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에서 사도 베드로의 이름으로 쓰여진 서간.
〔베드로의 첫째 편지〕 구조 : 베드로의 첫째 편지는 1장 1-2절의 인사말과 5장 12-14절의 끝맺는 인사말 이외에는 서간으로서의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필자는 신자들이 겪는 역경을 거론하면서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1-2 : 인사
1, 3-12 : 감사 기도
1, 13-2, 10 : 거룩하게 살라는 권고의 말씀
2, 11-3, 12 :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태도
3, 13-4, 19 : 고난을 감수하라
5, 1-11 :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직분을 다하라
5, 12-14 : 끝맺는 인사
집필 동기 : 필자는 5장 12절에서 이 글을 쓴 동기를 "(여러분을) 격려하고,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참된 은총임을 증언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필자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희망과 신념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참된 은총을 증언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따라서 이 서간은 격려와 권고의 성격을 지닌다.
이 공동체의 신자들은 신앙 때문에 사회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필자는 이 어려움을 슬픔(1, 6 ; 2, 19), 시련(1, 6 ; 4, 12), 고난(2, 19. 20 ; 3, 14. 17 ; 4, 1. 19 ; 5, 10), 헐뜯음(4, 14)으로 표현하였다. 물론 신자들은 신앙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될 경우 차별과 선입견의 제물이 되어 적지 않은 고난을 당하였고(4, 15-16), 때로는 중상과 모략 때문에 재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발이 근거 없는 무고로 밝혀져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회의 적대적인 분위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서간에서 언급되고 있는 신자들의 역경은 그들이 사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이다. 그리고 이 역경은 신자들을 괴롭히는 이방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2, 12. 15 : 3, 14. 16 : 4, 3-4).
필자는 박해와 고난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보상을 받고(1, 6-9. 13 ; 4, 7 ; 5, 6. 10), 고난 속에서 꾸준히 선을 행하면 믿음과 희망의 보증이 된다(1, 21 : 2, 15. 20 ; 3, 6. 17 : 4, 19)고 격 려한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필자는 고난을 당하다가 영광을 받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주 상기시킨다(1, 11. 18-21 : 2, 4-6. 21-25 : 3, 18 : 4, 1. 13). 필자는 계속해서 고난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참된 은총을 증언한다(1, 10. 13. 22 2, 19 : 3, 7 : 4, 7-11 ; 5, 10. 14).
필자 : 필자는 1장 1절의 인사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로 자신을 밝힌다. 또 5장 1절에서는 자신을 "장로"이며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으로서 장차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자"로 소개한다. 이를 근거로 해서 사도 베드로가 이 서간의 필자라는 의견이 대두되었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주장한 사람은 이레네오(Irenaeus, 130~200경)였다(《반이론》 4, 9, 2 : 4, 16, 5).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베드로의 저작설을 부인하였다. 그 이
유는 첫 번째로 이 서간은 역사적인 예수의 삶, 가르침, 그리고 죽음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로 그리스도의 '고난' 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필자가 사도 베드로라면, 예수와의 개인적 관계를 내세워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 소개하였을터인데 이 서간은 그렇지가 않다. 두 번째로 이 서간의 낱말과 문체는 유창하고 세련된 그리스어이다.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인 베드로가 세련된 그리스어를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이 서간에는 바오로 신학과 관련된 내용이 자주 나온다. 특히 바오로 서간 이외에는 오직 이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서만 ‘그리스도 안에서’ (ἐν Χριστῷ)라는 표현이 나오고(3, 16; 5, 10. 14), ‘은사’ (Χάρισμα)라는 말도 바오로가 사용한 낱말이다(4, 10). 네 번째로 당시 공동체의 상황이 베드로의 저작설을 부인하게 만든다. 초대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어느 한 지방을 넘어서 전체 교회 공동체에 대대적으로 가해진 박해는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시대에 이루어졌다. 또 이 서간의 집필 장소가 바빌론(Babylon)으로 나오는데(5, 13), 바빌론은 70년 이후에 로마를 지칭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네로 황제 박해(64~68) 때 순교한 베드로가이 편지를 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섯째로 구약을 인용할 때 언제나 70인역 성서를 사용한 점이다. 팔레스티나 출신 베드로가 당시에 그리스어 구약성서를 읽었는지 의문시된다.
