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 앙리 (1859~1941)

Bergson, Hen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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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베르그송.

앙리 베르그송.

'생의 철학' 을 발전시킨 프랑스 철학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1928) . 베르그송이란 이름은 '베레크의 아들' (Berek-son)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1859년 10월 18일에 파리에서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아버지와 유대계 영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868~1878년 파리 콩도르세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수사학과 철학은 물론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세 때인 1878년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erieure)에 입학하여 1881년에 철학 교수 자격 국가고시(Agrégation de philosophie)에 합격한 다음, 1882년부터 1885년까지 앙제(Anges), 클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그리고 1888년부터는 파리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철학 강의를 한 베르그송은, 클레르몽 페랑 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면서 준비한 논문 <의식(意識)의 직접적 소여에 관한 소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diates de la conscience)으로 1889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당시 사상계, 특히 소르본 대학교의 교수들에게 수용되지 않았으나, 그 후 《물질과 기억》(Matiere et mémorie, 1896)의 출간으로 그의 철학 사상은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고등사범학교 교수에 이어 1900~ 1914년에는 콜레즈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교수를 역임하였는데, 그의 강의는 철학자들뿐 아니라 학생, 일반 대중까지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1901년 도덕 · 정치학 학사원(Académie des sciences morales etpolitiques)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14년에는 이 학사원의 원장인 동시에 프랑스 학술원(Académie française) 회원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사절단을 이끌고 스페인과 미국을 방문하였고(1916~1917), 이러한 중재의 공로로 종전 후인 1919년에 국가로부터 레종 도뇌르(Légion d'honeur) 훈장을 받았다. 아인슈타인(A. Einstein, 1879~1955)과 함께 국제 연맹에서 국제 평화를 위한 학문 외교를 펼친 베르그송은, 1922~ 1925년 지적 협력 국제위원회 위원과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28년에 노벨 문학상을, 그리고 1930년에는 프랑스의 최고 훈장(grand croix de la Légion d'honneur)을 받았다. 1932년 출판된 그의 마지막 저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에서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였는데, 가톨릭의 교계 제도보다는 신비가들의 영성에 특별한 호감을 가졌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할 의사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라이사 마리탱(R. Maritain, 1883~1960)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1941년 1월 4일 사망하기전에 가톨릭 신부를 만나기를 원하였지만, 신부가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고 한다.
〔사 상〕 베르그송이 철학을 시작하였을 당시의 프랑스는 콩트(A. Comte, 1798~1857), 스펜서(H. Spencer, 1820~1903) 등의 제자들을 주축으로 하는 과학적 실증주의와 칸트주의자들의 사변적 철학이 지배하고 있었다. 베르그송은 이 두 가지 경향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생의 철학'(philosophie de la vie)을 수립했는데, 그의 사상을 구성하는 주된 개념은 의식(conscience) 지속(durée), 생명(vie) , 그리고 직관(intuition)이다. 전자의 세 개념들은 동일한 의미, 즉 실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직관은 이러한 실재에 대한 사유 방법이다. 네 개의 주 저서에 집약되어 나타난 이 개념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
