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냉

〔영〕Republic of Be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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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국가. 공식 명칭은 '베냉 공화 국' (République du Bénin). 1975년까지 국가 이름이 다호메(Dahomey)였다가 그 이후부터 1990년까지는 '베냉 인민 공화국' (People's Republic of Benin)이었다. 정치 형태는 대통령제를 택한 다당제, 단원제이다. 동쪽은 나이지리아, 서쪽은 토고, 북서쪽은 부르키나파소, 북동쪽은 니제르와 접경하고 있다. 면적은 112,680k㎡, 인구는 557 만 4,000명(1996)이고, 수도는 포르토노보(Porto Novo) 이다. 전체 인구의 5분의 3 이상을 차지하는 폰족(Fons) 계통의 부족이 대부분 남부 지역에 거주하고, 그 밖에 요 루바족(Yoroubas), 솜바족(Sombas), 바리바족(Baribas) , 플라니족(Peuls) 등이 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지만 현재 폰어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 가 아프리카 토착 신앙,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이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인데, 그리스도교 신자 중 대다수가 가톨릭이다. 17세기 이전의 부족들의 역사는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1625년에 남부의 다호메족(또는 폰족)이 아보메 (Abomey) 왕국을 세웠는데, 이 왕국 최초의 강력한 왕이었던 웨그바자(1645~1685)가 이웃 나라의 왕인 당(Dan) 을 공격하여 정복한 후, 다호메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아들 아가자(1708~1732) 시대에는 17세기에 인도 회사가 세운 프랑스 요새들이 있던 알라다와 우이다 (Ouidah)를 정복하였고, 1818~1858년에는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노예를 얻기 위하여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과 수 차례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1857년 그랑포포에 진주한 프랑스는, 이듬해 코토누(Cotonou)를 이양하라고 다호메의 왕에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다호메의 왕은 이를 거부하고 1892년부터 1894년까지 프랑스 와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1894년 1월 항복하고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그 후 1904년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연방에 통합되었다. 1959년에는 다시 프랑스 공 동체의 한 자치국이 되었다가 1960년에 독립을 선포하 였으며, 이후 5차례의 군사 정권 수립 및 2차례의 헌정 변화를 포함하여 모두 11번의 정권 교체를 거친 끝에, 1975년에 베냉 인민 공화국으로 국가 이름을 바꾸었다. 1974~1989년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던 베냉은, 동유럽의 민주화 추세에 영향을 받아 1990년에 마르크스-레 닌주의를 포기하고 국가 이름을 다시 베냉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 1996년에 들어서는 18인 내각을 출범시켜 국민 화합 정부를 구성하였지만, 경제는 여전히 극도로 침체된 상태이고, 회복 가능성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교회의 역사 : 1680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우이다에 경당을 설립하긴 하였지만 16~18세기 동안의 선교 노력은 산발적이었고, 성과 또한 거의 없었다. 1830년경 다 호메에 있는 가톨릭 신자는 약 2,000명 정도였는데, 모두 포르투갈인들과 브라질로부터 송환되어 온 노예들이었다. 이들은 해안가에 머무르면서 토메(SãoTomé) 주교의 관할을 받았다. 1860년 기니(Guinea) 대목구의 일부가 되어 아프리카 선교회(S.M.A.)에 위탁되었고, 1861 년에 2명의 사제가 우이다에 도착하여 실질적인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이들의 활동은 외국인들을 위한 활동으로 제한을 받았다. 1883년에 설립된 다호메 지목구가 1892년까지 토고 지역을 관할하였으며, 프랑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1894년에 선교의 자유가 승인되었다. 다호메 지목구는 1901년에 대목구로 승격되어 그 관할권이 북쪽으로 확장됨으로써 니제르 지역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1912년 토착 여자 수도회인 '코토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작은 시녀회' (Petites Servantes des Pauvres de Cotonou)가 창설되었고, 이듬해에는 우이다에 신학교를 개교하였으며, 1942년에는 북부 다호메를 포괄하는 지목구가 니제르의 니아메(Niamey)에 설립되었다. 1948년 에는 다시 북부 다호메가 분리되어 파라쿠(Parakou) 지목구가 되었고, 다호메 대목구는 우이다 대목구가 되었으며, 1954년에는 포르토노보 남동부에 대목구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교계 제도가 설정되던 1955년에 우이다 대목구는 코토누 대교구가 되었다. 1963년 아보메 교구에 이어 이듬해에는 포르토노보 교구, 파라쿠 교구, 나티 틴구(Natitingou) 교구가 설정되었다. 1995년 현재 인구의 21%인 1,096,000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대교구 1, 교구 8, 본당 138개에, 추기경 1, 대주교 2, 주교 8, 사제 313(교구 소속 201, 수도회 소속 112), 신학생 192, 수사 32, 수녀 537명이 있다. (→ 아프리카) ※ 참고문헌  J. Bouchau, Dahomey, 《NCE》4, pp. 612~613/ 《EU》 3, pp. 1010, 1014/ 《EU》 Les Chiffres du Monde, p. 124/ 1996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335/ Petit Robert Dictionn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 2, Paris, 1988, p. 207/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