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론

蓋然論

〔라〕probabilismus · 〔영〕probabi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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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동의 합법성이나 의무에 대해서 의심이 있을 때, 비록 대립되는 견해가 더 개연적(蓋然的, probable)이라 하더라도 어떤 근거만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윤리 체계' (倫理體系, systemata moralia) 중의 한 방법이다. 다시 말해 이 이론은 인간의 자유를 중시하여, 비록 법에 대치된다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을 때는 자유 행동이 허용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만일 어떤 행동의 합법성에 대하여 '실질적 의심' (지금 당장 어떤 행동을 실행해도 되는지의 합법성에 대한 것)이 생기면 그 행동을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상황으로 미루어 그 의심을 직접적으로 해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이때 실천적 확실성을 간접적으로 얻기 위한 방법으로 '반성 원리' (反省原理, principia reflexa)와 '윤리 체계' 가 생기게 되었다. 반성 원리는 '현명(賢明)의 법칙' (regulae prudenti-ae)이라고도 하는데, 일상 생활의 체험으로부터 실천적 판단에 필요한 원리를 추론(推論)해 낸 것으로 일반 사회법 분야나 윤리 분야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원리이다. 반면에 개연론 등으로 표현되는 윤리 체계의 배경에 깔려 있는 문제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직면해서 윤리적 행동을 하기 위한 양심 판단의 확실성을 찾는 것이다. 이 윤리 체계는 그 적용과 채택에 관해서 윤리 신학자들간에 격렬한 논쟁들을 일으켰는데, '개연론' , '안전 개연론' (安全蓋然論, probabiliorismus) , '동등 개연론 (同等蓋然論, aequiprobabilismus) , '엄격주의' (嚴格主義, rigorismus) , '이완주의' (弛緩主義 laxismus) 등의 체계로 이어졌다.
〔역 사〕 윤리 체계로서의 개연론은 1577년 도미니코회 회원이었던 메디나의 바르톨로메오(Bartholomeus de Medina, 1527~1580)가 그의 저서 《성 토마스의 '신학 대전 제2부 제1편' 의 주해서(註解書)》(Expositio in I-II Summ. Theol.)에서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즉 그는 '신학대전 제2부 제1편 제19문 제6답' (Summ. Theol. q.19 a.6)에 대한 주해에서, "비록 대립되는 의견이 더욱더 개연적일지라도, 어떤 개연적인 의견을 따르는 것이 허용된다"고 설명함으로써 개연론의 원칙을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그의 이론은 즉시 윤리신학자들의 보편적인 가르침이 되었고, 17세기 초까지 위대한 신학자들인 도미니코 바네스(Dominicus Bañez, 1528~1624), 프란치스코 수아레스(Franciscus Suarez, 1548~1617) 등이 이 이론을 받아들여 보완하고 명백히 하였다.
1640년 안센(Jansen, Cornelius Otto, 1585~1638)의 저서 《아우구스티노》(Augustinus)가 출판되고 얀세주의가 등장하면서, 개연론의 논쟁(論爭)이 시작되었다. 즉 얀세주의 학자들은 극단적인 형태의 엄격주의를 주장하면서, 개연론은 비윤리적이라고 반박하였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도 익명의 공개장 <시골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Provingiales)에서 개연론을 심하게 공격하였다. 그러나 파스칼은 교황 알렉산델 7세에 의해 단죄되었고, 엄격주의는 교황 알렉산델 8세에 의해 1690년에 최종적으로 단죄되었다(DS 2303). 엄격주의와는 반대로 아주 빈약한 개연성만 있어도 법 준수의 의무를 면제받기에 충분하다는 이완주의가 몇몇 신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었으나, 1665년과 1666년에 교황 알렉산델 7세에 의해, 1679년에 인노첸시오 11세에 의해 단죄되었다(DS 2103).
이 논쟁 중에, "자유 행동을 취할 근거가 법을 따라야하는 근거보다 개연성이 더 클 때에만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다"는 안전 개연론이 주장되었다. 이 이론은 주로 도미니코회 신학자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주장되었는데, 1656년 도미니코회 총회에서 모든 회원들은 안전 개연론을 따르도록 요구되었다. 프란치스코회와 아우구스티노회 등 다른 수도회도 이 이론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수회의 곤살레스(Thyrsus Gonsalez)는 그의 저서 《윤리신학의 기초》(Fundamentum Theologiae Moralis, 1670~1672년에 저술되었으나 1694년에 출판됨)에서 안전 개연론을 선호 (選好)하였다. 그리고 18세기에 와서 '자유 행동을 택하는 근거가 법을 따라야 하는 만큼의 비중이 있으면 법을 따르지 않고 자유 행동을 할 수 있다' 는 동등 개연론이 생겨났다. 이 이론은 라슬러(Christoph Rassler, +1723)가 처음으로 주장하였고, 성 알퐁소 리구오리(Alphonsus de Liguori, 1696~1787)의 스승인 아모르(Eusebius Amort, +1775)에 의해 도입되었다. 개연론을 따르던 알풍소는 스승의 영향으로 1762년부터는 동등 개연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두 가지 극단적인 이론인 엄격주의와 이완주의는 교회로부터 단죄받았지만, 개연론을 비롯한 다른 이론들은 모두 건전하고 타당한 주장이라고 교회의 인정을 받고 있다. 그 어느 이론도 윤리 의무를 기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윤리 도덕의 바탕에 근거하여 자유를 행사하자는 데 본뜻이 있기 때문이다.