의식 : 첫 논문 <의식의 직접적 소여에 관한 소론>은 당시의 과학적 실증주의, 특히 심리적 실증론이 주장하는 기계론적 연상주의에 반대하여 철학적 심리학과 형이상학적인 추구에서 발상한 것이다. 직관적 방법으로 의식을 설명한 그는 고정된 철학이 아닌 유동적 철학, 즉 과정 철학의 기초를 놓음으로써, 의식을 흐름 곧 지속 안에서의 의식으로 규명하였다. 의식에 주어진 소여를 모든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유동하는 원천에서 내면적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시간과 자유에 대해서도 베르그송은 결정론자들의 입장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그들의 오류는 실재를 정체시킨 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의식 속에 살아 있는 실재와의 직접적인 접촉이나 자유로이 표현된 감정을 사물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베르그송은 생명체와의 체험에서 파악할 수 있는 실재를 개념적 인식으로 환원하길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의식의 원초적 상태, 인간 의식의 밑바닥에는 흐르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이 첫 번째 소여는 '되어감' 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시간은 이제 사유의 대상이 아니고 사유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의식이란 개념은 동시대 독일 현상학의 창립자 후설(E. Husserl)과 유사한 개념처럼 보이나, 의식을 구체적인 생명과 동일시한 점과 논증적인 합리성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체험의 어떤 질서를 찾는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이 논문에서 베르그송은 심리학자들의 방법상의 오류를 지적하였는데, 그는 감각들의 강도를 가지고 절대로 동등한 양들로 다루어질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감각들은 지속의 다른 순간들에서 체험된 내적인 삶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양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간은 획일적으로 취급되나 지속은 "자아 스스로를 살도록 놓아둘 때 의식하는 우리 상태들의 연속이 지니는 형태" 이다. 또한 그는 철학자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경계하였다. 즉 실제적인 것에서 만들어 내는 대상은 추상화, 사물화, 정체화, 동질성의 추구 등의 논리적 필연성을 따르면서 사물 자체를 무기력한 것으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지속 : 베르그송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개념이 지속이다. 그는 《물질과 기억》에서 기억을 의식의 의미로 설명 하면서 지속과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베르그송은 모든 개념적 선입견을 버리고 실재 자체에 직면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물질과 기억은 각자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질과 기억의 대조적 개념은 철학사에서 흔히 육체와 정신의 대립으로 설명하였는데, 베르그송은 이 이원론을 기억으로 극복하려하였다. 이는 기억에서 의식과 신체가 서로 만난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두뇌는 가장 우수한 기계인 동시에 의식(정신)도 이 두뇌와는 분리될 수 없다. 기억은 내적인 직관이 계시하는 의식의 직접적 소여, 곧 체험된 지속의 연장이다. 베르그송은 기억을 '습관적 기억' (mémoire habitude)과 '순수 기억' (mémoire pure)으로 구별하였다. 전자는 신체적 또는 기계적 반복을 통해 배운 동작을 실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후자는 '정신적 기억' (mémoire esprit)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억은 실존적 사건으로 남아 있으면서 활동으로 변화된 기억이며, 현재로 구체화된 기억이다. 순수 기억이 똑같은 상태를 두 번 통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억이 기억일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여러가지 추억들 사이에 서로 얽혀 있어 추억으로부터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추억들과 내적인 지속을 체험함으로써, 미래를 전망하며 현재를 윤택하게 한다. 결국, 지속의 첫 번째 특징은 '분리 불가능한 시간' 이다. 기억은 먼저 의식을 의미한다. 순수 기억은 행동에 대한 근심에서 이탈하여 인간 내적인 삶의 중심으로 인도한다. 기억을 상기함은 내가 습득한 기계 장치를 이용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데, 그것은 의식의 순수 상태에서 정신이 지속으로 인도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속의 두 번째 특징은 '실제적인 시간' 이다. 근대 물리학은 사물의 실제적인 지속을 도외시하고 수를 표상화함으로써 질적인 면이 배제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설탕 한 덩어리가 잔 속에서 녹기를 기다리는 관찰자의 시간은 단지 측정할 수 있는 시간만은 아니고, 이 시간은 관찰자의 인내와 일치함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관찰자는 실재에 대한 고유한 지속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속은 나의 존재의 바탕인 동시에 모든 존재의 실체이다. 또 음악회에서 음악의 선율을 듣는 사람의 의식은 내면적인 흐름과 공감, 체험된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지속적인 '진화' 요, 밖에서 기다린 사람의 의식은 시간을 나누어 재는 의식이다. 따라서 실재를 순수 지속으로 파악하여야지 공간적 방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하면서 기계론적 시간관을 비판하였다.
