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Benedictus(48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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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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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성인. 베네딕도 수도회 창설자. 이탈리아 몬테 카시노 (Monte Cassino) 수도원 설립자.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 <베네딕도 규칙서>의 저자. 축일은 7월 11일. 베네딕도의 생애에 대한 사료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 (590~604)이 593~594년경에 저술한 《이탈리아 교부들 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Dialogi de Vita et Miraculis Patrum Italicorum) 제2권과 다른 두 부분(3권 16 ; 4권 8-9) 에 불과하다. 베네딕도는 규칙서를 저술하기는 하였지만, 여기에 자신의 생애나 모습에 관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반면에 모두 4권으로 되어 있는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제2권에는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의 생애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이 책에서 베네딕도의 출생부터 중요한 사건들과 계기, 그리고 죽음까지 전생애를 묘사하였는데, 그는 성서나 그 당시의 성인 전기에 나오는 예형들에서 영감을 받아 이 전기를 쓴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베네딕도의 생애에 대한 역사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이 책을 저술하던 594년경 에는 베네딕도의 제자들이 아직 살아 있었고, 교황은 그들을 통해 베네딕도에 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또 그의 규칙서를 직접 읽고 이를 토대로 하여 베네 딕도의 전기를 교훈적인 형태로 재구성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생 애〕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ia) 지방의 누르시아(Nursia)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후 로마에 공부하러 간 베네딕도는, 도덕적으로 타락 한 당시의 로마에 회의를 느끼고 보다 뜻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엔피데(Enfide)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기숙하였다. 그러나 망가진 채를 원상 복구한 기적 사건으로 인해 이곳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이 기적의 소문이 널리 퍼져 나가자 베네딕도는 자신을 감추기 위 해 남몰래 길을 떠나, 이때부터 본격적인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베네딕도는 로마 동쪽의 수비아코(Subiaco)에 있는 한 동굴- '사크로 스페코 (Sacro Speco, 거룩한 동굴)라고 부르는 이 동굴은 가파른 절벽의 중앙에 있어 외부 사람이 접근하기가 지극히 어려웠다─에서 3년 동안 은수 생활을 하였는데, 그는 동굴 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로마노 (Romanus)라는 수도자로부터 수도복을 받아 입었었다. 로마노와의 유일한 접촉도 줄에 바구니를 달아 빵을 전 해 주는 간접적인 접촉이었고, 부활 축일의 날짜도 기억 하지 못할 만큼 그는 기도에 몰입하는 수행 생활을 하였다. 이때 그의 성덕을 시기한 악마는 그에게 여인의 모습 을 떠오르게 하여 육적인 정욕을 일으켰으나 베네딕도는 가시밭에 맨몸으로 뒹굴어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정욕에 서 해방되었다. 욕정을 제어하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른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 나가자, 베네딕도 는 비코바로(Vicovao)에 있는 한 수도원의 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원장으로서 그는 그곳 수도자들의 나태한 생활을 바로잡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려 하였지만, 그 들은 오히려 원장의 엄격한 지도에 불만을 품고 자기들 의 나태한 생활을 고집하면서 원장을 독살하고자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베네딕도가 독이 든 포도주 잔에 강복하자 잔이 깨어져 그들의 독살 음모는 드러났다. 자신을 독 살하려던 수도자들에게 조용히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난 베네딕도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분노에서 초탈하고 높은 인내의 경지에 이른 그의 성덕 을 부각시키고 있다. 베네딕도가 수비아코로 다시 자리를 옮겨 홀로 성덕에 더욱 정진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성덕을 흠모하여 모여들었다. 그는 이들을 지도하면서 12명 단위로 된 12개의 소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이 수도원들은 서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각기 1명의 원장에 의해 지도되었다. 그리고 베네딕도 자신은 중심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으면서 다른 11개의 수도원을 간접적으로 지도하였다. 그의 성덕과 명성은 날로 널리 퍼져 나갔지만, 베네딕도는 이로 인해 또 한 번의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 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베네딕도에게 쏠리는 것을 시기한 인근 성당의 본당 신부가 그를 죽이려고 간계를 꾸몄다. 그는 독이 든 빵을 베네딕도에게 선물하였는데, 성인이 종종 먹이를 주던 까마귀가 그 빵을 물어 가버려 독살 음모는 무위로 끝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도 공동 체를 파괴할 목적으로 예쁜 처녀 일곱 명을 수도원 담 안에 들여보내 춤추게 함으로써 젊은 수도자를 유혹하였다. 