실바노(Sivanus)를 필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5장 12절에서 필자는 실바노를 시켜 이 서간을 썼다고 하는데, 실바노는 바오로의 친구로서 사도 행전과 바오로 서간에 여러 번 등장한다(사도 15, 22 : 16, 19 ; 17, 4 ; 18, 5 ; 1데살 1, 1 : 2고린 1, 19 ; 2데살 1, 1). 실바노는 디아스포라 출신으로 그리스어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에 속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여러 교회에 이미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 왜 자기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도 풀기 어렵지만, 특히 실바노가 바오로의 협조자인데도 바오로가 세운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바오로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베드로가 이 서간의 필자라고 하는 것은 편의상일 뿐이고, 사실은 누가 이 서간을 집필하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필자는 로마 교회의 신자로서 바오로 계열의 전승뿐만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도 잘 알고 있었으며, 고난에 처한 교회들을 격려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이 서간을 집필하였다고 추측할 뿐이다. 또한, 필자는 이 서간의 권위를 높이고 더 큰 효과를 얻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빌려 썼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서간은 베드로의 이름을 빌린 가탁(假託) 서간이라 할 수 있다.
독자 : 이 서간은 "본도와 갈라디아와 가빠도기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 사는 나그네들에게" 보낸 편지이다(1, 1).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는 본래 이방인들 가운데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뜻 하지만 이를 근거로 이 서간의 독자들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 단정할수는 없다. 여기서 '디아스포라' 는 단지 세상에 흩어져서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고향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나그네로서 널리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1, 17 ; 2, 11). 그러므로 이 서간의 독자들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다(1, 14. 18 ; 2, 9. 10. 25 : 3, 6 : 4, 3. 4).
사료 : 베드로의 첫째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약성서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한 점들이 있다. 필자는 공관 복음서의 기초를 이룬 예수의 말씀, 용어, 사상 등을 알고있지만, 예수의 말씀들을 직접 인용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주로 구두 전승을 인용한 것 같다(1베드 1, 10. 11과 마태 11, 13 및 13, 17 : 1베드 1, 17과 마태 6, 9 ; 1베드 2, 7. 12과 마태 5, 16 및 21, 42 등). 또한 이 서간은 술어와 신학 사상에 있어서 바오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로마서의 내용과 비슷한 부분들이 있다(1베드 2, 24과 로마 3, 24. 25 ; 1베드 3, 18과 로마 6, 10 ; 1베드 4, 13과 로마 8, 17 : 1베드 1, 9과 로마 6, 23 ; 1베드 5, 1과 로마 8, 17 등). 그리고 이 서간과 에페소서와의 관계는 일곱 군데에 엿보이는데, 그중 네 군데는 훈계에 관한 표현이다(1베드 1, 3과 에페 1, 3 ; 1베드 2, 4-6과 에페 2, 20-22 : 1베드 3, 21. 22과 에페 1, 20. 22 ; 1베드 1, 14-18 및 4, 2-3과 에페 4, 17 및 5, 8 등). 이런 유사점들은 문헌상의 의존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같은 전승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사목 서간과도 관련성이있다(1베드 1, 3-5과 디도 3, 4-7 : 1베드 2, 1과 디도 3, 3 : 1베드 2, 9과 디도 2, 4 ; 1베드 3, 1-6과 1디모 2, 9-11). 이 서간과 히브리서의 유사점은 특히 특수한 표현들에서 엿보인다. 양쪽 모두 신자들을 “나그네”(1베드 1, 1 및 2, 11과 히브 11, 13)라 부르고, 그 밖에 "살아 있는 말씀"(1베드 1, 23과 히브 4, 12), 예수 그리스도가 "단 한번 고난을 당하였다"(1베드 3, 18과 히브 9, 28), "축복을 상속으로 얻는다"(1베드 3, 9과 히브 12, 17)라는 표현 등이다. 또한 여러 부분에서 야고보서와 비슷한 점도 보인다(1베드 1, 1과 야고 1, 1 : 1베드 1, 6. 7과 야고 1, 2. 3 : 1베드 1, 23-2, 2과 야고 1, 18-22 : 1베드 1, 5. 6과 야고 4, 6. 10). 이와 같이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서는 다른 문헌들과 유사한 표현이나 사상이 많이 엿보인다. 이런 유사점들은 문헌 상의 의존 관계보다는 양쪽의 필자가 서로 비슷한 상황을 비슷하게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서간의 필자는 예수 전승, 바오로 계열의 전승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전승들을 종합하여 기록한 것이고 이러한 여러 전승들은 로마에서 종합되었을 것이다.