지속의 세 번째 특징은 '동질적인 시간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하다' 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바로 여기에 자유가 있다고 여겼다. 우주 내의 모든 만물은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지속은 양적이 아닌 질적인 시간, 동질적이 아닌 이질적인 시간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물리학자들의 시간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베르그송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은 시간을 다룬다고 주장하나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과학의 시간은 괘종시계 판의 시간으로서 한 개의 바늘이 지나간 공간에 불과하지 생명력이 흐르는 살아 있는 시간이 아니다. 이는 엘레아 학파의 제논의 논증에서 이미 잘 드러난 바이다. 육체의 기울기를 측정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분할하여 공간 안에다 몇몇 점들로 이어지는 것을 동시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숫자가 나오고 공간 안에 그들의 위치가 정해짐으로써 질 점화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시간이 두 배로 빨리 간다 하더라도 과학의 형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생명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오류는 공간과 시간을 혼동한 데서 기인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 철학은 이렇게 수학과 기계론적 관점에서 심리 철학적인 관점으로 점차 이행하였다. 시간과 지속의 대립에서 공간은 병치(倂置), 분리, 가역성(可逆性)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시간은 추상적 개념이고, 지속은 구체적인 체험으로서 내적인 삶 안에서 의식과 생명이 있는 실재이다. 그러므로 지속은 영적인 본질을 지닌다. 지속은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데, 내적인 체험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있는 동적인 또는 이질적인 실재를 의식하는 시간이다. 이것이 그의 형이상학적 직관이다. 이 문제는 그의 《형이상학 입문》(Intoouction à la métaphysique, 1903)의 주제가 되었고, 1911년에 열린 <철학적 직관>이라는 것이 그의 강연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생명 : 《창조적 진화》(L'évoluion créatrice, 1907)에서 베르그송은 생명의 본질을 다루면서 물질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생명은 어떻게 구성 · 발전되었으며,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간 지성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 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생명의 진화에 대해 그는 종래의 해석과는 다른 입장을 표명하였다. 생명의 약동은 태 초부터 움직임이라는 순수한 자발성을 지닌다. 약동은 생성, 전진, 그리고 전 에너지를 동원하여 미래를 향해 창조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생명 진화의 역사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능이라는 것이 척추 동물의 계열을 인류까지 이르는 선에 따라 끊임없이 진보하면서 형성되어 온 모습을 엿보게 해주고 있다. 지해(知解)의 능력 안에 활동 능력이 있다" 고 하였다.
베르그송은 인간을 지성인(Homo sapiens)보다는 공작인(工作人, Homo faber)으로 여겼다. 이성은 본질상 생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생명을 파악하는 기능을 직관에서 찾았다. 사물을 인식하는 데 있어 생명의 관점, 즉 내부로부터 유동적인 경향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생명은 분출과 발산으로 나타나는데 그 약동의 특징은 역설적이다. 절대적으로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새로움이 있고, 무능력과 능력이 동시에 발생하며, 만물 속에 산재함은 정지와 함께 약동을 증거한다. 이는 다원성 안에 공존하는 창조적 일치라 할 수 있다. 베르그송은 생명의 진화를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창조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또한 그의 생명관은 생물학자나 자연 과학자들의 생명관과 다른데, 그는 내면으로부터 생명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이는 칸트(I. Kant, 1724~1804)가 물 자체' (Ding-an-sich)는 인식 불가능하다고 한 견해와 엄격히 다르다. 베르그송은 칸트가 본질 자체를 생명과 무관하다고 함으로써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놓쳤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인식의 가능 조건인 선험적인 형식을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재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점에서 그는 칸트와 차이가 있다. "직접적인 직관 안에서 사물의 실재를 접한다"는 견지에서 베르그송은 실재주의자이다. 생명의 직관이란 맥락에서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는 합리주의나 계몽주의의 기계적인 진화 개념을 극복하려 하였고, 그 대안으로 모든 존재자들 안에 예측 불가능한 충동이 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창조적 약동' 을 뜻하는데, 《창조적 진화》에서는 생물학 및 우주론적인 관점에서 주로 다루어진다.