베네딕도는 이 본당 신부의 방해 공작이 자신에 대한 시기 때문임을 깨닫고 다른 수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몇 수도자만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도중에 그 본당 신부 가 천벌을 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 마오로가 기뻐하자 베네딕도는 그에게 오히려 보속을 주었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이러한 베네딕도의 모습을, 원수의 죽음을 슬퍼한 다윗 왕에 비유하면서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의 성덕을 높이 칭송하였다. 베네딕도가 정착한 곳은 몬테 카시노였는데, 이곳은 카시노(Casino) 도시에 인접한 해발 519m의 산(Monte) 정상이었다.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당대에는 물 론 후대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주요 도로변의 도시와 인접한 곳, 그렇지만 외부 세계와 격리될 수 있는 높은 산꼭대기, 이교 신전이 있었기에 이교의 상징이었던 곳, 수비아코와는 달리 단일 수도원만 가능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529년경으로 추정되며, 죽을 때까지 그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베네딕 도는 먼저 이교 신전들의 폐허 자리를 변형하여 커다란 규모의 수도원을 건축하였고, 아폴로의 제단 자리에는 투르의 성 마르티노(St. Martinus)에게 봉헌한 성당을 세 웠으며, 산 정상에 있던 제단은 세례자 요한을 주보로 하 는 제2의 경당으로 봉헌하였다. 그는 여러 가지 기적과 모범을 통해 동료 수도자들을 지도하고, 수도 규칙서를 저술하였으며, 아직 이교 예배에 매여 있던 인근 주민들을 복음화하였다. 또 테라치나(Terracina)에도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그에게 속해 있지 않던 다른 수도 자들도 그의 영적 가르침을 듣기 위해 찾아오곤 하였다. 베네딕도는 세상과 격리된 채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 안에서 생활하였지만, 당시의 주요 인물들(아퀴노의 주교 콘스탄죠, 카노사의 주교 사비노, 카푸아의 주교 제르마노, 고트 족의 아틸라 왕)의 방문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고 있었으며, 장래 일도 예견하였다. 한편 그는 신분을 차별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특별히 야만인들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이들, 기근으로 인해 굶 주리는 이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도와 주었다. 그의 생애 말기에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는 하느님과의 일치 그리고 관상의 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 그는 누이동생 스콜라스티카(Solastica)와 마지막으로 만난 지 3 일 후에, 동생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비둘기 모양으로 승 천하는 환시를 보고 동생의 죽음을 알았다. 그리고 카푸아의 주교 제르마노의 죽음을 예견한 베네딕도는 태양처 럼 강한 빛을 통해서 온 세상을 한눈에 꿰뚫어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종말론적인 환시는 성덕의 높은 경지에 이른 베네딕도의 완성, 즉 영광스러운 죽음을 예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고 한 그는 사망하기 6일 전에 자기 무덤의 문을 열어 놓게 하였으며, 사망 당일에는 성당에서 성체를 영한 다음, 두 수도자의 팔에 의지해 간신히 몸을 가누고는 양팔을 높이 쳐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망 날짜는 547년경 3월 21일로 알려져 오고 있다. 〔축일과 공경〕 성 베네딕도는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 지' , '유럽 전체의 수호 성인' , '기술자, 건축가, 그리고 개간자들의 수호 성인' 등으로 불린다. 그에게 붙여진 여러 가지 명칭은 그의 생애에 근거하지만, 특히 그가 쓴 수도 규칙서를 지키며 그를 사부로 모시는 후대의 제자들이 역사 안에 이루어 놓은 업적에도 근거한다. 교회는 그의 사망일을 기념하여 3월 21일을 그의 선종 축일로 지내왔으나 교회 전례력으로 보아 항상 사순 시기이기 때문에, 8세기부터는 북유럽 프랑코니아(Franconia) 제국에서 플뢰리(Fleury) 수도원으로 베네딕도의 유해를 옮겨 모신 7월 11일에도 축일을 지내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파괴되어 재건축한 새 성당을 봉헌하던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이곳 몬테 카시노 수도 원에서 베네딕도 성인을 '유럽 전체의 수호 성인' (Patronus totius Europae)으로 선포하였고 7월 11일을 축일로 재 확인하였다. 그래서 베네딕도회 시토회 계통에서는 베네딕도의 선종 축일과 함께 7월 11일도 대축일로 경축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들 사이에서는 베네딕도의 성패(聖 牌, medal)가 표시하고 있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십자 가 (CSPB, Crux Sancti Patris Benedicti)의 표시가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귀를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어 왔다. (⇦ 분도 ; → 몬테 카시노 ; <베네딕도 규칙서> ; 베네딕도회 ; 수비아코) ※ 참고문헌 T.F. Lindsay, St. Benedict : His Life and Work, London, 1949/ I. Schuster, Storia di san Benedetto e dei suoi tempi, Viboldone, 1953/ P. Carosi, Il primo monastero benedettino, St. Anselm 39, 1956/ 손태섭 역,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베네딕도 성인전》, 분도출판사, 1980/ 왈 터 닉, 김윤주 역, 《누르시아의 베네딕도》, 분도출판사, 1980/ A. de Vogue, <누르시아의 베네딕도>, 《코이노니아》 14집(1989. 가을), pp. 7~31/ 이형우,《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 교부 문헌 총서 5, 분도출판사, 1991/ Matias Auge, Storia della vita religiosa, cpitolo nono, Queriniana, 1988(김구인 역, <베네딕도>, 《영성 생활》 11호, 1996, pp. 103~117)/ J. Mallet, 《NCE》2, pp. 271~273/ A. Mancone, Benedetto, Dizionario degli Istituti di Perfezione 1, pp. 1351~1356/ V. Dammertz · M. Standaert, Patronus totius Europae, La Vita di San Benedetto, Il Fondatore, Jaca Book, 1980, pp. 8~26. 〔金求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