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난시오, 카메리노의 Venantius of Camerino(?~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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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성인. 순교자. 축일은 5월 18일. 생애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져 있는 것은 없다. 다만, 프레네스테의 아가피토 (Agapitus von Praeneste)가 쓴 《수난기》의 주인공으로 알려 져 있으며(BHL, 8523), 이 책을 통해 그의 출생과 수난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수난기》에 따르면, 베난시오 는 카메리노에서 15세의 어린 나이에 왕의 명령으로 참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아드리아해(Adriatic Sea) 달마시아(Dalmatia)의 살로나(Salona) 출신인 같은 이름의 한 순교자와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살로나의 초대 주교였다. 매우 젊은 주교였던 그가 신앙 때문에 박해자에게 끌려갔을 때, 그는 불과 연기에 그을리는 형벌을 비롯하여 이가 모두 빠지고 턱이 부서지는 등 갖가지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끝내는 참수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죽자마자 그를 재판했던 두 명의 재판관이 급사하였고, 지진이 일어나 사람들은 모두 베난시오를 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다른 순교자들의 유해와 함께 교황 요한 4세(640~643)에 의해 로마로 옮겨져 라테란 대성전 근처의 한 경당에 모셔졌다(Duchesne LPl, 330)고 하며, 베난시오에 대한 공경 예식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어 카메리노로 전해졌다고 한다. 카메리노에서 베난시오는 그 지역의 주보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는데, 은판으로 장식된 성해함(聖骸函)과 그곳에만 있는 그의 순교 모습을 담은 그림 등은 카메리노에서 그에 대한 공경 행위가 일찍부터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준다. 14세기경의 한 시 (詩)에는 베난시오의 유해가 약탈되었고, 그 후 교황 글레멘스 4세(1265~1268)의 중재로 카메리노로 반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참고문헌 A. Amore, 《LThK》 10, p. 656/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 출판사, p. 335.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