ratio Recta non Patitur)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발표 된 칙서 <사크로상타 로마나>(Sacrosancta Romana)는 브라 방의 베긴회 봉쇄 구역과 그들의 재산을 교황청 감독 아래 두기로 결정하였다. 14세기 벨기에에서 복원된 베긴회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회칙을 채택하고 교구 소속이 됨으로써 인준받은 수도회와 동일시되었다. 프랑스의 베긴회는 15세기 말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그나마 남은 베긴회도 프랑스 대혁명(1789) 기간 동안 많은 억압을 받았으며, 벨기에 · 네덜란드 · 독일 등지의 베긴회는 16세기의 종교 개혁 기간 동안 재산을 몰수 당하기도 하였다. 그 후 2세기 동안에는 엄격한 훈련을 도입한 주교들에 의해 몇몇 베긴회가 재건되었다. 현재에도 벨기에와 네덜란드에는 병자를 간호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베긴회 회원들이 있다. (→ 제3회) ※ 참고문헌  E.W. McDonnell 《NCE》 2, pp. 224~226/ J.N. Garvin, 《CE》 1, pp. 617~618/ R. Vaneigen, 《EU》 3, pp. 946~947/ A. Mens, 《LThK》2, pp. 115~116.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