집필 장소 및 연대 : 5장 13절에 보면 집필 장소가 '바빌론' 이라고 하였다. 당시 바빌론이란 도시는 두 곳이었는데, 하나는 이집트의 나일 강 어귀 삼각주에 위치한 도시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다른 하나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유명한 도시 바빌론이었다. 하지만 베드로가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활동하였다는 전승은 없다. 그래서 일찍부터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오는 《교회사》에서 이 서간의 '바빌론' 을 로마시의 별칭으로 보았고( Ⅱ, 15, 2),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70년 이후의 유대교 문헌에서도 로마시를 가리켜바빌론이라고 부른 사례가 있고(제4 에스드라 3, 1. 28. 31 : 아람어 시빌리아의 신탁 5, 158. 159), 이 별칭은 요한 묵시록 14장 8절과 17장 5절, 그리고 18장 2절에도 나타난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함락된 후 유대인들은 로마를 모든 악의 원천으로 보고 바빌론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서간은 로마에서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집필 연대는 로마를 가리키는 '바빌론' 이라는 명칭이 70년 이후에 사용되었고, 90년 이후에 야기된 주님의 재림 지연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이 서간은 70~90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집필되었다고 추정되는데 흔히 90년으로 여긴다.
〔베드로의 둘째 편지〕 구조 : 베드로의 둘째 편지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 1-2 : 인사
1, 3-21 : 훈계
2, 1-22 : 이단자들의 악행과 심판
3, 1-13 : 그리스도 내림 희망의 확증
3, 14-18 : 마지막 권고와 찬양
집필 동기 : 필자는 3장 1-4절에서 집필 동기를 밝혔다. 즉 그리스도의 내림설을 비웃으며 "조롱을 일삼는자들"이 나타나 신자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예언자들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내림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고 주님의 계명을 다시 기억할 것을 일깨우고자 이 서간을 썼다고 하였다. 당시 교회에 침입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힌 이단자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자들로서(2, 1-2), 주님의 내림을 부정하고 조롱을 일삼으며 욕정대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3, 3-4). 필자는 이 이단자들의 조롱을 반박하기 위하여 이 세상이 이미 한 번 심판을 받았음을 상기시키고(3, 5-7), 하느님은 참을성 있는 분이시기에 인간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주님의 내림을 미루고 계시는 것이라고 하였다(3, 8-9). 그리고 주님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니 신자들은 그날에 대비하여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권고한다(3, 10-13).
필자 : 이 서간의 필자는 분명하게 자신을 사도 베드로라고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므온 베드로가 우리 하느님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과 똑같은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에게 (인사합니다)”(1, 1). 또한 필자는 자신이 예수의 변모를 목격하였고(1, 16-18), 자신이 순교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고 언급하였다(1, 14). 그리고 3장 1절에서는 이 서간이 '두 번째 편지' 라고 하면서, 베드로의 첫째 편지도 자신의 작품임을 밝혔다. 아울러 3장 15-16절에서 "사랑하는 형제 바오로"라고 함으로써 자신이 바오로와 같은 사도적 지위를 갖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이와 같은 언급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서간이 베드로에 의해 쓰여졌다는 설을 부인한다. 그 이유는 우선 베드로의 첫째 편지와 둘째 편지 사이에는 문체, 낱말, 사상 등에서 차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는 사도 바오로의 신학 사상이 여러 곳에 나타나지만, 둘째 편지에서는 3장 15절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바오로의 신학 사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내림이라는 낱말도 첫째 편지에서는 ‘나타남’ (ἀποκάλυψις)인데(1, 7. 13; 4, 13), 둘째 편지에서는 ‘내림’ (παρουσία)이다(1, 16; 3, 4. 12). 두 번째로, 베드로의 둘째 편지는 유다서를 많이 이용하였다. 특히 1장과 3장은 유다서와 많은 곳에서 일치한다. 세 번째로 필자는 이 서간을 아주 우아하고 장중하고도 독특한 그리스어로 썼는데 이는 베드로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표현들이다. 네 번째로, 베드로의 둘째 편지 3장에는 종말 지연 사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2세기에 와서야 성행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사도 베드로가 아니고, 익명의 신자로서 자기가 아는 교회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이를 도와 주려고 이 서간을 썼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독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빌려 가탁 서간을 쓴 것이다.
독자 : 3장 1절에 의하면 이 서간의 독자들은 첫째 편지의 독자들과 동일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벌써 여러분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들에서 나는 (여러분이 아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여러분의 깨끗한 정신을 불러일으키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서간 역시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고, 독자들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다.