베르그송의 이러한 관점은 창조적 진화의 연장선 상에서 도덕과 종교 사상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다룬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도덕과 종교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생물학과 인식론에 기반하여 실천 철학을 취급하였는데, 전편에서는 '닫힌 도덕' (morale close)과 '열린 도덕' (morale ouverte)을 설명하였다. '닫힌 도덕' 의 원천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회이며, 개인의 도덕적 의무가 사회 규범이나 제도와 직결되어 일종의 억압 상태로 나타난다. 이 의무는 집단의 소속원에게 부과된 의무의 이행이다. 개인에 대한 전통과 관습은 자연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의 필연성과 같은 기능을 한다. 사회적인 압력을 자연 법칙의 필연성과 구별하지 않으므로 이를 따르지 않을 때 흔히 자연에 불순응, 즉 자연 법칙에 위배된 행위로 여긴다. 닫힌 도덕에서 개인은 습관적 의무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지성은 도덕의 원천을 형이상학과 동일화하여 절대화한다. 또한 개인의 사회적 응집력은 사회 구조의 보존을 위해 타자성 및 차이성에 대해 방어적 자세로서 폐쇄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런 경우 의무는 반성의 차원보다는 살아 나온 관습적인 의무로서 본능적인 명령에 속해 있다. 반면에 '열린 도덕' 은 개인의 '열망' 에서 출발한다. 열망은 생명력의 발동인데, 특정 사회의 편협되고 배타적인 윤리를 뛰어넘으려는 욕구이다. 정신의 비약과 연결되는 고차원적인 영혼의 부름은 심리적 · 사회적 메커니즘을 초월하여 개방된 세상을 지향한다. 다음으로 '감동' 에 의한 활동의 요구이다. 인간은 내적 동요에 의해 사물의 실재를 파악하되 추상적인 개념을 획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생성자, 나아가 실천가가 되는 데 있다. 열린 도덕에서 행동은 본능이나 전 인류와는 무관한 폐쇄적 유대 관계와 단절을 전제로 하며, 내적인 생명에로 인간을 일깨워 근원적인 자유로 인도한다. 도덕적 의무에 따른 행위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책임이며 그 원천은 인격적 존재이다. 열린 도덕의 질적인 발전은 자유로운 존재의 투신에 의한 창조적 뻗음에 있다. 도덕적 인간은 자연의 질서만 고려하지 않고 초월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요구를 바라고 전진한다. 이 요구는 자연의 원리의 필연성과는 달리 초월자와의 인격적 관계에서 오는 내적인 감동이다.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이 감정은 인간의 전 존재를 뜻한다. 따라서 그의 모든 행위는 사회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인간은 항상 두 가지 형태의 도덕 사이에 놓여 있으며 사회적인 존재인 동시에 인류 안에서 창의적인 존재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사회 규범에 순종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며 자신 안에 또 다른 차원이 있어 사회의 영역을 초월하여 '열린 도덕'과 합류할 수 있게 된다. 이 두 형태의 도덕은 생명이 그 본질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이며 종교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베르그송은 이 책의 후편에서 종교를 크게 '정체 종교 (religion statique)와 '역동 종교' (religion dynamique)로 구별하여 인류 역사에서 종교적인 의식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분석 · 비판하였다. 정체 종교에서 원시인들의 신앙 표현은 사회의 구조를 유보하기 위해 일종의 생물학적인 기능처럼 맹목적으로 필연성에 응하고 있다. 교의, 제의, 개인적인 믿음의 실천 등은 안전한 삶을 유지하기위한 종교적 장치이다. 신의 본질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삶의 조건에 대한 불안과 절망,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그리고 저승에서의 영혼의 생존과 신의 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탈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 삶의 근본적인 문제, 삶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에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여기서 지성의 역할은 이중적이다. 인간에게 안심의 요소인 방어책을 제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 어떤 사건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가령, 자연 재해나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보이지 않는 힘의 정체를 찾아 사건의 원인을 규명한다. 또한 이 비가시적인 힘을 의인화(personnificaion) 혹은 신인 동형론(anthropo-morphisme)으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정체 종교는 생존하기 위해 상황에 적응하는 노력에서 혼합적인 종교 형태를 띤다. 이는 지성이 아직 본능의 지배하에 있는 태도로서, 생명의 애착에서 발생된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약동' 의 원동력인 창조적 존재와의 관계는 저지된다.