〔원 칙〕 개연론은, "의심스러운 법은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Lex dubia non obligat)는 원칙과 관련해서, 의심스러운 경우에 법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더 개연적이라하더라도 윤리 질서는 법만을 따르도록 인간에게 의무를 지우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법을 더 개연적으로 선택하여 거기에 고착되어 버리면 다른 개연적인 의견들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 버리게 되고, 양자 택일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뜻에 더 맞는 길을 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개연론은 "의심스러운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게 선택하라"(in dubio libertas)는 원칙을 활용할수 있는 이론으로서, 인간에게 허락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의견 중에서 '개연성' (probability)의 근거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는 윤리 체계이다.
이와 같은 윤리 체계로서의 개연론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바탕을 둔다. 첫째, 인간의 자유는 실정법 이전에 있으므로 법적 의무에 상반(相反)되는 것이지만, 이미 '소유' (possessio)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에 대한 확실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유는 확실한 법의 의무에 의해서만 제한받을 수 있다. 둘째, 자유에 대한 권리는 높은 선(善)이므로 그보다 더 높은 선에 의해서만 제한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법은 그 결과 역시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확실한 권리보다 더 높은 선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권리는 법이 의심스러운 경우에 완전히 독자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유지함으로써 보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선택에 있어서 법이 제시하는 방법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에 완전히 매여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 개연론에 대해서는 (법과 자유의 관계에 있어 정당한 법을 넘어서까지 자유로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오해로 말미암은 논란도 많았다. 그러나 개연론은 오직 책임과 의무가 무엇이냐의 문제이지 어느 것이 가장 완전한 행동 방향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달리 말해, 이 이론은 윤리신학에 속하는 것이지 수덕신학(修德神學, asceti-cal theology)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인간의 행동에 대해 명확히 잘 규정된 분야에서는 개연론이 적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의 정당성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개연적인 어떤 수단 · 방법을 취한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이렇게 개연론이 적용되는 범위는 윤리 생활의 매우 좁은 분야뿐이다. 예컨대, 최대의 확실성이 요구되는 '성사' (聖事)의 집행에 관해서는 그 적용이 제외된다. 그리고 개연론에서는 신학계에서 인정받는 권위 있는 5~6명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의견이라면 개연적인 의견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책임감이 있는 한 개연론의 원칙을 따르는 것은 무방하다. 사실 개연론이야말로 인간 자유의 존엄성을 가장 존중하는 처사(處事)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ae) 7항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 자유의 자율성을 옹호하고 있다. "인간에게 최대의 자유를 인정하고 필요한 경우 필요한 정도로 제한하는 등, 사회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의 습관이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개연론의 타당성 때문에, 교회는 개연론을 인정법(人定法) 분야뿐만 아니라 (교회법 14조), 자연법(自然法)과 신적 실정법(神的 實定法) 분야에도 적용시키고 있다(예컨대, 교회법 1084조 2항). (→ 윤리 체계 ; 양심)
※ 참고문헌  Franz Böckle, Grundbegriffe der Moral, Aschaffenburg : Pattloch Verlag, 1966(성염 역, 《기초 윤리신학》, 분도출판사, 1985)/
G.H. Joyce, 《ERE》 5/ J.M. Harty, 《CE》 7/ Karl H. Peschke, Christian Ethics -Moral Theology in the Light of Vatican II. vol. 1 General Moral Theology, Alcester and Dublin : C. Goodliffe Neale, 1986 (김창훈 역, 《그 리스도교 윤리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의한 가톨릭 윤리신 학. 제1권 基礎倫理神學》, 분도출판사, 1991)/ Louis Vereecke, Da Guglielmo d'Ockham a sant' Alfonso de Liguori. Saggi di storia della teolo- gia morale modema 1300~1787, Milano : Ed. Paoline, 1990/ Sisinio da Romallo, Probabilismo, 《EC》 5/ Tiburzio Lupo, Linee Generali di Storia della Morale, Torino : S.E.I, 1988/ 유봉준, 《基礎倫理神學》, 가톨릭출 판사, 1978/ 최창무, 《윤리신학 Ⅰ》, 가톨릭대학 출판부, 1989. 〔李太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