유다서와의 관계 : 이 두 서간 사이에는 유사성이 상당히 많은데 특히 2장과 유다서는 그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 거의 일치한다. 이단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고(2베드 2, 1. 2과 유다 1, 4), 천사를 경멸하고 비난하며(2베드 2, 10. 11과 유다 1, 8. 9), 공동체의 식사를 더럽히는(2베드 2, 13과 유다 1, 12), 물기 없는 샘이며 태풍에 밀려가는 안개로서, 암흑의 어두움이 그들에게 마련되어 있다(2베드 2. 17과 유다 1, 12. 13). 또한 이 단자들은 허세를 부리고(2베드 2, 18과 유다 1, 16) 이단자들은 육체적인 타락과 무절제한 생활 태도로 인하여 비난을 받는다(2베드 2, 10. 12-18과 유다 1, 7. 8. 10. 12. 16).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해 두 서간의 의존 관계를
살펴본 학자들은 대부분 베드로의 둘째 편지가 유다서를 옮겨 쓴 것이라고 여긴다.
그 이유로 먼저, 유다서 1장 5-7절은 구약성서로부터 징벌의 세 가지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서는 이 세 가지 예들이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배열되고 있기 때문이다(2, 4-6). 이는 이 서간의 필자가 그리스도의 내림을 부인하는 자들과 싸우기 위해 홍수의 예가 필요하여 유다서의 순서를 수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두 번째로 2장 11절의 "천사들은 더 큰 힘과 능력이 있으면서도 주님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모독하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라는 표현은 유다서 1장 9절의 내용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유다서 1장 12-13절의 표현이 베드로의 둘째 편지 2장 17절보다 본래적이다. 세 번째로 위경을 인용한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유다서가 베드로의 둘째 편지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는 위경을 인용한 구절들이 없다. 따라서 유다서의 필자는 위경에 대한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거리낌없이 인용하였지만, 베드로의 둘째 편지를 쓴 필자는 이 위경을 사용하기를 꺼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베드로의 둘째 편지가 유다서를 인용하였음이 틀림없다.
집필 장소 및 연대 : 이 서간의 집필 장소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도 베드로가 필자임을 가정한다면 그 장소는 로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서간의 필자는 베드로가 아니고,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쓰여진 가탁 서간이기 때문에 장소를 밝히기란 매우 어렵다. 이 서간은 처음에 이집트에서 알려졌기 때문에(오리제네스), 많은 이들이 집필 장소가 이집트 혹은 소아시아라고 생각하지만 이또한 막연한 추정에 불과하다.
집필 연대를 정확히 밝히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다만 3장 1절에 의하면 이 서간이 베드로의 첫째 편지보다 늦게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유다서를 인용한 것으로 보아서 유다서보다 늦게 쓰여졌을 것이다. 3장 15-16절에서 필자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을 마치 경전처럼 언급하였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이 서간의 집필 연대는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오로의 서간들이 교회에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을 받은 시기와 유다서의 집필 연대를 흔히 100년경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서간이 신약성서에서 가장 늦게 쓰여진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 가톨릭 서간 ; 베드로)
※ 참고문헌 장엘마로, 《야고보서 · 베드로 전 . 후서 . 유다서》, 한국 천주교 200주년 신약성서 12, 분도출판사, 1984/ J.H. Elliott, 《ABD》 5, pp. 269~2871 R.J. Bauckham, Jude, 2 Peter, 《WBC》, Texas, 1988/ N. Brox, Der erste Petrus Brief, 《EKK》, Benziger · Neukirchener, 1986/J. Gnilka,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Herder · Freiburg-Bael-Wien, 1994/ E. Lohse, Die Entstelung des Neuen Testaments, W. Kohlham-mer, Stuttgart, 1972/ J.R. Michaels, 1 Peter, 《WBC》, Texas, 1988/ K.H.Schelkle, Die Petrusbriefe. Der Judasbrief, 《HThK》, Herder, 1980/ P. Vielhauer, Geschichte der urchristichehen Literatur, Walter de Gruyter, Berlin, New York, 1975/ A. Voegtle, Der Judasbrief. Der zweite Petrusbrief, 《EKK》, Benziger, Neukirchener, 1994. 〔柳忠熙〕
베드로의 편지
便紙
〔그〕 Ἐπιστολαὶ Πέτρου · 〔라〕 Epistolae B. Petri · 〔영〕 Epistles of Peter
글자 크기
5권

1 / 3
가장 오래된 베드로의 편지 사본 가운데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