이에 비해 역동 종교는 생명의 약동이 직관적으로 포착된 '삶을 드러내는 창조적 노력과의 접촉' 이다. 초월적이고 창조적인 존재와의 관계는 직관적인 사유 안에서 나타난다. 직관은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수한 속성으로 사회적인 원천과는 또 다른 원천이 인간 안에 있음을 말해 주며, 자유로운 정신이 이를 증거한다. 창조적 하느님을 체험한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자유는 사랑의 약동 안에서 인류를 향하는 추진력이 된다. 이는 그리스도를 원천으로 하는 신비가나 성인들의 삶에서 나타나는데, 그들의 체험은 직관을 통해 생명의 약동 자체와 "하느님 자신이 아니라면, 적어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창조적 노력과 일치하게 된다." 창조적 약동과의 내밀한 통교는 사랑이다. 단순히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 인간에게 하느님의 창조적 활동이 건네지는 것은 바로 신비가의 중재로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베르그송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종교적인 형태를 수렴하는 종교요, 신비주의의 완성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신비가와 성인들의 신비 체험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실천이 진정한 종교의 모습이다. '닫힌 도덕' 과 '정체 종교 는 그 원천을 사회 제도에 두고 있으므로 사회적인 규준의 절대화로 종교의 본질이 왜곡된 불완전한 종교 형태를 지닌다. 반면 '열린 도덕' 과 '역동 종교' 는 인격적이고 창조적인 사랑의 하느님에서 비롯되어 한정된 지평을 인류와 보편적 차원으로 개방한다.
직관 : 베르그송은 지성이 놓친 또 하나의 지성 작용인 새로운 사유 방식, 곧 직관에 대해 언급하였다. 직관은 지성보다 뛰어난 인간의 속성이며, 생명의 약동이 물질적인 장애와 대결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터져 나올 때 움직이는 생명을 습득하게 하는 능력이다. 주어진 생명을 관리하는 도구인 지성은 생명의 열매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잡을 수 없고, 생명에 대항해서 방향을 바꾸는 역기능을 한다. 여기서 베르그송은 사고의 전환을 요청하는데, 즉 모든 형태의 합리적인 논증 수단을 포기하고 직관에 의존할 것을 제안하였다. 베르그송은 지성이 개념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지성 이상적인 것, 즉 직관을 도입하여 인식론을 전개하였다. 그의 인식론을 '지속의 인식론 이라고 하는 것은, 직관은 지속 안에서만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의 직관적인 사유 방법은 사물들 내부에서의 행위와 작용들을 간파하는 '지속 안에서의 사유' 이다. 사물의 이용만을 생각하는 지성뿐 아니라 생명력에 적응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지성이 인간에게 있다고 베르그송은 주장하였다.
〔평가와 영향〕 베르그송은 철학적인 문제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다루었고 특히 과학에 대한 그릇된 개념에 사로잡혀 있던 한 시대를 해방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세계관은 먼저 의식의 표현들을 지속 안에서 재발견한다. 그에 의해 의식이란 생명이 오로지 질적인 궤도에서 발전되며, 새로운 형태로 자유의 문제를 거론할 수 있게되어, 인간 의식의 실재에 대한 탐구에서 인식론과 형이상학으로 확장되었다. 그 다음에 생명의 약진(생물학)과 물질과 공간 안에서의 확장(물리학), 마지막으로 도덕과 종교 생활의 수평이 펼쳐진다. 직관적인 방법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베르그송 사상을 반(反)지성주의라 일컫기도 하지만 지성을 통하지 않는 직관은 있을 수 없다. 베르그송의 직관은 논리의 대용물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일부로 지성 주위에 머물면서 지성의 편협된 점을 확장한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베르그송의 철학은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순수 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그송 학파는 형성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특히 제임스(W. James), 산틸라나(G. Santilana) , 화이트헤드(A.N. Whitehead)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미셀 푸코(M. Foucault), 쟈크 데리다(J. Derrida) 등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노선에서 베르그송의 영향을 다시 엿볼 수 있다. (→ 생의 철학)
※ 참고문헌  M. Barthélemy-Madalelc, Bergson, Seuil, Paris, 1967/ L.Jaffro · M. Labrune, Gradus Philosophique, Flammarion, Paris, 1994/ J.Milet, Bergson, et le calcul infinitesimal, PUF, Paris, 1974/ E. Clément · C.Demonque · L. Hansen-Love P. Kahn, Pratique de aphilosophne de A a Z Hatier, Paris, 1995/ S. Auroux · Y. Weil, Dictiomaire des auteurs et des thèmes de la philosophie, Hachette, Paris, 1984/ 김진성, 《베르그송 연구》, 문학과 지성사, 1985/ 김형효, 《베르그송의 철학》, 민음사, 1991/J. Wahl, Tableau de la philosophie française(김관오 · 김연숙 역, 《프랑스 철학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87. 〔文明淑〕