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헌금 ― 獻金 〔라〕Denarius Sancti Petri 〔영〕Peter's P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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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의 재정적인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전세계의 각 교구에서 자유로이 바치는 헌금. '교황 헌금'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헌금은 앵글로 색슨 민족이 교황청에 납부한 세금에서 비롯되었는데, 웨식스의 앨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of Wassex)은 이 세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889년 이전부터 자신이나 자신의 후계자가 세운 영국 왕령 전역에 걸쳐 면세 대상이 아닌 모든 가정에 할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상황에서 이 세금을 징수하는 데는 실천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잉글랜드의 왕으로 색슨족인 증거자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 1042~1066) 때 연납제가 도입되면서 한동안은 규칙적으로 납부되었다.
정복왕 윌리엄 1세(William I the Conqueror, 1066~1087)가 통치할 때, 이 세금이 체납되자 알렉산델 2세 교황(1061~1073)은 편지를 통하여 세금 납부를 촉구하면서, 연관성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영국에 대한 교황의 봉건 종주권도 주장하였다. 그러나 월리엄 1세는 전통적인 베드로 헌금을 납부하는 것에는 동의하였지만 봉건 종주권의 주장은 거부하였다. 교황청에서는 이 헌금의 납부가 갈수록 부진해지자, 12세기 들어서는 각 교구의 재정 상태를 평가한 후 299마르크의 정액 연납제로 납부 방법을 전환하였다. 그 후 국가가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세금의 징수와 납부 과정에서 베드로 헌금을 할당받은 주교들이 상당한 이득을 취하게 되자 인노첸시오 3세 교황(1198~1216)은 주교들의 부당 이득에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러나 효과도 없었고 헌금을 증액하려는 노력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중세에 들어와 베드로 헌금은 아일랜드, 웨일스로 확대 · 부과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등 북유럽의 나라들도 교황청에 '왕실을 위한 경비' 를 지불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들, 예를 들면 헝가리, 이스트리아(Istria), 달마티아(Dalmatia) , 폴란드 등은 봉건 조세와 구별되는 베드로 헌금을 지불하여야 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 이르러 베드로 헌금은 영국 교회와 교황청의 전체 재정에서 아주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적었고, 그 납부 역시 매우 불규칙적이었다. 마침내 헨리 8세 왕(1509~1547)은 1534년에 교황 헌금을 비롯한 다른 납부금도 폐지하였고, 종교 개혁의 여파로 다른 나라들도 베드로 헌금을 폐지하였다.
그 후 베드로 헌금은 비오 9세 교황(1846~1878) 재임시인 1860년에 교황청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보조금의 명목으로 부활하였고, 칙령 <존경하는 형제들에게> (Saepe venerabiles fratres, 1871)를 통하여 공적으로 승인되었다. 현재에도 베드로 헌금은 교황에게 바치는 전세계 교구들의 자유로운 헌금으로 남아 있으며, 한국에서는 교황 주일의 특별 헌금을 이 몫으로 사용하고 있다. (→ 교황 주일)
※ 참고문헌  S.L. Ollard et al., A Dictionary of English Church History, Milwaukee, 1912 ; 3rd ed., New York, 1948/ W.E. Lunt, Financial Relation of the Papacy with England to 1327, Cambridge, Mass., 1939, pp. 3~84/M.J. Hamilton, 《NCE》 11, p. 235/ 《가톨릭 사전》. 〔金鎭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