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베네치아 화파의 주요 작가 중 한 사람. 본명은 파울로 칼리아리(Paulo Caliar)이지만, 고향의 이름을 따서 베로네세라고 불리게 되었다. 1528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베로나(Verona)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석공이 되려고 도제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14세 때 화가 바딜레(A. Badile)의 도제가 되어 그림의 기본기뿐만 아니라 인간과 건축물을 융합시킨 그림에 대한 열정까지도 물려받았다. 베빌락쿠아 라치세(Bevilacqua-Lazise) 가문을 위하여 그린 그의 최초 작품 <성인들과 기증자들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Vierge et I'Enfant avec des saints et des donateurs)에는 바딜레의 영향이 잘 드러나 있으며, 1551년 트레빌레(Treville)의 소란초(Soran-zo) 별장에 그린 프레스코화에는 새로운 화풍이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1552년부터 약 1년 동안 베네토의 주교좌 성당에 그린 웅장하고 화려한 <성 안토니오의 유혹〉(Temptation of St. Anthony)에는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1553년 베네치아에 정착한 베로네세는, 그 해 처음 공적으로 의뢰를 받아 베네치아 공화정 총독의 궁전에 있는 10인 위원회 회의실의 천장화를 제작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부터 베로네세의 원숙한 개인적인 양식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색채와 잘 다듬어진 인체, 교묘한 원근법 효과는 티치안(Titian)과 틴토레토(Tintoretto)의 영향을 보여 주며, 그림을 보는 이의 머리 위에서 실제로 인물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장식적이고 사실적인 세부 묘사에도 뛰어났지만, 웅장한 작품들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였다. 1555년에는 베네치아의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에 <성모의 대관, 복음사가들>(Couronnement de Vierge, les Évangélistes)을 그렸는데, 이때 천장에 그린 <에스델 이야기>(Scenes de la vie d'Esther)에는 건축물의 테두리 안에 단축법으로 묘사된 인물들을 배열하는 엄격한 구도와 밝은 터치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인물들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나란히 배열하는 그의 장식적인 취미가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그려진 <엠마오의 순례자들>(Pèlerins d'Emmaüs)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 그는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들을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 넣었는데,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배경의 건축물은 그가 16세기 베네치아 건축가들의 작품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만년의 작품들은 단축법과 수많은 인물들의 조화로운 구성으로 화려한 위엄을 보여 준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루는 회화에서도 시각적이고 일화적인 효과를 우선으로하여 그려 나갔기 때문에 주제가 세속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1570년경에 그린 <모세의 발견>(Moise sauvé des eaux)의 경우, 강물에 떠내려 온 모세를 발견하였다는 주제 자체보다는 화려한 색채의 조화와 포동포동한 베네치아 여인으로 묘사된 파라오의 딸이 입고 있는 비단옷, 그리고 이 주제에는 이례적으로 등장한 곱추 광대 등에 먼저 눈길이 쏠린다. 이와 유사하게 <가나에서의 혼례>(Noces de Cana, 1562~1563)나 <최후의 만찬>(Dernière Cène, 1573) 등의 지배적인 요소는 르네상스 시대의 향연에서 볼 수 있는 향락적인 장식들이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경건한 주제에 독일인 병사들, 앵무새를 가지고 있는 광대, 코피를 흘리는 하인, 고기를 썰거나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는 제자들을 그렸다는 이유로 종교 재판소 이단자 심문소의 비난을 받았다. 결국 이 작품은 <레위 집에서의 향연>(Le Repas chez Levi)이라는 이름이 새로 붙여짐으로써 갈등은 해소되었다.
베로네세의 말기 작품들 중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루돌프 2세를 위해 그린 연작 <루돌프 2세 황제를 위한 우의화>(Scènes allégoriques pourl'emperuer Rodolphe Ⅱ)와, 등장 인물들이 조화롭게 묶여 있는 <사랑으로 결합된 마르스와 비너스>(Mars et Vénus liés par I'amour, 1580)가 있다. 비애감으로 가득 찬 소규모 작품인 <성 판탈레온의 기적>(Miracle de saint Pantaléon, 1587)과 <피에타>(Pietà)는 그의 작품 중 보기 드문 극적인 특성과 명상적인 분위기를 보여 준다. 베로네세는 1588년 열병으로 사망하여 베네치아의 성 세바스티아노 수도원에 묻혔다. 그리고 그의 동생 베네데토(Bendetto)와 아들 카를로(Carlo)와 가브리엘레(Gabrielle)에 의해 무덤 위에 흉상이 세워졌다.
그가 당대만이 아니라 후대까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화려한 색채와 빛으로 인물과 순수한 건축 구조물에 생동감을 부여하였기 때문인데, 그는 시야를 실제 공간보다 더 크게 확장시키는 작품 기법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 회화)
※ 참고문헌 The Illustrated Library of Art, part 1, p. 904/ M. Laclotte · J.-P. Cuzin, Dictiomaire de la Peinture, Larousse, 1991, pp. 948~951.〔鄭泳沐〕
베로네세, 파올로 (1528~1588)
Veronese, Pa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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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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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채의 조화가 돋보이는 <가나에서의 혼례> (왼쪽)와 <모세의 발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